길. 은. 정

길 은 정 (가수 1961~2005)

목향 2017. 1. 4. 16:44


길 은 정 (가수 1961~2005)

 

길은정 1961년 강원도 화천 에서 태어났다 인쇄소를 하는 넉넉한 집안의 3남2녀중 막내였다.

 

그녀는 5살때부터 노래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동네 이발소에서 어른들은 귀여운 꼬마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5원씩의 관람료를 냈고 길은정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등을 부르곤 했다.

 

부모님은 그녀가 평범한 교사가 되는 것을 원했지만 타고난 예술적 재능이 넘쳐나고 있었다

 

춘천여고 시절에는 피아노와 무용 미술에도 뛰어나 전국 미술대회에 나가 입상하지만 집안의

 

예술적 진로에 대한 반대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학시절 서울로 올라와 김정호가 노래하던 무교동 꽃잎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통기타 가수 활동을 시작

 

하던중 옴니버스 앨범 <웃기는 사람 웃기지 않는 노래-젊음집중>신형원의 불씨,해오라기의 사랑은 받

 

는 것이 아니라면서 에 참여해 '소중한 사람'(김미지 작사.작곡)을 노래한다.

 

소중한 사람의 홍보를 위해 음반제작자가 잡아논 KBS라디오 가위 바위 보 에 출연하면서 길은정의 재

 

능을 알아본 박문영 프로듀서는 그녀를 곧바로 MC로 기용한다 그후 그녀는 TV프로그램 MC로도 활약하

 

는데

영11(with 이문세)

뽀뽀뽀

가요top10

둘이서 한마음

쇼네트워크

사라의 징검다리

정오의 희망곡

밤을잊은 그대에게

정오의 가요 쇼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활동했다.

 

길은정은 장기간 음반 활동을 할수가 없었다. 불공정계약서 파기 조건으로 장기간 음반을 만들수 없다

 

는 독소조항 계약의 꼬리를 남기고서야 불리한 계약에서 벗어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음반을 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길은정 1집

사랑은 굿118(김초혜 시,김선민 곡)

우울한 샹송(이수익 시. 김선민 작곡

애가(이창대 시, 김선민 곡.duet이광조) 주목을 받았다.

 

1990년 2집

예감

피할 수 없는 이별

떠나는 이에게

그런 이별인줄 알면서 등을 발표

 

1996년에는 시낭송집 명동에서 홍대 앞 까지란 타이틀로 70~90년대 국내외 명시들을 발표

 

<저서>

그럼에도 행복하다 (1997/자유문학사)

사랑하고 있습니다(1998/자유문학사)

내가 행복하게 사는 이유(2000/누림)

<수상경력>

1984년 mbc연기대상 mc부문 신인상

1984년 kbs가사대상(소중한 사람/김미지 작사 자곡)

1992mbc연기대상 라디오 Dj부문 우수상

<길은정 사랑 뜨락 네이버 카페 중에서>

 

1985넌 11월 길은정과 MBC직원 이명길 결혼

 

뽀뽀뽀 수사반장 일요일밤의 대행진의 촬영을 맡고있던 이명길과 결혼 (아이가 3~4살때쯤 이혼을 했고

 

4살 이후로는 본적이 없다고 한다.)1996년 직장암 선고를 받는다 수술을 받은뒤 한동안 호전돼 활동을

 

계속 하지만 2004년 8월 재발 병원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 받는다.

 

 

1996 11월 편승엽과 두번째 결혼을 한다  암투병중인 길은정의 순애보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후 행복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7개월 만에 돌연 이혼 발표를 한다

 

길은정과 편승엽은 이혼후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랑하는 사라믈 곁에 붙잡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이혼 하는게 서로 행복한 일이라고 그 배경을 밝혔

 

다.

 

2002년 말 길은정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결혼생활은 다 가짜이며 사기결혼이었다고 주장 편승엽과의

 

법정공방이 시작된다 편승엽은 길은정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했고 2년간의

 

법정공방 후 2004년 7월 7일 법원이 길은정에게 명예회손 혐의 징역 7월 을 선고받고 패소한다

 

 

2년여 간의 법정공방후 암이 재발한다 골반을 비롯 뼈에 암이 전이되어 길어야 6개월 이란는 시안부 선

 

고를 받는다 시안부 선고를 받고 암투병중에도 마지막 앨범 만파식적을 발표하고 음악과 방송활동 이어

 

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1월 7일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향년 45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마지막 까지 방송

 

에 열정을 보였던 그녀는 수의 대신 1997녀 빅쇼 무대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입혀 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