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여행

영랑 " 김윤식" 생가방문

목향 2011. 9. 16. 15:48

 

영랑 " 김윤식" 생가방문

 

 

영랑 "김윤식"  

청산도 가는 길에 강진의 영랑생가에 잠시들렀다.

 뒷동산에는 대나무가  쭉쭉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매우 아늑한 맛을 준다.

영랑이란 아호(雅號)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여자로 착각하는 이가 있는것 같다.

생가에 올라가면서 여자여? 남자여? 묻는 이가 있었다.

 

 

영랑시비

 

영랑의 대표적인 시< 모란이 피기가지는> 아마도 학교 때 이시를 읊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옛날을 상기하면서 가만히 마음으로  음미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란 역설적 표현으로 유명한 이시는1934년(문학) 지에 발표되었다.

 

 무릇 <예술> 을 거듭생각해 보았다. 유한의 인생에서 그자취를 남긴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일이다.

사람은 가도 그의 작품은 살아 움지이지 않는가!!

한 예로 내가 좋아하던 "오드리 햅번, 그레고리펙, 제니퍼존스 는 갔어도

그들이 열연했던 작품은 영원히 남으리......

 

 

 

방문기념사진

 

김영랑(金永郞, 1903년 1월 16일 - 1950년 9월 29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대지주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강진보통학교를 다니면서 13세의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1년 만에 사별하였다.

 

졸업 후 1917년 휘문의숙 ( 지금의 휘문 중·고등학교 전신(前身))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 운동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강진에서 의거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 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서 공부하다가 간토 대지진 때 귀국하였다.  

 

 

1930년대 시문학파로 활동했던 영랑은

아름다운 우리말 시어를 구수하게 엮어서 한국 순수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시인이다.

 

 

 정지용,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에 가입하여 

여러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이 무렵 쓴 시이다.

 

영랑의 전성기에는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1950년 작고하기까지 86편을 발표 그중 60여편이 일제 강점기에 삭발 .창씨개명,신사참배

등을 거부하며 생가에서 거주하며 쓴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