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돌아다닌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는 한 없이 소중하다.
십자가 없는 인생이 없고,
십자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인생이 없다.
지금 누군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멋있게 살아야 한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나의 새벽을 깨워준 것 처럼.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저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불어 닥친 이 태풍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오로가 말한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
으로 ‘여러분 중에 몸이 약한자와 병든 자가 많고 죽은 자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1코린 11,30)’이라는 말씀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암의 선고는 미국작가 N.호손이 쓴 간통한 죄로 ‘A’란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여 주인공의 낙인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머리를 깎은 천사와 같은 어린
환자의 눈빛을 보았을 때 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저 아이는 누구의 죄때문에 아픈 것입니까. 자기의죄입
니까,부모의 죄입니까. 그때 주님은 제 귓가에 속삭이셨습니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애에게서 하느님
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요한 9,3)’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며 병원 안의 수많은 환자들, 아아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가정 속에서 소중한 우리 아빠, 엄마, 딸, 아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들이 온갖 병으로 스러지고, 신음하고, 죽어가고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모두 죄인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엄숙한 시간」에서 노래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
보고 있다.”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입니다.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어딘가
에서 까닭 없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덕분입니다. 우리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울고, 내가 굶주리고, 내가 슬퍼하고, 내가 병으
로 십자가를 지고 신음하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바로
우리 곁에서 이렇게 위로하고 계십니다. “슬퍼하지 마라.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하늘나라가 너의 것이다.” ~최인호 베드로 작가
--정호승 시인의 글에서 최인호 베드로님을 추억하는 글
아직 써야 할 소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나자렛 마을에 살던 2000년 전의
청년 예수 이야기도, 여든 넘게 그림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정열적으로 여자
를 사랑했던 화가 피카소 이야기도 최인호 선생만의 새로운 관점에서 재미
있게 써야 하는데, 이제 그만 소설가로서의 펜을놓고 말았으니 이 어찌 불행
한 일이 아닐 수 있으랴. 1970년 말에 최인호 선생이 월간 샘터에 연재하던
소설 '가족'을 매달 교정보고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 처음 선생을 만나던 때가
정말 엊그제 같은데, 어찌 인생이라는 시간은 이리 빠르고, 선생마저 이렇게
죽음이라는 긴 여행을 떠나게 하는 것인가
최인호 선생은 꼭 원고 마감 직전에 원고를 보내셨는데, 원고가 들어오면
동화 작가 정채봉 씨가 난필로 유명한 선생의 글씨를 한 자 한 자 알아보고
다시 썼으며, 바쁘면 입으로 소리 내어 내게 대필시키기도 했다.
소설 '가족'의최초 독자인 나는 늘 선생의 아드님인 도단이와 따님인 다혜와
함께 사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선생
은 가족의 일상사를 세세하게 끄집어내어 글을 썼다. 일상속에서 무엇을 발견
해 내느냐 하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상의 삶 속에 진정
문학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선생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서 부터 인간의 모든 사랑은 시작 된다는 것 또한 내겐 큰 가르침이었다.
선생은 후배들에 대해 사랑이 많으셨다. 내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을 때는 일부러 전화를 주셨다. "소설이 당선 되었다니,
정말 축하해. 열심히 써. 이제 넌 내 후배야. 시인이 소설가가 되려면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어."선생의 말씀과는 달리 나는 소설을 쓰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때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직접 내게 축하 전화를 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도 가슴이 뭉클했다. 최인호 선생은 이제 김수환 추기경의 품에 안겨 그동안
참 많이 아팠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법정 스님과 찻상
을 마주하고 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작설차 한잔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슬며시 어느 술집에 들러 '별들의 고향'의 경아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이런저런 이승의 이야길 나누며 소주라도 한잔하고 있을
지 모른다.최인호 선생님! 이제 그곳에서 '길 없는 길'을 찾으셨는지요. "지금
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하고 껄껄껄 호방하게 그 유머 넘치는 웃음을 다시
터뜨리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어쩌면 선생님이 가신 천국이야말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일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작은 나무 책상 하나 마련하셔서
천국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죄다 소설로 써서 보내 주세요. 그러면 이곳
출판사들이 분명 다투어 출간해 드릴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랑하는 선생님을
떠나보낸 그 많은 독자들이 더이상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Mozart - Requiem https://youtu.be/Zi8vJ_lMxQ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