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영원한 자유의 길

목향 2014. 9. 26. 16:14

 

사진 : 고향땅 <제천시 월악리 실륵사 입구>

 

영원한 자유의 길

김종선

  해인사 전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구름처럼 모여 든 인파, 장사진을 이룬 행렬, 무엇이 저렇듯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향하게 했을까? 갖가지의 상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방금 친견한 성철 스님의 사리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들이, 앞을 다퉈 고개를 내민다.

 

  나뭇잎에 옥구슬처럼 내려앉은 아침 이슬에서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드는 행, 불행에서 절대자의 존재를 도리질 하지 못하면서도 확실한 길을 몰라 나는 아직 종교 선택도 못하고 있다. 목사님의 설교, 큰 스님의 설법, 펼쳐든 책 속에서도 아직은 천당과 지옥, 인과응보에 의한 윤회설에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러한 내가 성철 스님 사리 참배에 한 자리 낀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고 사진으로 보아온 그 신비스런 결정체를 직접 대하고 싶기도 했지만, 이 기회에 수평에 선 잣대를 부처님께로 기울여 보자는 숨은 의도가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새벽 단잠을 설치고 이곳에 와 냉기에 덜덜 떨면서, 너덧 시간의 줄을 선후 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성철 스님의 열반은 불교계의 위상이 한 층 더 높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타종교인, 비종교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집중시켰다. 그중엔 호기심에 찬 눈들도 더러는 있었겠지만, 거의 사람들은 진정한 불교의 교리나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장례 7일 동안 50여만 명의 추도 인파가 몰렸고, 모든 매스컴이 앞다워 특집을 내는가 하면 다비식 이후 사리 친견만도 하루 2,3만 명에 이른단다.

 

  사리는 범어로는 Sarira인데 한문 음력으로 사리라 했고, 우리나라에선 신골 영골 이라고도 한다. 몸 전체가 사리인 전신사리, 낱알 같은 쇄신사리,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생신사리, 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 등으로 구분된다. 석가모니 부처님 몸에서는 여덟 섬 네 말이나 나왔다 했고, 이번 성철 스님의 사리는 110과가 나왔다고 보도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우리나라 양사인 통도사와 오대산 상원사에도 봉인되어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사리는 수행자가 오욕을 단절하고 청정한 계행과 흔들림 없는 선정으로 깨달음의 길로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게 된다고 불가에선 말한다. 하지만, 또 한쪽에선 사람의 척수가 참나무불의 고열을 받아서 생겨진 돌이라고 하니 그저 불가사의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사리를 가리켜 ‘오색영롱한 보석처럼 빛난 다’ 고 표현들 하는데 평범한 사람의 눈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내 시선에 닿는 첫 느낌은 ‘꼭 차돌 같구나.’ 하는 비유어가 저절로 튀어 나왔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볼수록 광채가 나고 신비스러워 더 머물고 싶었지만, 뒷사람들에 떠밀려 아쉬움을 안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영결식을 치룬 큰 마당에는 그때의 식단이 그대로 서 있고 조화 속에 묻힌 영정의 스님은 엷은 미소를 띠었지만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내려다보신다. 양 기둥에는 열 반송을 두 행씩 나누어 적었는데 수없이 암송을 하며 뜻을 헤아려 보지만 그저 안개 속처럼 아리송할 뿐이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수행의 근본을 삼았던 계율, 선정, 설법 그 어느 것 하나에도 허망한 상이 떠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역설로 표현한 것이라고 어느 스님은 말했지만, 이 송을 읽고 정곡을 찌르는 자 몇이나 될까 싶다. 궁현 당에 눈이 가니 목탁 소리와 금강경 독송이 어울러졌던 장례 때의 많은 스님들이 보이는 듯 하고 법구를 모셨던 꽃집운구 일천여개나 되었다는 가지각색의 만장 물결 다비장의 불꽃 등 그 장엄했던 의식 행렬도 보이는 듯 했다.

 

  부처님과 성철 스님을 생각해 본다. 불교의 골수는 불생불멸과 중도의 세계를 깨치는 일이라고 했다.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우리들의 자성을 일깨우는 일이라 했다. 그러기에 많은 선승들은 일체가 나지도 않고 일체가 멸하지도 않는 진리를 깨우쳐 영원한 자유의 길로 나가기 위해 화두를 붙잡고 뼈를 깎는 고행의 길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도란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중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모순 대립된 양면이 생멸을 초월하여 생이 멸이 되고, 멸이 생이 되는 반복 과정 속에 끝내 융합을 가져오는 상태를 의미한단다. 즉 모순이 융합된 상태를 말한다. 만법이 불법이라는데 그 깊이를 어찌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으리.

누군가 이런 말도 했다.

 

  ‘아니, 성철 스님은 실제 사회나 국민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으며 부모, 처자식까지, 또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가 어째서 그리 유명하냐고도 했다. 우둔한 사람들이야 그럴지도 모른다. 눈을 바로 뜨지 못한 속인들의 세계에선 나올 법도 하다. 누구나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는데, 검은 막이 가려져 그것을 믿지 못하고 찾지 못하니 어쩔 수 있겠는가. 이 세상 많이 살아도 백세를 넘기기 어려운데 영원한 진리를 찾는 큰 스님이야 이 초로 같은 짧은 인생에 연연하겠는가. 일체를 버려야 깨달음을 얻는다고 옛 조사님들도 말씀하셨다.

  “장좌불와 8년, 묵언정진10년 누더기 옷 두벌, 돈오돈수.”

  큰 스님의 대명사들이 쫙 가슴에 찬다. 아무리 진리의 길을 찾았다 해도 그렇게 큰 고행은 그분 외엔 누구도 못할 것이라는 점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해인사로 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다시 두 손을 합장하고 인사를 드렸다. 갈 때보다 느슨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먼 산등성이에 눈이 쌓여있고 갈잎, 솔잎은 발길에 채 인다. 서걱서걱 갈잎의 소리가 서글프게 들린다. 언젠가는 나도 저 갈잎처럼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인과에 의한 업보, 좋은 옷을 입기 위해서는 좋은 업을 쌓아야 한다는데 다음 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자꾸 옷깃을 여민다. 큰 스님의 누더기 옷 위로 어느 백화점 고급 모피가 겹쳐진다.

이 두 옷의 값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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