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동구나무

목향 2011. 12. 5. 19:53

 





동구나무 
- 김 종선

 

나무가 무성한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를 듣노라면 시원스레 가슴이 열린다. 아무래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니 좀 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폭 넓은 나무를 닮는다고 했든가. 그래서인지. 숲과 나무를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끄는 나무는 동구나무다. 길을 오가다 차창으로 비친 모습 이라 해도 쉬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멋스런 동구나무가 딱 버티고 서 있으면 평화롭고 아늑한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어느새 아련한 고향마을이 앞자리에 다가앉아 자연스레 오버랩 되니 감회가 새롭기 때문이다. 고향마을 어귀 성황당 동구나무는 악마를 물리친다는 고목의 버드나무로 마을의 수문장 (守門將)이고 우리들의 놀이 터며 어른들의 쉼터였다. 무더운 여름이면 들마루나 가마니때기에 앉아 이야기꽃도 피우고 뒹굴기도 하며 정신 팔려 놀다보면 어느새 해질녘이다. 저녁밥도 잊는 일이 허다했기에 어머니는 나를 찾으러 그리로 오시곤 했다. 동구나무는 시골 어디에서도 자주 눈에 뜨인다. 예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랜 세월 그 많은 추억담과 소통하면서 마을의 역사를 품어 안고 더러는 보호수로 특별한 대우를 받기도하고 한층 더 귀한 몸이 되어 정령(精靈)으로 마을을 지키기에 당산제의 주인으로 추앙 받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강화도 정족산성의 운 나무, 이성계와 칠성제, 노전스님의 법당 참기름에 얽힌 이야기 등, 이를 증명하고 있는 고사가 꽤 있는 것으로 보면 예부터 신성시되고 영험한 영역으로 부각되어 왔다고 하겠다. 인간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척 하지만 위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들인가. 일본의 쓰나미나 서울의 물폭탄등 이를 증명하지 않던가. 그러기에 인간은 원초적으로 그 대상이 누구든 절대자에 의존하고 믿으며 위안을 얻고 싶은 기대를 내면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한다. 또한 위와 같은 거창한 영적 존재가 아니더라도 시원한 그늘의 둥구나무가 되어 빙 둘러앉은 담화에서 피로를 날리고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함박 웃음꽃을 피워내기도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무성한 잎을 달기도하고 때로는 새 하얀 꽃송이를 피우기도하며 삭풍에 울어대는 나목에 이르기까지 그 고풍스런 자태를 잃지 않고 온갖 자연의 소리로 연주 하니 한 폭의 예술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동구나무는 환희와 슬픔의 증표이기도 하다. 보통 동네 어귀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기 일쑤니 배웅과 마중의 추억의 장이 되기도 한다. 어느 사진 전시회에서 본 잊혀 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어느 설날 동구나무 밑에서 수녀 복 차림의 딸과 한복 차림의 늙은 아버지가 헤어짐의 손을 젓는 장면이었다. 그 말없는 사진 한 장이 주는 수많은 침묵의 언어는 내 심중에 깊이 못처럼 박혔다. 사진 속 주인공의 뉘앙스도 컸지만 어머니와의 생이별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족상잔의 그 6.25 전쟁! 당시 아버지는 동네 부자라는 이유로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피신해야할 절박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어쩌자고 당신의 소실과 나만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셨는지. 동생들은 너무 어리고 어머니는 병중이라는 이유였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막연했던 그때의 이별의 장이 바로 동네 어귀였고. 어머니와 마지막 헤어지던 자리도 바로 그곳이었다. 외조모와 내가 상여 뒤를 따르다 쓰러지듯 주저앉은 곳, 그 간절하고 애절했던 모습이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되살아났기에 더욱 마음 아팠던 것이다. 아무튼 동구나무는 유년의 아련한 추억과 함께 마음 한 자락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마을의 지킴이 동구나무여! 나는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그냥 당신을 닮으려 합니다. ㅡ 햇살 한 점 바람 한 점 (112명의 라이프스토리) / 한국수필 추천작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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