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타인의 글)

무화과 / 문 숙

목향 2011. 6. 3. 08:39



무화과 / 문 숙

비구니 스님과 함께 산길을 오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는 숲길
비구니 스님 머리 위에서 뭉게구름이 생각처럼 피었다 사라진다
어디선가 날아온 벌 한 마리가 스님 주위를 빙빙 돌며 따라붙는다
꽃을 버린 저 몸에도 달짝지근한 곳 있었던가
하얀 목덜미를 훔쳐보며 닝닝닝 틈을 노린다
뒤따르던 내가 팍, 때려잡고 싶은 마음 참는다
벌에게 내가 붙들려 발을 헛놓는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물방울 터지듯 처연하게 스미는 봄날
민둥산 같은 스님 머리에 간간이 나뭇잎 그림자가 진다
못 본 척 못들은 척
스님은 숨소리도 없이 가던 길만 간다
제 몸속에 꽃을 버린 나무 한그루 저 홀로 무심하다

경남 하동 출생.
2000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단추』
2005년 서울시 문화재단 문예지원금 수혜
현재 《불교문예》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