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어가에는 단종의 모습이 인형으로 만들어져 있고,마당에는 1673년(영조 39)에 영조 임금의 친필을 각자하여 세운
단묘유지비가 서있다. 높이 162cm의 크기로 1단의 화강석 비좌 위에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웠는데, 비석의 전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글이 새겨 있다.
이 비석은 단종이 청령포에 살았음을 증명해 주는 비석이다.청령포 서측의 능선에는 노산대와 망향탑이 위치하고 있다.
층암절벽 위에 자리한 노산대에서 단종은 깊은 시름에 잠기었으며,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간절히 생각하며 흩어져 있는
돌을 쌓아 망향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에는 금표비가 서 있는데 이 비는 영조 2년(1726)에 세운 비석으로서는 청령포의 동서방향으로
삼백 척, 남북으로는 사백구십 척 안에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퇴적된 흙을 파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령포 강 건너 나루 옆에는 단종의 유배 길과 사형 길에 금부도사로 왔던
왕방연의 시비가 서 있다.
왕방연은 왕명을 수행하는 관리로서 어쩔 수 없이 단종에게 내려진 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는 아픔으로 가득했다.
왕방연의 심정을 담은 그의 시는 비석에 이렇게 남아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千里遠遠道 美人別離秋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此心未所着 下馬臨川流
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놋다 川流亦如我 鳴咽去不休
1457년 유배지 청령포에서 머물렀던 단종은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잠기는 바람에 두어 달 만에 영월부사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는데, 10월에 단종은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숨지게 된다. 권력은 정말 비정한 것이다.
자신의 탐욕에 의해 혈연을 무참히 죽여야만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시대를 품은 관음송 한 그루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답다.창송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청령포의 소나무 숲 안에는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觀音松이위치하고 있다.
관음송은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있다.
이 소나무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단종의 오열音을 들었다고 해서,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관음송의 크기는 높이가 30m에 달하는 노거수로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동, 서로
비스듬히 자란 형태이다.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의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하여 계산된 것이라 한다.
청령포를 휘감는 서강
청령포 전망대에서 윤 병주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