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지난 7월 17일은 '카라얀'이 세상을 떠난지 25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지휘자 였었다는 '카라얀' .. !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합니다. 음악의 제왕 '카라얀'. 1989년 향년 81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카라얀'의 일생은 그야말로 영광과 좌절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시골의 무명 지휘자에서 더이상 정복할 세계가 없는 음악의 제왕으로 군림하기까지 '카라얀'은 성공과 실패, 시기와 찬사, 출세를 향한 야심과 순수한 예술성의 한가운데에서 불멸의 신화를 창조해 냈던 것입니다. 1929년 1월 22일 '잘츠부르크'에서 지휘자로 데뷔, 1935년 '아헨가극장' 음악총감독에 취임, 1946년 'EMI사의 월터 레그'와 첫 계약을 맺고 빈 필하모닉과 레코딩을 시작했고, 1948년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됩니다. 1949년 '스칼라 극장'에서 정기적으로 지휘를 시작, 1955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종신 상임지휘자로 임명 .. 대망의 꿈을 이룹니다. 1957년 '빈국립오페라극장' 예술총감독으로 취임, 1967년 '잘츠부르크' 부활제 음악제를 창설, 1980년 '베를린'에서 최초로 디지틀 녹음을 시도합니다. 여기서 그는 ..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1989년 4월 24일 '베를린 필'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 사임, 7월 16일 '잘츠부르크'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기일을 맞아, 그에대한 찬사가 세상을 뒤덮기도 하지만, 한켠에선, 비판의 소리도 높은게 사실입니다. 그건 .. 그의 완벽주의 신념 때문입니다. '카라얀'은 '베를린필'을 세계 최고의 필하모니카로 성장시켰습니다. 최고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집착은 세상을 분분하게 만듭니다. 클래식은 대부분 대곡이지요 .. 여러 악장으로 구성되고, 100여명의 연주자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악장과 악장사이, 악구와 악구사이, 두가지 이상의 음과 음사이를 이어나가는 '레가토'가 늘 그의 욕심에 상처를 줍니다. 그는, 이 난관을 녹음기술로 .. 말 하자면, 짜깁기로 처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기계의 힘으로 완성된 자켓은 명반으로 평이 났고, 다른 자켓의 배나 비싼 음반이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습니다. '지휘자 아바도'의 서거 때, 올려드린 작품에서 말씀드렸 듯, 후임 지휘자 '아바도'가 대경실색 .. 절대불가로 '베를린 필'의 음반 녹음은 잠정중단되고 세상은 '카라얀'을 향해 독설을 퍼붓게 됩니다. 이에 '카라얀'은 한술 더뜹니다. '레가토'는 아름다워야되고. 내가 한 10년 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더욱 발달된 첨단의 녹음 기술로 더 멋있는 음반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 라고! 클라리넷 주자 '자비네 마이어' 선발을 둘러싼 단원들과의 충돌로 '베를린 필'과 '카라얀'의 밀월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하여 1984년 마침내 '카라얀'이 사임합니다. 음악애호가들 중엔 '카라얀'을 아주 좋아하는 부류와, 아주 싫어하는 부류로 양분되지만, '베를린 필'은 여전히 '카라얀'의 최고 정신이 깊게 배어있어 세계 최고의 악단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참으로 기획의 천재였습니다. 사상 최초로 여름음악 페스티벌 연주곡을 녹음하여, 미리 자켓을 만든 다음 음악축제를 열어, 엄청난 양의 자켓 매출고를 올리는 상업주의 전술을 최초로 개발한 지휘자입니다. 지금은 어느 음악축제에서나 연주 레퍼토리 자켓을 팔고있습니다. 만. 7월 30일 KBS라디오 아침방송에서, 우리 '장한나' 양을 인터뷰 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지휘자 상을 꿈꾸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녀의 나이 32세 .. 천재소녀 장한나는 .. 내가 눈을 부릅 뜬다고 카리스마가 생기는 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요령을 부려도 연주자들은 다 알고있다. 내 마음을 진심으로 전달하고 서로 곡을 이해 해야 만 좋은 연주 결과가 나올 것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문득, 시인 '안상학'의 시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닌 때가 많다 꽃은 어떤 나비가 와도 그 얼굴에 그 얼굴 나무는 어떤 새가 앉아도 그 얼굴에 그 얼굴 .. 중략, 우리는 왜, 내 얼굴로 살아가지 못할까? 세상이 바라는 얼굴로 살아야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은, 밝고 경쾌한 '모차르트' 의 '디베르티멘토' 한 곡과 세계 3대 교향곡 중 한곡인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올립니다. 두곡 모두 '카라얀'이 지휘하고, 세계 양대 필하모니카, '베를린 필' 과 '빈 필'의 연주로 올립니다. 회원님들 .. 내가 내 얼굴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지만, 본래의 내 얼굴로, 높은 곳을 응시하는 .. 멋진 한주 되십시오. - 초 립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모짜르트/세레나데 6번 세레나타 노투르나 K. 239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궁정 음악가로 일할때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 갈은 기회음악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교향곡이나 소나타 처럼 형식이나 내용의 깊이가 있기보다는 사교적, 오락적 목적 때문에 작품은 우아하고 화려한 색체가 강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지요. 이 작품 또한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을 연상케하는 독주 그룹과 합주 그룹으로 나누어져있고, 악장수가 부족한 3악장으로 되어있으며 관악기가 없음에도 팀파니가 편성에 들어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세레나타 노투르나'라는 명칭은 아버지 '레오폴드'가 자필악보에 적어넣었다고 전해집니다.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6번 "비창" '차이코프스키'의 최대걸작으로 꼽히는 이곡은 자신도 '나의 일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말을 했답니다. 불과 12일 만에 작곡된 이곡은 1893년 완성하여 자신의 지휘로 초연하였는데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청중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초연 9일 만에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절망, 우울의 감정에 의해 "비창"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곡은 그의 추모 연주회 때 재연주되어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낭만주의 교향곡 중에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곡입니다. 그러나 표제 '비창'은 작곡자의 동생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의 제안에 의해 초고(草稿)의 표지에 적어 넣었다고 합니다. 끝.
'좋아하는 음악(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텔레만의 플류트, 바이올린, 첼로 그리고 현을 위한 협주곡 A 장조 (0) | 2014.08.20 |
|---|---|
| [스크랩] 세상의 음악 (0) | 2014.08.10 |
| [스크랩] 세월이 가면 - 박인희 (0) | 2014.08.03 |
| [스크랩] 비 그리고 추억 (0) | 2014.07.27 |
| 시진핑 부인 '펑리위안'의 노래솜씨 (0) | 2014.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