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03. 5월 26일. Sound of Music
4년전 쯤,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있던 비디오 대여점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었다.
대부분의 비디오테입은 다른 가게로 넘겨지고
그리고도 남은 비디오테입들을 작품에 따라 천원에서 만원 수준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게 판매를 했었다.
그때 나도 몇편의 영화 테입을 구입했었다.
'로마의 휴일' 등 몇편의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들은 무척 비쌌었다.
그 작품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며
그나마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단 한푼도 에누리없이 비싼값을 치르고
구입을 해뒀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비롯해 여러가지 인상깊게 봐왔던 영화테이프를
골라 사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여행중에 디즈니 만화영화 몇편을 사온 것까지 합치면
꽤 여러편의 비디오 영화를 아무때나 볼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셈이다.
그 중에서 때에 따라 기분을 바꿔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영화가 있다.
특히 몹시 우울할 때마다 나는 'Sound of Music' 을 본다.
하도 여러번 보아서 대사를 다 외울정도지만
그래도 언제나 내 마음을 밝게 만들어 주는 명약같은 영화다.
기타를 든 씩씩한 발걸음의 쥴리 앤드류스가 연기했던 '마리아'의 캐릭터는 우리 누구나 원하는
아름다운 여인과 어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고해할 줄 알고, 현명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맑은 새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그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노래로 사랑을 이어가며 지혜롭게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여인.
조국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는 전시 상황에서
절대 조국을 버리고 독일군 지휘관으로 가야하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는
일심. 애국심.
권위적이며 까다롭게 비춰지던 '폰트랩'장군의 캐릭터 역시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군의 명령에 따를 수 없어 탈주를 계획하다가
음악회에 출연하게 되는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의 장면은
언제나 가슴이 울렁거리게 한다.
" ....... blossom of snow may you bloom and grow
bloom and grow forever~ Edelwiss- Edlwiss~ bress my HomeLand forever....."
에델바이스라는 노래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변절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가족을 이끌고 알프스산을 통해 국경을 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알프스산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인간의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이
조화를 이뤄, 더욱 빛을 발하게 한다고 느낀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땐,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다.
날이 밝도록 몇번이고 보고 또 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더러는 디즈니 만화영화인 신데렐라도 보긴 하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 만큼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맑은 동요음반을 반드시 만들어야 되겠다는 의지를 다듬는다.
요즘 어린이나 아기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유행하는 대중가요 댄스뮤직, 힙합, 테크노가 아니다.
과외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편안한 정서이며,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릴적부터 짜여진 영재교육을 받고 적성과 상관없이 미술학원으로 피아노학원으로
태권도 도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그 시절에 맑은 어쿠스틱 악기의 동요를 듣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공격적 성향과 이기적 심성을 가질 확률은 매우 높다.
나는 가끔, '길은정안티카페'라는 곳에서 허무맹랑한 비논리로 음해를 하고
끝없는 오해를 하고 욕설을 서슴없이 써내려가는 사람들의
어린시절을 알아보고 싶기도 하다.
분명히 안정적 이고 평화로우며 행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함부로 인신공격을 하는 글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인성이 불쌍하기까지 하다.
사회에 나와서는 안그런척, 착한 척, 평범한 모습을 보이다가
참았던 분노를 엉뚱한 곳에다 쏟아놓는 일을 하면서
누가 알까봐 두렵지 않을까?
언젠가는 다 드러나게 될텐데......
그리고 하늘이 알고 있는데......
나는 그들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이버상의 맹목적 테러는 근절되어야 하고
인터넷 실명제가 현실화 되기를 기대하고
사이버테러의 근절에 나도 한 걸음 앞장 설 각오를 하고 있다.
오늘도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았다.
정직함, 정의로움, 자기 반성, 그리고 고인 연못처럼 머무르지 않는 끝없는 정진에 대해 생각하고
쓸데없는 '고소'사건에 휘말려 작업이 중단되어 있는 음반 제작 작업을
성실히 할 수 있길 바라며
모든 일은 뜻대로 하소서.....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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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1953년 영화
주연 그레고리 펙 & 오드리 햅번
<세기의 여배우들의 ‘위대한 봉사가’로서의 삶 비교>
1막 - 그녀들의 불우했던 어린시절 ‘안젤리나 졸리’의 방황하던 어린시절 #유명한 배우 부모님의 딸로 출생: 1975년 6월 4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명배우인 존 보이트와 배우 출신인 마셀리니 베르뜨랑의 사이에서 앤지(졸리의 애칭)가 출생했습니다. #반항으로 인한 자해와 자살시도: 영화촬영의 바쁜 스케줄로 가정엔 소홀했던 아버지를 싫어했고, 자기자신 그대로가 아닌 영화배우 누구누구의 딸로 불려져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었으며, 여러 번의 자살시도와 약물중독,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며 자기파괴를 일삼았습니다. 최초의 자살 시도는 불과 13살 때 였다네요. #외모콤플렉스와 정신병원: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10대 시절에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해 심리치료를 받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겪으며 혼란스러웠던 ‘오드리 햅번’의 어린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2차 대전으로 인한 가난: 오드리 헵번은 192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일랜드 계 영국인 제임스 A.헵번 레스톤과 네덜란드의 유서 깊은 남작가문 출신의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이 일어난 후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의 고국 폴란드에서 지냈는데요. 이 시절 오드리 헵번은 나치점령 하에서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 등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이 시절의 수난과 가난이 그녀로 하여금 훗날 어린이들의 가난 구호에 앞장서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2막 - 당대 최고의 미모와 인기를 가진 여배우 & 두 번의 결혼 # 할리우드의 요부로 방황하다: 데뷔 초부터 양성애, 그녀만의 독특한 성적취향 그리고 마약문제 등의 복잡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들어 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나쁜 여자로 통했어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자괴감에 사로잡힌 불행한 여배우였다고 할 수 있죠.
‘안젤리나졸리’의 제2의 인생 전환점, UN친선대사와의 인연
# 영화배우의 은퇴와 유니세프대사: 그러나 스타로서의 삶의 허망함과 환멸감이 그녀를 새로운 사명의 길로 몰고 갔다고 합니다. 영화인으로서 은퇴를 결심한 1988년, 오드리 헵번은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대사가 되어 소말리아로 날아갑니다. 에티오피아, 수단,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을 방문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등 인도주의적인 구호 활동에 앞장섰어요. 기아와 질병, 그리고 폭염으로 고생하는 소말리아 아이들을 헵번은 마치 친 자식처럼 사랑해줬고 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구원해냅니다.
4막 - 지속적인 빈민구호에 대한 관심과 봉사가로써의 삶 ‘졸리’의 5년동안의 봉사하는 생활과 6명 아이들의 어머니 # 지속적인 빈민구호 활동: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졸리는 UNHCR의 ‘얼굴’로 자리 잡았고 졸리는 그동안 UNHCR 친선대사로 캄보디아와 인도, 시에라리온, 차드 등 20여 개국 오지를 돌며 난민을 만나고 구호품을 전달했습니다. 연간 서너 번꼴로 난민촌을 방문하는 셈인데요. 그는 UNHCR 홈페이지에 ‘졸리의 저널’이라는 글을 통해 비참한 난민 실상을 전 세계에 생생히 중계하고 있습니다. # 아프리카 난민아 입양: 난민문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고 졸리는 어느새 여섯 명의 자식을 두고 있습니다. 그녀는 두 번째 남편 빌리 밥 손튼과 살면서 캄보디아 출생 아들 매독스를 입양했고, 그와 헤어진 뒤엔 에티오피아에서 딸 자하라를 데려왔어요. 세 번째 배우자 브래드 피트와는 2006년 여름 딸 실로 누벨 졸리 피트를 낳았고, 다음해 3월엔 베트남에서 남자아이 팍스를 입양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졸리는 쌍둥이 녹스 레온 졸리 피트와 비비안 마셸린 졸리 피트를 낳았구요. 그녀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래의 인터뷰 구절로도 알 수 있죠. “<체인질링>이 개봉하는 내년 2월까지 활동하고 당분간 영화계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나는 6명의 아이들의 엄마로서 매우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의 엄마의 역할을 해주고 싶다.” - 2009년 개봉작 ‘체인질링’ (Chanelling)의 홍보 차 가진 영국 BBC 방송과의 졸리의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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