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꿈
헤밍웨이가 좋아했다는 마드리드의 단골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그의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어부 이름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지명, 산티아고와 같다.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은 장엄하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
아프리카 초원지대를 느릿느릿 거니는 사자,
그 품격과 위용을 노인은 지금 꿈에서 보고 있을 것이다.
잠잘 때만 꾸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그에게는 꿈이었다.
노인을 늙은이가 아니라 청년으로 만드는 힘은 바로 꿈이었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내 큰 물고기는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거야.”
84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그 나이엔 적당히,
가까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시늉만 하고
자신과 타협하며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동네 앞바다 대신 산티아고는 먼 바다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다 깊숙한 곳에서 미끼를 물고 있는
청새치와 마음의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낚시 줄을 풀어줬다 감았다 하며 청새치의 힘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노인은 그런 생의 희열을 늘 좋아했다.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고기는
적이나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교감하는 영혼의 동반자다.
“지금 놈이 나를 데려가는 건가, 아니면 내가 놈을 데려가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다.
물고기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으로 느껴지고
물고기가 자신의 일부로까지 여겨졌다.
물고기가 상어 떼에게 물어 뜯겼을 때
노인은 마치 자기 자신이 물어뜯긴 것처럼 아프다고 느꼈다.
산티아고는 가진 것이라곤 누더기 옷과 낚시 장비 몇 개가 전부였지만
자신의 경험과 바다를 통해 깨달은 통찰이 컸다.
상어의 공격을 받아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고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그의 내면은 부자였던 것이다.
노인은 물고기와의 사투, 상어 떼와의 결투를 통해
온 몸에 상처를 입고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포기했다.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현실에 적응할 줄도 아는
유연함이 있는 사람만이 사자 꿈을 꿀 수 있는 것 아닐까.
한 사람이 그의 내면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생을 대변해준다.
산티아고는 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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