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10. 26. 참아야 복이온다?

목향 2009. 5. 17. 17:48

제목 : 2004. 10. 26. 참아야 복이온다?
말기암 환자의 통증은 지나치다.

오늘도 통증치료를 받기위해
병원침대에 누워, 치료 순서를 기다리다가
견딜수 없을만큼의 통증때문에
찔끔 찔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람이 참 연약하죠?
이까짓 통증때문에, 인간다움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눈물 흘려서 부끄럽네요....."

옷 소매자락으로 눈물 콧물을 닦아내며
의사에게 말했다.

"그런 말 마세요. 제가 병원 개원한지 20년 됐는데요.
20년동안 제가 본 환자 중에, 가장 잘 참는 환자가
바로 길은정씨예요."

의사는 내 척추에 주사를 놓으며 이런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잘 참는 사람 뽑는 대회가 있어, 상이라도 준다던가....
왜 이리도 나는 참고 있는 걸까.

몰핀은 진통효과가 조금 있는 대신
오심, 구토, 오한, 가려움증을 느끼게해 또 다른 괴로움을
느끼게 한다.

한달만에 다시 찍어 본 X-Ray 에는
암세포가 내 척추 꼬리뼈쪽으로 침식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 안 가득한 암덩어리는 이제 손으로도 만져진다.
내 오른쪽 다리는 똑바로 펼수도 없이 구부러진 채 굳어버렸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해도
척추를 자극하는 통증은 나를 자지러지게 만든다.

참는자에게 복이온다고?
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웃으며 방송을 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몸이 그 지경인데 방송은 무슨 방송이냐고
당장 때려치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참,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픈 건 아픈거고,
웃음은 웃음이다.
그 웃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내게,
자신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건강한 이도 있는데.....
그저 참을 수 밖에......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