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좋아하세요?
흔히 기차역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형적인 역 내부 풍경은 과거 기억 속 여행에 대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차가 정차하는 바깥 풀랫폼 구역에라도 서 있으면 철길 특유의 독특한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멀리 사라지는 자갈밭 위로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철길은 웬지 모를 아련한 정겨움 혹은 운치같은 것이 있습니다.
기차여행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대학시절 주로 MT여행으로 떠났던 경춘선 기차여행이나 남쪽 먼 지방으로 여행을 떠날 때면 이용하던 경부선이나 호남선, 강릉으로 떠나는 동해선 기차여행 등도 모두 추억의 대상이 됩니다. 친지방문을 위해 가족이 함께 동반한 승객이나 사업차 혹은 여행을 위해 홀로 탑승한 승객 등이 서로 섞인 객실내 풍경은 항상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들입니다.
영화 <티켓, Ticket>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로마행 기차에서 만나는 이탈리아 여성들
홀로 여행할 경우엔 옆좌석 승객에게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빈 옆자리에는 멋있는 외모의 이성이 함께 동석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합니다. 단체 여행객도 신경이 쓰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적 우위(?)를 앞세워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전연 인연도 없던 사람들이 같은 객실, 그것도 만일 같은 좌석에 동석으로 함께 앉는 상황이라도 발생한다면 외향적인 성격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은 서로 어색하기 마련입니다. 때론 작은 신경전도 불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객실내에서 ‘안하무인’격인 무례한 승객이 꼭 한 두명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기차여행 중에 만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은 우리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먼 이국 땅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다 똑같다는 명제가 성립되는 셈입니다.
지난 2005년에 개봉한 영화 <티켓, Ticket>은 기차여행 중에 만날 수 있는 승객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태로 제작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유럽에서 운행 중인 기차내 풍경과 승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문화나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행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이야기를, 세 명의 감독이 옴니버스 형태로 제작한 영화 <티켓, Ticket>
영화 배경에 등장하는 기차는 파리를 출발해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하는 기차입니다. 유럽 특성상 각 나라를 경유하는 상황에 놓인 기차여행 중에 만나는 세가지 에피소드가 잔잔하게 혹은 코믹하게 때론, 뭉클함 감동으로 전해져 옵니다.
옴니버스 형태인 이 영화에서 첫 번째 주인공은 프랑스 한 제약회사의 자문위원인 노령의 한 이탈리아 약리학박사입니다. 자문업무를 마치고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항공기 노선의 운항 취소로 인해 기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제약회사의 한 멋진 여성직원의 도움으로 1등석 식당객실을 이용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노령의 약리학박사가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좌석을 두 개 모두 예약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줍니다. 로마로 출발하는 기차 안에서 박사는 이 매력적인 여인의 친절함과 웬지 모를 매력에 빠져 노트북을 펼쳐놓고 그녀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합니다.
같은 식당객실 안에서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을 지휘할 한 승객이 악보를 연습하는 중에 헤드폰 사이로 들려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은 이 노령의 약리학 박사가 첫사랑을 연상하게 하는 특별한 동기로 작용합니다. 쇼팽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 위로 과거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현재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그 제약회사 여성에 대한 설레임으로 승화되는 잔잔한 느낌을 줍니다.
자신에게 티켓예매 중에 친절을 베푼 여성에 대한 설레임으로 기차 안에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는 노령의 약리학 박사
두 번째 이야기는 객실내에서 간혹 볼 수 있는 무례한 승객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귀티가 나는 뚱뚱한 중년의 여인은 군에서 퇴역한 장성의 아내로 남편의 추도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 여정에는 자원봉사자인 한 청년이 도우미로 함께 동행합니다. 그러나 이 중년 여인은 성격이 아주 까다롭고 다른 승객에겐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자신을 도와주는 도우미 청년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기는 커녕, 심한 모욕감과 더불어 마치 노예를 부리듯 심하게 다룹니다.
결국 이 청년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 나중엔 이 못된 중년 여인에게 통쾌한 복수를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객실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무례함’의 종합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객실 내 '다른 승객을 이유없이 못마땅하게 쳐다보기', '예약좌석에 무단으로 앉아 자기 좌석이라고 버티기', '객실내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기', 함께 여행하는 '승객에 대한 배려 부족' 등입니다.
왼쪽은 첫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알바니아 가족. 오른쪽은 두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미망인과 도우미 청년
세 번째 에피소드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벌어지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셀틱과 AS로마의 경기를 관람하기위해 영국 북부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여행을 떠난 세 명의 10대 청년들이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세 명의 청년은 한 슈퍼마켓에서 근무하는 직장동료들입니다. 축구팀 셀틱의 광팬인 이들은 아끼던 용돈을 모아 이탈리아 로마행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이들은 중간에 알바니아에서 떠난 한 난민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우연히 축구선수 베컴을 좋아하는 가족의 소년과 친해진 이들은 가족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선행도 베풀어 주지만, 기차 티켓이 한 장 사라진 것을 발견하곤 이 가족을 추궁하게 됩니다. 이 가족은 로마에 사는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와 재회하기 위해 떠난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당해 돈을 잃게되고 가족 모두의 티켓을 구입할 처지가 못되는 바람에 한 명은 무임승차를 하게 된 것입니다. 나머지 한 장의 티켓은 바로 이 청년들에게서 소매치기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이 청년들은 자신들로부터 소매치기한 이 한 장의 티켓을 가족에게 그냥 넘겨주게 됩니다.
이 가족 대신 무임승차한 죄값으로 로마에서 이탈리아 경찰에 붙들리는 처지가 된 이 청년들은 결국,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극적으로 로마역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는 말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의 대미인 셈입니다. 물론 이 청년들 덕분에 알바니아에서 출발한 가난한 난민가족은 로마역에서 무사히 아버지와 기쁨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 등장해 코믹함과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는 프로축구팀 셀틱의 광팬인 세 명의 10대 청년들
이 영화는 기차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잔잔하고 때론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세 명의 감독이 로마행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형식으로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장거리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유럽 기차여행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또한, 이탈리아 로마행 기차의 객실내 좌석배치 등은 좀 생소하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전원 풍경이나 객실에서 벌어지는 승객 사이의 다양한 상황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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