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 모습
청소년기 사람들은 어른이 빨리 되고 싶은 성급함에서 천천히 흐른 세월을 답답해 하지만 어른이 되고나면 어느새 황혼의 그림자가 자신을 엄습해 옴에 움칠해 진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 길목에서 조용히 인생을 관조하면서 번개같이 지나가버리는 덧없는 세월을 아쉬워해 본다. 그리고 손자손녀들의 재롱에 흐뭇해하면서도 문득 지난날의 자신을 회상해 본다.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오직 외부적인 삶에만 의존해 왔던 지난날들 이었건만 이제 자녀들은 부모 곁을 떠나고, 다정했던 친구들도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니 어쩐지 세상이 허무해 진다. 팔팔했던 청춘의 기백은 사그라지고 생기로 빛나던 오관도 그 기능을 점차 잃어간다. 굽은 허리 그리고 불안정한 걸음,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옷걸이가 제 기능을 발휘해 주지 않는다. 맛있게 차려진 음식도 마음껏 먹고 싶지만 후한이 두려워 젓가락만 머뭇거릴 뿐이다. 때론 이른 새벽 자신도 모르게 깬 잠결에 엎치락뒤치락 하며 헛기침을 한다. 처리할 일도 없고, 만날 친구들도 많지 않건만 왠지 초조하고 불안한 생각만이 주변을 감돌고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고 했다.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 아니던가. 꼭 쥔 주먹에 동전 한 개 쥐어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관위에 뿌려진 한 삽의 흙인들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운명(殞命)의 순간에 눈물을 삼키는 자녀들이 있기에 선녀들의 옷자락에 휘감겨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가는 긴 여정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후회 없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노라고 읊조릴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소 우주적이며, 신비하고 숭고한 것이라고 했는가 보다.
어느 날 허리가 활처럼 휜 노인이 택시를 타려고 손을 흔들고 있지만 빈 택시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른 새벽인데도 보따리를 머리에 인 할머니가 힘들어 하며 시내버스를 탄다. 파란불이 깜박거리는 건널목을 힘겹게 건너는 노인이 있다. 찬바람이 윙윙거리는 육교위에서 손을 벌리고 있는 노인이 앉아 있다. 지팡이를 쥔 노인이 도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다.
녹음이 우거진 등산로입구에는 많은 노인들이 등산에는 아랑곳없이 소주 한 병에 새우깡을 놓고 빙 둘러앉아 아름다운 옛 시절의 추억담에 서로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초야에서 자연을 벗 삼아 청빈한 전원생활을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노인들에게 답답한 아파트빌딩 숲은 숨쉬기조차 힘든 창살 없는 감옥이다. 이름조차도 기억하기 어려운 단지 이름인데 출입구 잠금장치까지 이중 삼중으로 되어 겁이 나서 밖을 나갈 수가 없다. 해외여행도 한때, 체력에 한계를 느끼면서 그 의욕도 식어져 간다. 가족행사에 참석하여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 앞에 앉아 표정 없이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다. 담배연기 자욱한 공원의 벤치에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바둑이나 장기 두는데 몰두해 있다. 노인정에는 할머니들이 동전을 몇 개씩 놓고 화투놀이에 빠져있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김밥을 팔아서, 젓갈을 팔아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장학 사업에 기꺼이 희사하는 할머니들, 한 푼 한 푼 얼마나 피나는 돈인데 그런 아름다운 결심을 하셨을까. 과부가 과부 속을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우리사회의 따뜻한 정이 아직은 메마르지 않았음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존경하는 나의 고교 선배님은 연로하셔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지만 동창회모임 때면 아들의 부축을 받고 참석하시어 젊은 후배들에게 어눌한 언변으로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곤 하셨다. 참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세상에 생로병사의 외나무다리를 비켜가는 사람은 없을 진데 나라고 별도리가 있겠는가. 인간의 몸은 성장기가 지나면 그 왕성했던 세포도 하나 둘씩 죽어가고 튼튼했던 뼈도 점점 약해져 바위 같은 자세는 흐트러지고 대쪽 같은 허리는 굽어만 간다. 육신이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다만 육신을 다스리는 정신이 총총하다면 노후 삶은 더욱 중후한 향내를 풍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목표를 향해 열심히 뛴다. 때론 자신의 운명을 점쳐보기도 하고, 부귀영화를 꿈꾸어 보기도 하지만 세상사는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열심히 뛰는 것이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때로는 불안해하기도 하고 초조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약한 생각만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내면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미래의 내 모습도 생각해 보면서 남을 위해 뭔가 봉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면 자신만의 행복한 미래는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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