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쉼터

이불 한 채의 사랑

목향 2019. 8. 30. 13:32




      이불 한 채의 사랑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2년 만에 변두리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 했습니다. 성공한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둥지였지만 우리 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마누라는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살림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당신,… 집 장만한 게 그렇게도 좋아?” 라고 묻자 아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지 그럼,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인데.” 이렇게 집을 정리하면서 힘든 줄 모르게 하루가 갔습니다. 겨우 짐 정리를 마치고 누웠는데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남의 집 문간방살이를 전전하던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여보 그 집 생각나? 옛날에 결혼하자마자 첫 살림을 살던 그 문간방.” 지금 생각하면 찬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고, 수도관이 터져 밥도 해먹을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냈지만,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미래를 설계하며, 꿈과 희망을 가졌던 안식처였습니다. “여보 우리 거기 한번 가 볼까?” 숟가락몽둥이 하나 들고 신혼 단꿈 을 꾸던 그 가난한 날의 단칸방이었지만 그곳은 아내의 기억 속에 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얇고 따뜻한 이불 한 채를 사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달동네 문간방을 찾아갔습니다. 계단을 오르 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이 이렇게 높았었나?” 나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 그땐 이렇게 높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우리가 그 옛집에 당도했을 때 손바닥 둘을 포갠 것 만한 쪽방에선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기저귀가 펄럭이고 아이가 까르륵대는 집, 마치 시간을 거 꾸로 돌려놓은 것만 같은 상념에 잠겨서 우리 부부는 멍한 상태에서 옛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돈은 없었지만 둘만 있으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 었고, 아이들의 얼굴만 쳐다보아도 이 세상에 우리 부부보다 더 행 복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둘이 함께 있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난방이 필요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이불을 문간방 툇마루에 슬며시 놓아두고 돌아 섰습니다. 그날 문간방 젊은 새댁이 발견하게 될 이불 보따리 속에 는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10년 전 이 방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따뜻했었지요. 행복하 게 사세요.” 달동네 계단을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허름한 변두리의 작은 집에 찾아와 얼굴도 모르 는 이들에게 이불 한 채를 선물하고 내려가면서 우리 부부는 새삼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불은 문간방 식구들의 시린 발보다 부부의 마음을 더 포근히 감 싸 덮는 이불로 평생 남을 것 입니다.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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