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은. 정

[스크랩] 시낭송/구자형`마지막포옹`-낭송 `길은정`

목향 2011. 12. 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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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02.12월25일. 기타를 튕겨보며...

'록시'는 관객들로 넘쳐났다.
빈틈없이 자리를 채워 앉고도 모자라, 그대로 선 채 공연을 감상하는 분들이 계셨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기타를 치는 손길에 신명이 붙었다.
환호와 박수속에서 춤까지 추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가수 대기실에는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송창식씨와,

함께 기타연주를 하는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만지고 있었다.
한동안 기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내가 기타 튜닝을 할 때 쳐보는 아르페지오 주법을 듣고는
기타리스트 '임'군이 물었다.
'누나. 그거 무슨 주법이에요? 처음 들어보는 건데요?'
'처음 들어보는 건 당연하지. 이 주법은 내가 만든 거니까.. 나 밖에는 안 칠 걸?'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말,
'원래는 쓰리 핑거 주법을 연주하려다가 이렇게 만들어 진거야.
그게 잘 안되더라구.

그래서 나는 나한테 맞는 이런 쓰리 핑거 주법으로 연주하게 된거야.
어쨌든 쓰리 핑거를 사용하는 쓰리 핑거 주법은 주법이니까.... 하하하'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웃었고 처음 기타를 배우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나는 10살이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처음으로 기타를 치게되었다.
오빠들이 치던 기타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그 소리에 매료되었던 시절이었다.
오빠들은 어린 내가 기타를 망가뜨릴까봐 줄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기타 연주법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은 아예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오빠들이 기타를 치는 손 모양, 지판을 잡는 손가락 모양을
눈으로 보고 외워두었다가
오빠들이 외출한 틈을 타, 몰래 기타를 잡고 그대로 따라 손가락 모양을 짚어 보았었다.
너무 어린 나이의 작은 체구라서, 지금처럼 기타를 안고 치는 것이 아니라
가야금처럼 눕혀놓다시피하고 칠 수 밖에 없었다.
10살짜리 내 몸에 비해 기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기타코드를 잡는 방법이랑 휭거링 주법은 모두
눈으로 유심히 보고 익혀두었다가 아무도 없는 사이, 혼자서 그대로 따라
소리를 내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법 기타소리가 제대로 나기 시작했다.

외출했다 돌아오던 오빠가, 우연히 내가 치는 기타소리를 듣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혼날 것을 짐작하고 고개를 숙이고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빠는 내게 기타 코드 잡는 법과 오른 손 아르페지오 주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나도 자유롭게 기타를 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빨리 돌아가 기타를 칠 생각에 뛸 듯이 집에 돌아왔었고
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기타부터 잡고 노래를 불러댔었다.
레파토리는 아주 다양했었다.
당시 집에 있던 악보책. 팝송 악보는

첫장부터 끝 페이지까지 모두 기타를 치며 불러봐야
기타를 놓았다.

또래 아이들이나 반 친구들하고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말이 통하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거나

사방치기, 비석치기, 구슬치기 놀이를 하는 것 보다
기타를 치고 음악을 듣는 일이 훨씬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이미 읽어버린 수많은 명작 소설작품들.....
또래 아이들에게 '알퐁스 도테의 작품'이라던가,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쿼바디스, 생의 한가운데 등등.... 을 이야기 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고
초등학교 5학년때 너무나 공감하며 읽었던, 그래서 내게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책상은 책상이다'의 내용이나 작가 페터빅셀에 대해 이야기 한들,
말이 통할리가 없었다.

비틀즈나 C.C.R. 탐 죤스, 엘비스 프레슬리, 앤 마아가렛 등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또래 친구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학교 수업은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6살 무렵부터 팝송을 따라 부르곤 했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들을 초청해 여는 오픈 수업때 교단으로 불려나가
부르는 노래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가곡을 불렀었다.
그 가곡을 따로 배웠던 것은 아니었고, 나의 언니가 집에서 흥얼거리는 가락을
그대로 따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노래를 불렀던 반 친구가 송아지 송아지~~ 를 부르고 난 뒤,
내가 '어제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
하는 가곡을 부르고 나자, 내 다음에 노래를 부르기로 한 아이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그냥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불상사도 일어나곤 했었다.

나는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업의 진도는 당시 내게 맞지 않는 수준이었다.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1등을 했었기에
나는 날마다 다락방에 혼자 올라가 책을 읽는다거나
기타를 잡고 몇시간이 흐르는 지도 모를 정도로 몰두해 노래를 부르는 일로
말이 통하는 친구가 없는 고독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기타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사람은 없었다.
계속 치고 또 쳐서 손에 익을 만큼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그만큼 시간이 흘러야 했고
스트록 주법은, 당시 TBC 방송국의 '쇼쇼쇼' 에 나오는 가수들의 반주를 유심히 들으며
리듬을 익혔었다.
'쿵, 따라 쿵쿵 따' 아... 이것이 소울 리듬이구나....
'쿵쿵 딱딱, 쿵쿵 딱딱' 아.... 이것이 고고 리듬이구나.....
'쿵따라락다 쿵닥쿵닥' 아... 이것이 칼립소 로구나....
박자를 속으로 외웠다가 그대로 쳐보면서 스트록 주법을 익혔다.

그야말로 독학으로 10살때 부터 치기 시작한 기타이다 보니,
기타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나만의 주법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독학' 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점점 잊어가는 일이 더 늘어가는 나이 이기도 하고
손가락이 아예 굳어지기 전에 더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처음 기타를 잡는 마음으로
구자형님과 와이키키의 기타리스트 최 훈님께 조금씩 기타를 배우고 있다.

구자형님은 내 음반을 제작하는 '빛기둥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기도 하지만
걸어다니는 음악 백과사전, 소설가, 시인, 방송작가, 작사, 작곡가, 대중음악 평론가,
그리고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기타리스트 이기도 하다.
구자형님의 현란한 애드립 기타연주를 들을 때면 경탄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가 된다.
70년대에 유행했던 CM송의 대부분을 구자형님이 연주했기 때문에
구자형님의 군대 생활 동안은 직접 연주했던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 등의
CM 송을 부르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었다는 일화가 방송가에서는 전해지고 있다. 후후후...
.....
나는 요즘 아주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음악에 몰두해 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
그것은 10살 때, 처음 기타를 칠 때의 마음과는 다르다 해도
설레임의 정도는 아마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이번 주말이면, 그동안 스튜디오에서 믹싱한 신곡들을 들고,
휘닉스 파크 스키장에 머물며 신보 작업 연습을 하고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를 찾아간다.
매년 그곳에서 열려왔던, 강원도 분교 어린이 들에게 주머니 난로 사주기'를 위한
'길은정과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의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밴드와의 연습이 진지하게 이어질 것이고
나는 또 한가지라도 더 배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고독을 나는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다.
고독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고독하지 않다면,
음악에 빠지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르고
기타를 칠 수 없었을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생활,
단조롭기 그지없는 생활.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압구정동도 잘 못찾아가는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는 나의 '고독'을 기꺼이 즐기고 있다.

여전히 홀로 있는 크리스마스가 즐겁다.

늦은 밤 시간, 이웃에게 폐를 끼칠까봐, 아주 조용한 소리로 기타줄을 튕겨보고 있다.
후후후.... 어린시절, 너무나 기타를 치고 싶어서
밤에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답답해하면서도 기타를 쳤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을 만드는 밤이다.

 

 

 



출처 : 끝까지 함께해요
글쓴이 : 금선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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