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타인의 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목향 2011. 12. 10. 20:09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남. 대학 졸업 후 문명을 등지고 고향 콩코드와 월든 숲에서 산책과 노동, 명상의 시간을 보내며 영적인 삶을 추구한 작가. 지은 책으로 『월든』『시민의 불복종』『산책』『야생 사과』『일기』 등이 있음.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 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 말은 결국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라는 데까지 가게 되는데 나는 이 말 또한 믿는다. 정부는 기껏해야 하나의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가 거의 언제나 불편한 존재이고, 모든 정부는 때로는 불편한 존재이다. 그러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제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무정부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 정부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각 사람들은 자신의 존경을 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바로 그것이 보다 나은 정부를 얻을 수 있는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국가라는 이름의 창녀, 은 옷을 걸친 매음부가 옷자락을 걷어 올렸지만, 영혼은 진흙 속에 끌리고 있구나.”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금과 같은 정부 밑에서는 다수를 설득시켜 법을 개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만약 저항한다면 치료가 병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치료가 병보다 더 나쁜 것은 정부의 잘못이다. 정부가 치료를 더 나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왜 정부는 좀더 앞을 내다보고 개혁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가? 왜 정부는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왜 정부는 상처도 입기 전에 야단법석을 떨며 막으려 드는가? 왜 정부는 시민들로 하여금 방심하지 않고 항상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정부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시민들이 잘하도록 격려하지 않는가? 왜 정부는 항상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고, 조지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 부르는가? 그러나 나는 정부에 큰 관심을 없으며 되도록 그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만일 우리가 자유롭게 사색하고 자유롭게 공상을 하고 자유롭게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현명치 못한 지배자나 개혁자가 우리를 치명적으로 괴롭힐 수는 없을 것이다.



ㅡ 관 세 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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