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에 들렀더니 여성인 듯 보이는 어느 회원님께서 요즘 많이 우울하다는 짧은 댓글을 올리셨다. 우울증을 어떻게 이겨내고 그 '회색분위기'에서 어떻게 빨리 해방될 수 있을까?
우울증은 시도 때도 없이 누구에게나 불청객으로 찾아올 수 있다. 나도 예전에 주로 어린 시절에 이따금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은 자살할 생각도 해보았다. 그 원인을 스스로 따져보니 나의 어느 소녀에 대한 짝사랑이 그 근원임을 알게 되었는데 일단은 당장 이뤄질 수 없는 나의 은밀한 사랑의 감정을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그녀를 그리워하지 말자고 맘을 고쳐먹기 사작하니 서서히 우울한 생각도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그 보편적 원인을 지적한다면 자기가 감지하는 욕구들 가운데 특히 중요시여기는 욕구가 쉽게 충족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곧 주요 욕구충족의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느끼는 데에 우울증의 뿌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니 우울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는 시급히 그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 곧 해방에의 길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를 침착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당장 또는 가까운 시일 안에 나의 욕구가 충족되기 어럽다고 판단되면 일단은 그 욕구의 충족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좋다: 체념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을 고려하여 그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가장 쉬운 수단방법부터 해결해나가기를 시도하고 끈기있게 노력하면 한단계씩 원하는 욕구충족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은 실증될 것이고 거기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울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어졌을 것이다. 문제는 욕구에 있다: 자기가 감지하는 욕구의 성격과 중요도에 대해서 늘 성찰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몸을 가지고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울증의 원인이 우리 몸의 어느 구석에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의학적으로 뇌의 어느 부분에 어떤 호르몬이 부족하면 그 결핍이 어떤 정신작용의 원인이 된다는 이론이 있듯이 가령 누구나 체험하듯이 대변을 누기 전과 뒤의 기분이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는 것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가령 산이나 들로 산책을 나서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고 평소에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식사를 해보는 것도 기분전환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고있는데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그리움의 충족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 해결의 길은 그 그리움의 대상을 만나는 데 있다. 염치 없고 쑥스럽더라도 자기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해야 하고 실제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엔 상대방의 자유로운 동의가 전제조건이다. 억지로 그/그녀를 만나고자 한다면 일은 더 복잡하게 꼬이게 되고 만남은 이뤄지기 어럽게 된다. 거기서 다른 병적 증상인 스토킹이나 성폭행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서로 만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거기엔 인내와 기다림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따금 연예인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이에 관해선 이미 내가 쓴 글이 여기에 올려져 있다). 주로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을 풀지 못하고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없애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짓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왜 싸울 용기를 내지 못할까?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생명이 지닌 자연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한 결과가 자살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삶에의 의지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아예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부모들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맹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식은 삶이란, 생명이란 무엇이며 인간과 자연과 사회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참다운 앎이다. 이런 생각의 맥락에서 졸저 '인간해방의 사회이론'이 써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참된 세계관과 바람직한 인생관의 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독서의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으로 어느 순간에도 망각해서는 안되는 한 가지가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지금의 우울한 기분도 조만간 변할 것이다. 흐린 날이 일년 365일 지속되지는 않는다. 슈베르트는 '봄의 신앙'(Fruehlingsglaube, D. 686)에서 바로 이 사실을 노래한다:
Die linden Lüfte sind erwacht, 부드러운 공기들은 깨어나있다,
Sie säuseln und wehen Tag und Nacht, 그들은 살랑거리며 밤낮으로 분다,
Sie schaffen an allen Enden. 그들은 모든 곳에서 창조한다.
O frischer Duft, o neuer Klang! 오 신선한 향기여, 오 새로운 소리여!
Nun, armes Herze, sei nicht bang! 이제, 가여운 가슴아, 두려워하지 말라!
Nun muß sich alles, alles wenden. 이제는 모든 것은, 모든 것은 바뀌고야 만다.
Die Welt wird schöner mit jedem Tag, 세상은 날마다 더 아름다워진다,
Man weiß nicht, was noch werden mag, 사람들은 무엇이 또 될 것인지 알지 못한다,
Das Blühen will nicht enden; 꽃피우기는 끝나지 않을 테니;
Es blüht das fernste, tiefste Tal: 가장 멀고 가장 깊은 계곡에도 꽃이 핀다:
Nun, armes Herz, vergiß der Qual! 이제, 가여운 가슴아, 고통을 잊어버려라!
Nun muß sich alles, alles wenden. 이제는 모든 것은, 모든 것은 바뀌고야 만다.
Johann Ludwig Uhland (1787-1862) (옮김: 새벽 배동인)
2009.03.14, 새벽 배동인(전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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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향기로운 삶의쉼터'에서 모셔온 음악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새벽 배동인:
Schubert, Frühlingsglaube, D686
Ian Bostridge, Tenor / Julius Drake,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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