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여행

그 잔잔한 바다, 에게해! / 기행문

목향 2008. 11. 26. 20:38

 

그 잔잔한 바다, 에게해 !

     (그리스-아테네 편 )       

                                                                                                                                                                김종선(목향)

                                                        


 이집트 일정을 마치고 아테네로 가기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07시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당일의 일정은 아테네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5시간 정도 달려서 메테오라 까지 이동하는 일이다. 아침 식사는 받아든 도시락으로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 내에서 먹기로 했지만, 그 이른 시간에 음식물을 먹을 수 있겠는가. 나는 간신히 빵 반 조각에 음료수 반 컵 정도로 해결했다.

 

 그러나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리스 아니, 에게해를 곧 만날 수 있다는 부풀음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이번 여행국이 평소에 꼭 한번 보고 싶던 곳이긴 했지만 장시간의 비행 때문에 사실은 많이 망설였는데 그래도 용기를 갖고 나선 이유는 안내서에서 ‘에게해 크루즈’ 란 항목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제 그 바다를 곧 보게 된다.

공항에서 한 친구가

‘ 얘, 너 창가에 앉고 싶지? 네 좌석이 창가가 아니고 내 좌석권이 창가라면 바꿔 줄께.’

  평소의 내 성향을 잘 아는 고마운 한 친구의 말이다. 물론 거의 사람들이 앞이 훤히 보이는 창가를 원하지만 나는 유독 더하다.

그 이유는, 하늘 높이 날면서 보이는 자연 환경이나 사물들이 때론 손뼉을 칠만큼 환상적 아름다움으로 연출되기 때문이다.

 

 지난 어느 날들의 여행중, 특히 카나다행 비행기내에서 한 밤중 잠에서 깨어나 살짝 문을 밀치고 내다 봤을 때, 아, 그 쏟아지던 별빛! 얼마만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기내에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그뿐인가.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준비를 할 즈음 내려다본 모습, 어머! 저 모습이 바로‘ 타는 듯한 단풍,’ 이구나. 그냥 튀어나온 말이었다. 실제 ‘메이폴 로드’ 에서 12시간을 버스로 달리면서 보여 진 단풍의 아름다움은 상공에서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뉴우질랜드’나 ‘하와이’상공에서 바라본 섬과 바다, 곱게 펼쳐진 모래톱으로 주름지어 밀려와 부서지든 그 모습은 환상적이란 말을 써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 듯 하다. 또한 로키 산맥이나 매킨리 정상을 지날 때의 웅장하게 치솟은 암봉의 연속, 또 있다. 태국에서 미안마로 향 하던 중 맞이한 그 화려한 일몰 등 이렇게 황홀한 경관 들을 어느 그림에 비할까. 이만 하면 내가 구태여 창가에 앉으려는 의도를 짐작하리라.

 

비행기에서 내려 점심을 먹은 다음 바로 버스투어가 이어졌다. 외곽으로 난 길은 달리는 도중 조금 멀리 아테네 시가를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는데 거의 건물들이 흰색으로 단장되어  너무도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저렇게 건물의 색이 전부 흰 색일 수 있느냐고? 혹시 행정 기관에서 통제 하느냐고?’

 

 그런데 그건 아니란다. 그냥 개인들이 전체미를 맞추다보니 그렇게 된 듯하다나. 가이드의 설명은 장황하게 이어졌다. 그리스는 서구문명의 발생지이며, 고전 문명의 지적 예술적 사상이 비롯된 곳이고 지금의 아테네는 그리스 인구의 40%가 몰려 살며, 현재 그리스의 수도이고, 아테네란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테나에서 유래되었단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이고 그리스 인구는 약 1100 만 명이란다.

 

 이곳의 생계유지로 가장 바탕이 되는 산업은 관광, 석유, 목화, 그리고 스위즈 운하에 근거를 둔단다.

교육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대학에 진학을 해도 학비는 다 국가에서 책임을 진 단다. 학교의 학습은 오후 2시까지이고, (기타 공무원도) 학교에서는 기본 교육만하고 기타 예능 교육은 자기취미나 희망에 따라 별도 교육기관에서 배우게 된단다.아이들이 학습으로 인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아주 자유스럽게 공부 한다니, 참으로 부러운 일 아닌가.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식 교육에 대해서도 설명 했는데 그 교육은  국가적 군사적 의무교육이었기에 7세 까지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 교육장에 들어가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만약 신생아가 병약하다면 들판에 버려져 죽게 했다는 것이다. 지난날 학교 때 서양 교육사 시간에 입에 침을 튀기며 열심히 스파르타식 교육 방법을 설명 하던 어느 선생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이곳에 없는 것은 자판기와 백화점이란다.

 

 기계화된 음식은 아주 싫어하고 너무 검소하고 절약 정신이 배어있기 때문에 옷은 주로 청바지를 입는 단다. 가구도 할아버지 대에서 손자까지 물려받는 일이 많단다. 또한, 결혼 때는 신랑은 침대 하나면 되지만 우리와 반대로 지참금이나 사는 집까지 여자가 준비해야하고 여자가 시집 간다가 아니라 남자가 장가를 온다는 말을 쓴단다. 가정 제반사에도 여자목소리가 더 크고 좌지우지 큰소리치는 편은 여자란다. 우리나라의 여자들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사니 이곳에 사는 여자들은 참 어깨 펴고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어떤 일에서도 크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곳 말로 시가시가) 란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도 우리일행 모두는 너무나 피곤했다.

 

 며칠간의 여행( 특히 이집트는 힘 든다. ) 이 계속 이어지는데다 새벽잠에서 깨어난 터라 누구 할 것 없이 꾸벅 꾸벅 졸기 일쑤니, 보다 못한 가이드 왈 아주 잠자는 시간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음악을 들려드릴 테니, 눈 좀 붙이세요.

참 똑똑하기도 하지. 때와 장소에 따라 상황 판단을 잘하는 그 재치에 (이 후에도 느낀 일이지만, 아마도 내가 본 가이드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줘야 될 것 같았다.)모두는 박수를 보냈다.

 

 차안에는 ‘나나무스쿠리의’ 감미로운 음악이 이 낮게 흘렀다. ‘아베마리아’, ‘하얀 손수건’을 비롯해서 늘 상 귀에 익은 잔잔한 음악들이었다. 나 역시 이 음악을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꼬박꼬박 졸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싶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그만들! 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자, 여기서부터 는 매우 경치가 좋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친 시야, 바로 그 바다, 에게해! 호수같이 잔잔한 모습으로 코발트색옷을 입고 나풀나풀 춤을 추며 우리를 유혹한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햇빛에 반사 되어 더욱 찬란하다. 그냥 ‘아! 역시’ 란 말이 튀어나왔다. 잠시 눈을 붙였고 저 아름다운 바다에 매혹 되어서일까, 금 새 정신은 팔팔하다. 조금 더 지나니, 아주 초라한 마을이 나타났고 바로 그곳은 집시 촌 이라했다. 나는 호기심에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리스의 집시 수는 약 25 만 명 이라했고 13세쯤 되면 겁도 없이 아기를 낳으며 불결하고 구걸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값 떨어진다고 그들의 근접을 많이 싫어한단다. 그러나 한군데 오래 정착 하지 못하고 유랑하며 어디에도 구속 되지 않는 그들, 비단 손가락질을 받는 초라한 생활 이지만 그들의 영혼은 얼마나 자유스러울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언뜻 집시인 들로 구성된 ‘집시킹스’의 ‘볼라레’ 란 노래가 생각났다. 아주 작게 허밍으로 불러본다. 

 

 해 질녘 고즈넉한 풍광도 감상하고 광활한 초원도 지나며, 휴게소에 들려 차 한 잔 나누는 여유도 즐기면서 목적지에 닿았을 때는 땅거미가 짙은 저녁시간, 평화로워 보이는 아늑한 산촌 마을, 전원주택 같은 쾌적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이제 메테오라 ( 공중에 떠있는 수도원 이란 뜻이며 세게 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곳 ) 의 수도원 관광이 시작되었다. 이곳을 보기위해 아테네로부터 장장 5시간의 버스를  타고 달려온 것이다. 여행 시작 후 가장 잠을 잘 자고난 아침이라 날씨도 쾌청 하곤 해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버스는 사암으로 이루어진 깎아지른 바위산 절벽사이를 몇 구비 휘돌아 올라가더니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가이드 왈 사진을 찍으란다. 멀리 눈 덮인 능선이 아스라이 보이고 거대하고 기묘하게 생긴 암벽사이로 드넓은 지평이 가슴을 시원하게 여는 정말 아름다운 곳에서 우리는 소녀들처럼 기분 좋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스정교회의 수도원은 14세기에 처음 세워져 16세기까지 가장 전성기였고 당시엔 이곳에도  24개나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속세와의 차단을 위하여 올라가는 길을 만들지 않았으며 물자보급은 도르래를 이용하여 끌어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림짐작으로 약 200m쯤 계단을 오르니 깎아지른 암벽 정상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만 봐도 당시 수사들의 신앙심과 얼마나 처절한 기도에 정진했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했다. 아니, 보통사람이라도 이곳에 살기만 하면 무엇인가를 깨우칠 것만 갚은 그런 분위기였다. 치마를 입어야 들어간다기에 우리들은 하나씩 빌려 입고 입실했다.우리가 본 이 수도원은 지금은 넘쳐나는 관광인들 때문에 본래의 성당의 구실은 하지 않지만 전에 쓰던 기구들, 벽에 그려진 고색의 성화 등 역사적 자료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스정교회 란 말이 우리에겐 좀 낯설지만, 이곳 사람들은 98%가 믿고 있고, 그 뿌리는 로마 가톨릭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엄연한 교리의 차이를 보여준단다. 점심은 이곳의 현지 식( 야채, 빵, 쇠고기 구은 것) 으로 해결하고 다시 아테네로 가기위하여 어제 오후에 왔던 장장 400km의 버스에 올랐다.


 다음날은 그리스 관광의 정수 에게해 크루즈와 파르테논 신전관광으로 이어졌다. 에게해 크루즈가 에기나섬 ( 왕복 2시간 정도) 이란 곳을 다녀오는 비교적 짧은 코스여서 좀 섭섭했지만 어쩌랴, 이 코스가 나를 먼 이곳 까지 여행하게 한 결정적 이유였는데 …….

배는 꽤 컸고 실내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적어 쾌적해서 좋았다. 우리는 둘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 학교 때 배운 가곡과 가요를 순서 없이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잠시 시간을 내어 갑판으로 올라와 뱃전에 기대서서 삽삽한 바닷바람을 맞는다.

시선을 멀리 해안선에 두니 언젠 가처럼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그리움 같은 것들이 밀려온다.

흐릿한 기억의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주 잊혀진 줄 알았는데 아마도 한점 작은 조각으로 가슴 한 가운데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가족들 생각도 났다. 특히 중국의 손자가 보고 싶어진다. 나중 그 애 와같이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번거로워 전화도 안했는데 잘들 있는지? 내가 여행 간다고 하면 그 누구도 군말 한 마디 없이 등 밀어 보내주는 가족들, 새삼스레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에기나섬에 도착해서 자유시간 1시간이 주어졌다.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그러나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 앞에 마차들이 진을 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냥 그 마차를 타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섬을 한 바퀴 도는데 3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마차는 아름다운 꽃들이 화사하게 웃고 있는 돌 담집 골목길을 지나고 소나무들이 빽빽한 샛길로 접어드는 가 했더니 어느새 확 트인 해안 길로 들어섰다. 모두는 아이들처럼 좋아하면서 마차타기를 즐겼다. 이제 남은 시간 30분, 이후엔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나는 바로 바다 옆 노천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자( 또한 그룹은 문어먹기) 는 쪽을 택했다.

 

 맥주 한잔도 못하는 술 실력이라, 겨우 오렌지 주스 한잔을 앞에 놓고 있었지만,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있는 이 순간만은 참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에게해를 마음껏 감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했다.

에게해의 특징은 물론 그 물색에 있지만, 큰 파도가 없고 잔잔하며  비릿한 바다냄새도 없다는 거다. 눈이 시리도록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주로 여객선인 듯 큰 배 몇 척이 정박해 있고 물거품을 내면서 드나드는 배도 꽤 많았다.

 

 이제 그 유명한 세계문화유산 1호인 아크로폴리스(언덕위의 도시란 뜻)내의‘ 파르테논 신전’ 을 보기위해 간 길을 되돌아왔다.

신전이 올려다 보이는 주차장에 내렸을 때 나는 잠시 망설여야 했다. 경사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했고 오르는 대리석 계단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닳고 닳아서 자칫 미끄러지기 쉬우니 알아서 선택하라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기 때문 이었다. 이 말을 들은 일행 몇이 그냥 포기하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나도 조금 흔들렸다.

 

 그러나 ‘ 아니,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수 는 없지.’ 용기를 내어 다리에 힘을 싫었다.

이 신전은 아테네 수호신이기도한 아테나 여신을 모신 곳인데 세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건축물로 불린단다.

올라가는 길옆에는 올리브나무와 뽕나무가 많았다. 조금 올라가니까 야외극장 (디오니소스)이 있었는데 기원전 6세기에 생겼다니 이들의 문화적 수준에 놀라울 정도다.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며, 우리나라 사람 중 엔 성악가 ‘조수미’ 씨가 유일하게 무대에 섰다고 했다.

 

 한참을 더 오르니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우뚝 선 신전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다.

대리석 바위산을 기단으로 가로 31m,세로 70m 기둥 높이가 10m이며 신전의 둘레는 200여m  이르고 아름드리나무 같은 기둥들이 46개로지붕을 떠받치고 있으며 기원전 424년에 완성 되었다고 한다. 신전의 맨 꼭대기 삼각부분의 조각상이 영국의 박물관에 보전 되어있다니, 빼앗기는 자와 뺏는 자, 양쪽 다 글쎄…….

 

 좀더 멀찍이 서서 푸른 하늘만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신전을 바라보며, 가이드가 설명해준 신화 들을 결부시켜 생각해보니, 감회가 새롭고 힘들었지만 잘 올라왔다는 뿌듯함이 기쁨을 더한다.

그리스는 바로신화의 나라가 아닌가.

믿거나 말거나 이 신전에 관련된 신화 한 토막 이야기하기로 한다.

 

“ 제우스는 아테나를 임신 했던 메티스를 통째 삼켜 버렸는데 어느 날, 제우스가 두통을 호소하자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니까 거기서 완전히 무장한 모습으로 아테나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중재에 나선 제우스가 평화적 해결 방법으로 좋은 선물을 국민에게 바치는 자를 승리자로 조건을 내 세우게 되었단다.

 

 이에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땅을 찔러 샘물을 쏟게 하고 아테나는 그 샘 옆에 올리브나무를 심어 열매를 맺게 했는데 사람들과 신들이 샘물보다 열매가 더 중요하다고 해서 아테나의 승리로 이어졌고 결혼도 안하고 나라만 위하는 그를 경배하기 위해서 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다음 순서는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이한 감옥 관광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일행 모두가 그냥 지나치자는 의견이 많아 조금은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그의 제자들이 그를 살리기 위하여 도피할 길을 열어줬지만 ‘악법도 법이란’ 유명한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그 이름도 높은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이곳 출신들이니 실로 세게 인류에 끼친 영향 이 그 얼마인가.

다시 버스에 올라 시가지 투어가 이어졌다. 첫 번째로 신타그마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있는 말발굽모양의 국제 올림픽 경기장이다.1896년 제1회 국제올림픽이 열린 곳이며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들어 갈 수는 없었고 그냥 밖에서 기웃거리며 본 정도다.

 

 대통령 궁도 지나면서 차내에서 외곽 만 보았는데 그냥 큰 저택 정도로 보였다.

가로수들은 금방 따서 먹고 싶을 만큼 탐스러운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많았는데 사실은 그 오렌지는 맛이 없어 먹을 수 가 없단다. 가로수의 구실만을 위한 특수종자라나. 도심지라 차들은 많이 다녔지만 차도의 폭이 좁은 것 같았고 그러나 무엇보다 이집트와는 반대로 깨끗한 인상을 주어서 기분이 산뜻했다.

 

 내가 해외에 나갔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그 도시의 인상이나 느낌이 어쩜 그리도 평소에 그리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기할 정도다. 특히 독일에 갔을 때 그 묵직하고 칙칙했던 느낌, 스위스나 캐나다 에서 의 그 신선함, 도회적인 일본, 물론  평상시 책을 통하여 또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미루어 생각 한 상이 각인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번 이 그리스(아테네)도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나는 세계의 그 수많은 나라 이름 중에서 ‘그리스’ 라는 지명이 그냥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색 ‘그린 ’이란 말과 발음이 비슷해서 인지. 글쎄다.

 

 이렇게 또 한나라의 여행기를 마친다.

다음 여행지 이스탄불을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아테네여, 안녕! 멀어져가는 아테네를 아쉬운 듯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