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은. 정

길은정 이야기/ [참조 : 구자형의 위대한 한국 가요]

목향 2010. 1. 3. 20:40

 

 

 

* 길은정 이야기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그곳의 토박이로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때 그때 필요에 의해 거처를 옮겨 다니기는 했지만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들은 아직도 그녀를 순수한
강원도 화천 토박이 소녀로 머물러 있게 한다. 3남2녀 중 막내였다.

길은정의 어린시절은 지극히 평범한 환경속에서 보냈다.
화천 유일의 인쇄소를 하는 넉넉한 집안은 비교적 부유한 편에 속했으나
여느 집에 비해 전혀 별다를바없는 생활이었다.

화천호수에 드리워진 산그림자를 보면서 초등학교를 오갔고,
그 산그림자를 보며 고래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부터 집마당에 피어나는 꽃과 오빠들이 치던 기타,
그리고 책읽기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한의사였던 큰아버지는 거문고를 타며 시조를 읊는 분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고
음악을 무척 사랑하시던 감성적인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쪽의 끼를 이어 받아선지 그녀는 어려서 부터
유난히 섬세하고 감성적이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남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이미 다섯살 때 부터
아이가 사라져서 찾아보면 이발소에서 어른들이
귀여운 꼬마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5원씩의 관람료를 냈고
길은정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같은 노래들을 부르곤 했다.

화천을 떠나 명문 춘천여고 시절에는
피아노와 무용과 미술에도 뛰어났으며 전국 미술대회에 나가 수상한다.
특히 고운 얼굴의 여학생으로 손꼽혔다.

길은정은 어린시절부터 음악에 대해 유난히 관심을 가졌다
TV에서나 볼수있는 멋진 가수들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들을 닮고 싶은 욕망이 그녀의 생각을 지배한다.
모든 것은 그녀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초등학교 3학년때 부터 오빠들이 치던 기타를 어깨너머로 배워,
그 이후부터 개학을 하고 오빠들이 학교로 돌아가면
그녀는 날마다 기타를 치고 살았다.

자신의 방에는 엄마의 오래된 재봉틀과, 아버지의 전축이 놓여있었다.
음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새로 나오는 음반들을 자주 사오셨다
그걸 듣는 사람은 주로 그녀였다.
오빠들이 구해다 놓은 외국의 원판들도 매일 들었다.
샹송도 있었고, 기타 연주 음반도 있었다.
확성기 앞에 귀를 늘어뜨리고 앉은 허쉬파피가 그려져 있는
LP 판의 레이블은 그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친숙한 그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자신만의 삶을 그려가기 시작했던 듯 싶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방식을 독특하게 배워 갔고,
훗날 음악을 하게 되면서도 그러한 특징적인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었다.

집안에서는 평범한 교사가 되는것을 원했다.
하지만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었던지 대학시절 서울로 올라와
우연한 기회에 삼포로 가는 길의 강은철씨를 만났고
강은철씨가 소개하여 김정호가 노래하던 무교동 '꽃잎'등에서
아르바이트 통기타 가수 활동을 한다.
그 시절은 가장 자유분방하고 중요했던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오랫동안 갈구해 왔던 자유 분방함을 마음껏 누리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옴니버스 앨범 '웃기는 사람 웃기지 않는 노래
-젊음집중(신형원의 불씨, 해오라기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에
참여해 '소중한 사람'(김미지 작사, 작곡)을 노래한다.
그녀의 데뷔히트곡이다.

그런 생활속에서 그녀가 지니고 있던 선천적인 예술성도 한껏 나래를 폈다.
그 동안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예술적 기질이 행동으로 표출 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표현들을 통해 하나의 틀을 형성하며 정립되어졌다.

게다가 길은정의 길을 뒤바뀌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소중한 사람'의 홍보를 위해 음반제작자가 잡아 놓은
kbs라디오 '가위 바위 보'에 출연했을 때,
당시 프로듀서 박문영은 길은정의 재능을 단숨에 알아보고는
그 이튿날 부터 MC로 기용한다.

이후 가수보다는 방송인으로 더욱 인정받아
<뽀뽀뽀> <영11> <가위바위보> <가요톱
10> <정오의 희망곡> 등 유명 프로그램의 명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고 숨을 거두기전까지도 원음방송의 음악프로그램인
<길은정의 노래 하나 추억 둘>의 DJ로 활동을 하였다.

길은정, 이름 석자에서도 그녀의 독특한 개성이 짐작된다.
그녀의 부친은 길은정이란 이름을 지을 때,
그 시절 최고의 스타성우였던 성우 '고은정'의 팬이었던 아버지는
고은정 처럼 좋은 목소리를 갖고 살라고 '길은정'이라 이름 지었기 때문이다.

정식 독집 앨범은 1989년이었고, 길은정 1집이었다.
우울한 샹송(이수익 시, 김선민 작곡),
사랑굿118(김초혜 시, 김선민 곡), 애가(이창대 시, 김선민 곡, duet 이광조)이
주목 받았고, 1990년 길은정 2집을 통해 예감, 피할 수 없는 이별,
1992년이별의 풍경, 떠나는 이에게, 그런 이별인줄 알면서 등을 발표했다.

1996년에는 길은정 시낭송집을 '명동에서 홍대 앞 까지'라는
타이틀로 70년대 부터 90년대 까지 젊은 가슴들을 적셨던
국내외 명시들을 3cd/1set로 발표했다.

2002년 3월 29일에는 귀로 듣는 책 'starbooks 시리즈 3'
'길은정의 이솝우화(6cd/1set)를 발표했다.

저서로는 암에 걸리면서 하와이로 투병과 휴식을 위해 건너가 집필했던
그럼에도 행복하다'(자유문학사/1997년/20만부 판매의 베스트 셀러 기록)와
길은정 시집 '사랑하고 있습니다(자유문학사/1998년),
투병기 '내가 행복하게 사는 이유'(누림/2000년)가 있고,
수상경력은 1984년 mbc연기대상 mc부문 신인상,
1984 kbs 가사대상(소중한 사람/김미지 작사 작곡),
1992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dj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참조 : 구자형의 위대한 한국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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