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타인의 글)

언어학자 수필가, 서정범 교수님 / 글 :최원현

목향 2012. 2. 7. 17:18

 


고황산이 봄을 준비하고 있다.                                                                         

 


그 고황산 품에 안긴 경희대학교 교수회관,
오늘은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요, 수필가이신 서정범교수를 찾아 뵙기로 했다.

미리 약속을 하여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함께 교수님의 연구실로 향했다.
좌우로 줄지어 서있는 겨울 나목들을 열병하며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노라니 금방 숨이 가빠온다.

 

 

                                                                                                                      

     생전의   서정범 교수님헌데 교수님은 성큼 성큼 두 계단씩을 뛰어오르시며 한껏 노익장을 과시하지 않는가.


사실 이 길만큼 교수님과 정이 든 곳도 없으리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40여 성상을 한결같이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리시던 길이 아니던가.
길 양옆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교수님과 함께 숨쉬고 자라고, 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서로를 지켜주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사이들일 것이다.

교수회관 210호실,
전에 계시던 206호실이 아녀서일까.
이 명예교수실로 옮기신 지가 꽤 오래인데도 이곳으론 찾아 뵙는 것이 처음여서인지 다소 낯섬이 느껴져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여하튼 이 교수회관이야말로 서교수님께서 40년 넘도록 연구와 저작을 하신 삶의 중심터요, 그 많은 업적들을 낳으신 분만실일 터였다.

연구실은 세 분이 함께 쓰시도록 되어 있는데 욕실까지 갖춰져 있는 특별히 배려된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펼쳐내신 후학에의 가르침과 훌륭한 저작만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 하련만 잠시도 쉬지 않으시는 성정이시니 이곳에선 또 얼마나 더 많은 저작들을 이루실 지 더욱 큰 기대가 되었다.

난분이 하나 놓여있는 탁자를 사이로 교수님과 마주 앉았다.
헌데 가파른 계단을 두 계단씩 뛰어 오르시던 정정함엔 마음이 놓이면서도 고희를 지내신 연륜을 생각하면 염려가 놓이지 않는 것을 어쩌랴. 그러나 건강에는 특별한 관리법을 가지시고 오히려 젊은이들보다도 더 자신있어 하시는 것을 볼 때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건강하신 것이 고맙기도 했다.

서정범 교수는 1926년 9월 23일 충북 음성에서 6형제중 넷째로 태어나 유년기는 경기 이천 설성리 반우성이란 마을에서 보냈다.
중학교 때부턴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 해주에 살면서 황해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안악에서 교편을 잡다가 24세때 6.25를 맞게 되어 남으로 내려오셨단다.

뒤늦게 32세에 경희대 국문과 3학년에 편입했는데 그때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교수를 만나 시와 수필 강좌를 듣게 되었고, 400매나 되는 리포트 제출을 계기로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아 58년 <자유문학>에 '은어와 문학'이란 평론으로 문단에 데뷔 하였으며,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당시 학장이시던 주요섭교수의 천거로 교수의 길을 내딛게 되셨다고 한다.

서정범 교수님은 언어학자이지만 사회학자나 민속학자로 알려져 있을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많은 학문적 성과를 남기셨다.
특히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속어와 유행어 연구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셨을 뿐 아니라 무속학의 개척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속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나 40여년 무속연구의 여정은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내는 보조과학적 방법이요 수단으로서 언어학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 무속연구에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서교수님은 저작만도 40여권이나 되신다.
'한국 특수어 연구'('59), '음운의 국어사적 연구'('82), '우리 말의 뿌리'('89), '한국에서 건너간 일본의 신과 언어'('94)
등 언어학자로서의 전문적 저작과 40년동안 3천여명의 무당과 박수를 만난 체험적 저작들인 '무녀별곡' 시리즈 및 1985년부터 출간된 학원,어원,수수께끼,이바구,가라사대,허허,너스레,우수개,익살,너덜,철렁,억억,거덜,빼빼별곡 등 별곡시리즈는 시대 사회학적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들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서정범 교수님의 진가는 수필가로서 더 탁월하게 나타난다.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74)를 시작으로 '겨울 무지개'
('77), '무녀의 사랑 이야기'('79), '그 생명의 고향'(81), '사랑과 죽음의 마술사'('82), '영계의 사랑과 그 빛'('85), '품봐,품봐'('92)에 이르기까지 그의 수필집은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첫 수필집 '놓친열차는 아름답다'는 20판을 찍는 등 수필독자 확보 및 수필문학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서정범 수필의 특징은 독특한 암시법이다.
마지막 문장이 마침표로 끝난 후에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짙은 안개 속에서처럼 우리의 생각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으며 긴 여운을 남긴다. (원형갑의 서정범론에서)

또한 소재와 주제들이 적나라하게 원시의 나성(裸性) 그대로 독자 앞에 선다. 그래서일까 그의 수필들은 하나같이 소박하다. 그러면서도 독자를 매료시키는 추리소설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독자는 그의 '계획된 음모'(원형갑)에 의해서 작품 속에 빠져들지만 그런 음모의 낌새나 냄새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결국 수필 한 편을 다 읽은 후에서야 비로서 한숨과 함께 아 그랬었구나 하고 그 계획된 음모에서 풀려나는 것이 서정범식 수필이다.

서교수님의 수필은 참으로 쉽고 재미있다. 마치 사랑방 할아버지처럼 구수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꾼 같다. 수필마다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극히 겸허하고 진지한 추구심으로 가득차 있고 따스한 인간애가 골물처럼 속으로부터 솟아나와 읽는이의 가슴으로 소리없이 흘러든다.

서교수님의 수필만큼 체험적인 수필도 없으리라.
모든 문학에 체험이 큰 몫을 하기 마련이지만 수필은 특히 체험이 주가 되는 문학으로 서교수님은 살아있는 모국어의 현장을 찾아 전국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그 속에서 수필을 낳는 것이니 곧 살아있는 모국어에 대한 현지 임상실험적인 귀중한 체험의 증언인 셈이다.

서교수님은 쉴줄을 모르시는 분이다.
수필문학 발전과 보급을 위해서도 최일선에서 쉬임없이 후학들을 지도하신다.
81년부터 시작한 중앙문화센터의 수필창작강좌를 위시하여, 미도파 문화센터 및 경희대 등에서 여전히 수필을 강의 하신다.
<한국수필> 주간으로 조경희 회장님과 함께 많은 수필가를 배출 시키셨으며, KBS 방송을 통해서도 수필을 발표케 하여 한국수필과 공동으로 꽤 많은 수필가를 등단 시키기도 했다.
또한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회장과 부이사장을 지내셨으며, 1983년엔 제18회 한국문학상을, 93년에는 제9회 펜문학상을 수상하셨다.

하지만 서교수님의 매력은 그 어떤 명예에도 마음을 주지 않으시고 오직 학자로서의 외길만을 지키려 하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스승같은 모습일 것 같다.
일생을 흔들림없이 하고싶은 일만을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교수님과 앉아 말씀을 나누다 보니 시계가 네시를 넘고 있다.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는 것 같아 서둘러 질문을 드렸다.
수많은 수필집을 내신 만큼 주옥같은 작품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추천하고 싶으신 작품을 다섯 편만 부탁 드렸더니 두견새, 미리내, 나비이야기, 울릉도, 노랑나비를 드신다.

'두견새'는 고황산에서 만난 할머니와 진달래술 이야기고,

 

* 어느 세미나장에서 (2010년 여름 대관령 휴양림)

좌측 본 글을 쓰신 최원현 님

두 번째 본인, 바로 옆 이숙선생님 우측 수필가 한동희 님,

 


'미리내'는 은하라는 소녀와의 유년기 첫사랑 이야기다.
'나비이야기'는 죽은 열대어가 나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고,
'울릉도'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기행수필이며,
특히 '노랑나비'는 근작으로 북에 남으신 어머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이 돌아가신 것으로 여기면서도 상복조차 입지 못한 불효스러움이 늘 마음에 걸려 어머님이 계실거라고 믿는 북두칠성과 가까운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북쪽 사하인 야쿠트를 찾게 되었을때 밤 12시를 기해 상복을 입고 촛불을 켜고 정화수 앞에 꿇어앉아 한많고 아프고 쓰라린 어머니의 사랑을 음미하는 의식을 치렀더니 어머니가 칠성에서 보내셨는지 노랑나비 한 마리가 손에 앉는다는 내용이다.
매일이다시피 메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숱한 비정한 사건들 속에서 노 교수님의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가슴 가득 따스함을 안겨준다.

서교수님의 수필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작품중의 하나가 되어버린다.

열대어가 되고 나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만큼 서교수님의 수필은 독자를 작품속으로 끌어넣는 마력을 갖고 있다.         
특별히 자선한 다섯 작품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이 작가와 독자의 간격을 없애버리고 하나가 되게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독자를 매료시키는 재미일 것이다.
그 재미가 늘 딱딱하다고만 생각되어지는 정통 수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많은 독자를 끌어안는 서교수님만의 기술이요 능력이 아닐까싶다.

어려서는 자연과학자가 꿈이셨다는 교수님, 그런데 우리말의 뜻을 잘 새겨보면 그 속에 삶의 지혜가 들어있다고 늘 말씀하시던 어릴적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평생을 우리말의 뿌리 연구와 찾아낸 말을 아름답게 문학으로 승화시키는데 바치시는 서정범 교수님은 참으로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귀한 학자요, 문학인이 아닐 수 없다.

교수님께 수필을 쓰는 후배들을 위하여 한 말씀 부탁 드렸다.
첫째, 수필은 수식어가 많아지면 감동을 잃게 돼요. 진실만이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 문장을 수식하게 되면 진실성이 떨어져요.
둘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란 좋은 생활경험을 가져야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는 말이예요. 곧 수필적 생활은 안하고 수필을 쓰려면 좋은 수필은 나올 수 없다는 말이지.
셋째, 문장의 기교가 좋은 수필을 만드는 것은 아니예요. 그 안에 얼마큼의 진실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수필문학의 생명은 새로운 발견, 새로운 해석을 찾아내어 재미가 있게 해야 하는 것이거든. 재미있는 수필을 써야 다른 문학한테서 환영도 받는것이니까,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 셋째도 재미, 재미가 없으면 그것은 공해이지. 새로운 생각에 눈을 뜨게 하고, 삶의 예지를 느끼게 하는 수필일 때 좋은 수필이라 할 수 있는 것이예요. 무엇보다도 기교를 경계해야 해요.
넷째, 수필의 한계성 및 단점은 서정적 중심이라는 것이지. 뛰어난 개별성의 확보가 어렵고, 고전이 될 수 있는 예술적 보편성을 확보키 어려워 자칫 유행처럼 흘러가 버리는 현실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지성적, 지적 영역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야. 자기체험을 시간의 제한을 받는 수평적 보다는 오늘-신라-천년과 같이 시간성을초월하는 수직적 이야기로 승화시켜 수필의 맥과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말이지.
마지막으로 수필문학이 발전하려면 수필의 천재가 나와야 해. 사상과 철학이 개성적인, 마치 시에서 김소월과 같은 천재가 나오듯 수필에서도 그래야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야.

그럴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문학의 한계성 앞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의 열정과 노력이 하늘에 닿는다면 천재를 능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수필인들이 정녕 그만한 노력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말을 연구하고 그 말을 빛내기 위해 평생을 바쳐오신 노 교수님의 눈엔 오늘 우리 수필문단은 아무래도 수필의 천재가 나와야만 되겠다는 안타까운 결론만을 내릴 수밖에 없게 보이셨나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 보았다.

경희알타이어연구소장이시기도 한 교수님은 지금 비교언어학적 언어사전인 '우리말 어원사전'을 만들고 계시단다.
한 나라 문화의 원형을 밝혀 내자면 우선 제대로 된 '어원사전'이 나와야 되는데 이 일을 위해서는 알타이어 계통의 여러 나라 말에 밝아야만 가능하다며 그 제대로 된 언어사전 만드는 것이 교수님 몫이라는 것이었다.

국어학자로서 잃어버린 말을 찾는 방법을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하였고, 무속과 함께 기(氣)와 수맥(水脈)의 연구, 은어와 속어까지 쉬임없고, 끊임없이 연구 하시는 저력과 열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고희를 넘기신 연세에도 교수회관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한참이나 젊은 내가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 오르시는 만큼이나 나이를 초월한 청년학자 서정범 교수님,
어떤 의문도 풀어버리지 않고는 남겨놓지 못하는 결벽에 가까운 탐구성, 그리고 던져진 의문부호를 풀면서 살아오신 집념의 인생, 그래서 그에게는 최고라는 호칭이 붙은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결국 의문부호를 앞세우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
교수님의 삶을 '물음표의 삶'이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 같다.

꽃이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아름다운 색과 향기와 그 꽃 안에 꿀을 지니고 있듯이 사람도 아름다운 자기만의 색깔과 향기와 꿀을 지니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서정범의 수필 '그 아름다운 생명의 꽃' 중에서)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서교수님만의 색깔과 향기와 꿀,
그것은 이미 서교수님만의 것이 아닌 우리 한국 수필문단의 것이 된 지 오래이다.
삶을 주어진대로만 살지 않고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내는 가장 생산적인 삶으로 사시는 분,
황혼에 지는 해가 가장 아름답다지만 영원히 지지않을 젊음으로 우리 말과 수필을 위해 살아오신 서정범 교수님은 우리를 위해 허락되어진 하늘의 은총일 것만 같다.
수필의 삶을 살아야 수필을 쓸 수 있다는 말씀은 삶을 순리대로 살아가며 삼라만상의 질서에 순응하라는 것을 의미함이 아닐까.
맑고 투명한 얼음 밑으로 흘러내리는 겨울 산골 물처럼 학자로써도 수필가로써도 늘 투명하게 살아가시는 모습만으로도 무언의 훌륭한 수필강좌일 것 같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묵묵히 봄을 마련하고 있는 고황산처럼 고희를 넘기신 노 교수님의 얼굴엔 여전히 끊이지 않는 학문에의 열정과 해야될 일들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영원한 청년 서정범 교수님의 새 봄은 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인사를 드리고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교수회관 지붕 위로 겨울 햇살이 축복처럼 부어지고 있었다.

<수필과 비평>에 실린글 .글 :  최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