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은. 정

[스크랩] 만남-빅쇼에서/노사연&길은정

목향 2008. 12. 17. 17:01

<!-BY_DAUM->

 

 

글 작성 시각 : 2002.01.07 18:38:48
 
"저, 지금, 노래할 수 있겠어요?"

KBS의 오진규 PD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너무 뜻밖의
일이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구의 '빅쇼' 를 하시는데요?"

나는 초대 가수로 나를 섭외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궁금해 물었다.

"길은정씨지 누구겠어요."

"저요? 제가 어떻게 '빅쇼'를 해요."

'빅쇼'라면 히트곡이 최소한 열댓 곡은 있어야 하고 그야말로
자타가 인정하는 스타라야만 설 수 있는 커다란 무대였다.
그런데 히트곡도 변변히 없는 내게 '빅쇼'를 하자니.....
제작팀은 내가 암 투병중임을 생각해 마지막일지 모르는
멋진 무대를 만들어주자는 의도에서 내 '빅쇼' 를 제안해온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부제가 '라스트 콘서트' 였던 것을 그냥
'길은정의 소중한 사람'으로 바꾸고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직접 쇼의 구성을 하고, 대본을 쓰고, 노래 연습을 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십수 년을 해왔던 방송과는 다른 의미로 최선을 다했다.
투병을 하느라 허약해진 몸으로 통 부르지 않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마치 헬스클럽에서 종일 운동을 하는 것만큼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왼팔은 들어 올리지도 못하니 노래를 부를때 동작이 어색해 보이는 건 물론이고,
마이크를 들고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공연 제작팀은 내 건강 상태를 고려해 최대한 편하게 나를
배려해주었다.
그 즈음 잘 나간다던 스타의 공연도 그 넓은 KBS 홀의 좌석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다던데, 과연 내 공연에 사람들이 올까?
걱정과 기대로 공연 전날은 거의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오전부터 시작된 리허설이 한창일때, 어디선가 큰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벌써부터 줄을 서서 난리예요."

공연은 7시부터 시작인데 낮 12시를 넘기자마자
내 공연을 보러 관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상 밖으로 관객이 몰리는 그 사태를 보고 간부들이 놀라
확인하러 뛰어내려오기도 했다.
객석은 이미 꽉 차고 비좁은 통로 계단에 앉아야 할 지경인데다
그냥 서서 보는 사람들 때문에 출입문을 닫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더 이상은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막이 오르고, 하늘색 고운 드레스를 입은 나는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도 고마웠다.
나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내가 부르는 노래 속의 내 감정이
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지리라 믿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었지만 나 역시 마음으로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쇼가 내 인생의 마지막 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그 '빅쇼' 가 방송되고 나서
방송국이랑 우리 집에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빅쇼'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재방송을 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져서 '빅쇼' 사상 최초의 재방송 기록까지 세웠는데,
그 시청률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전화와 편지가 정신없이 몰려왔다.
전국은 물론이고, 일본, 캐나다, 미국, 호주를 가리지 않고
해외 교포들로부터도 편지와 소포가 도착했다.
암에 좋다는 약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고, 치료 기기나 책자,
카세트 테이프가 보내져 왔다.
희망을 잃지말고 건강해지라는 격려를 보내주셨고,
각종 치료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전화는 너무 폭주해서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될 정도였다.
LA 에 사는 어느분은 언제든 자기 집에 와서 몇 달이고 푹
쉬며 요양을 하라는 전화를 해왔고,
또 어떤이는 아무 조건없이 나를 돕고 싶으니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그 비용을
모두 대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는 나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몇 번씩이나 찾아오는 분도 있었고,
건강해지라고 이름까지 새로 지어준 작명가도 있었다.
집터가 나빠 병에 걸린 거라며 집터를 봐주러 오겠다는 분도
있었고, 치료해주겠다며 찾아온 기(氣)치료사도 있었다.
모두 다 나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겠다는 그 마음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편지를 하나하나 뜯어볼 때마다 가슴으로부터 감동이 치밀어올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고 있구나.함부로 나를
버려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책임감이 어깨를 눌렀다.

"수많은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길은정씨를 보고 있어요.
길은정씨 절대 쓰러지면 안됩니다.아셨죠? 부디 힘내세요.
길은정씨가 쓰러지면 다른 암 환자들도 희망을 잃게 됩니다."

암환자협회 회장으로부터 이런 전화가 왔을때, 나의 투병이
이미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렇듯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환자들도 전화를 해왔다.
더러는 상담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자신도 아프고 힘들텐데
나를 위로하기까지 했다.
누군가 무엇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도 하던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씩이라도 " 아유, 걔,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라고 걱정한 것이, 그 기(氣)가 모여 큰 힘으로
내게 전달되는것 같았다.


편지의 답장을 쓰거나 전화를 받고 가끔 청탁받은 원고를
쓰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날들이 흘러갔다.
내 마음은 호수처럼 평화로웠다.
나는 돈에도 명예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삶 자체에도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욕심도 나지 않았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얼마나 행운이 많았던 사람이었는지도 깨달았다.
그저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만 들었다.
특히 이런 아름다운 감정을 알게 한 '암' 이라는 병에게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만 남 - 노사연/길은정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출처 : 끝까지 함께해요
글쓴이 : 금선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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