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찍 : 주왕산 계곡존 재비 오는 여름,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듯한 개망초꽃이 되어 들판에 나가 보았다. 비안개 속으로….누가 부는 것일까. 한 가닥 실바람 끝에서 실로폰 소리가 들려왔어. 무논에 펼쳐놓은 초록빛 융단 위에 문득 드러눕고 싶었어. 그냥 논바닥 위에 누워 버릴까…. 한 포기 벼가 되는 거야. 한 알의 비안개 미립자가 되는 거야. 무논의 물과 부드러운 흙에 닿아 있는 벼들의 수염뿌리가 되는 거야.희부옇게 비안개 속에 펼쳐진 외로움의 광막한 공간…. 숲 속이나 안개 속에선 머리 위로 커다란 장막이 둘러쳐져 그 안에 모든 것들이 한 세상에 있음을 느꼈어.나를 낳게 한 것은 이 대지大地가 아니었을까. 들판에 드러눕고 싶은 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마침내 땅에 묻히게 되는 까닭 때문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