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한국 수필작가회 대표작선집 / 내가 나를 보며

목향 2022. 12. 10. 14:55

책 표지  

따끈따끈한 책

* 목차일부 (밑줄 그은 제목 본인 )글

내가 나를 보며

김종선

 보살사 대웅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 간절한 마음을 모은다.

부처님, 이 코로나 19, 대재앙을 빨리 종식해 주시고 제 소망도…….”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이 역병의 대혼란, 다음 달에는 괜찮겠지, 괜찮겠지……. 목을 빼고 기다렸지만 벌써 3년째를 맞는다.

친구 만나 밥 먹고 차 한 잔 나누던 그 평범한 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이 힘든 기간을 나는 인근 사찰을 찾는 일로 많이 메꿨다. 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정취도 맛보며 자신을 찾는 성찰의 기회도 되니 그나마 조금은 뜻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승용차로는 약 10여 분, 시내버스로 30여 분! 그러기에 아직은 괜히하면서 차를 없앤 것을 많이 후회했다. 작은 차를 다시 구매할까도 망설이지만, 아이들 손사래에 그만 지고 만다. 나의 어설픈 운전 솜씨에 남도 나도 죽을 수도 있기에 그냥 누른다.

이 사찰은 천년고찰 법주사의 말사로 인근에선 가장 오래된 절이다. 내가 이 사찰을 찾는 이유는 집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서다. 버스에서 나 혼자 내리기 일쑤다. 여기에 정식이름표를 달지 않아 나그네 방문객인 셈이지만,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린다. 마음은 108배도 부족하지만, 겨우 10분의 1로 끝내고 짧게 기도를 한다. 그러다 보면 부처님의 엄중한 말씀이 들린다.

네가 잘되고 복 받는 것은 내가 주는 게 아니고 오직 나의 가르침을 실천함이다. 그게 깨달음이니라. 행복도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물속, 산속 깊이 숨는다 해도 자신의 업보는 그림자 되어 따라다니네. 죽을 때 털털 빈손이지만 업()만 가지고 간다네. 그러니 잘되고 못됨은 오직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에 있음이라.”

이 얼마나 서늘하고 무서운 불호령인가?

법당을 나서면 밝은 햇빛, 맑은 바람, 공기가 더욱 상큼하다. 으레 사찰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커피 한 잔 뽑아 들고 나무 밑에 앉아 홀짝홀짝 마시면서 하늘과 먼 산, 주변 사물에 눈길을 주며 나를 깊이 있게 바라본다. 삶의 의미는?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노라면 구름이 재주를 부리며 둥둥 떠다니는 모습에서 서산대사의 게송을 암송하기도,

생야일편부운기 (生也一片浮雲起), 태어남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생겨나는 것과 같고

사야일편부운멸 (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소멸하는 것과 같도다

부운자체본무실 (浮雲自體本無實 ), 뜬구름은 그 자체가 본래부터 실체가 없는 것이니

생사거래역여연 (生死去來亦如然), 나고 죽고 가고 오고 하는 것 또한 이와 같도다.”

우울하거나 참으로 삶이 권태로울 때 그 언젠가부터 위 시구를 자주 읊조렸기에 참 신기하게도 구구단처럼 줄줄 나오니 엷은 미소가 흐른다.

시모 님, 49재도 이곳에서 치렀다. 물끄러미 화덕에 눈길을 준다. 행사 끝으로 당일 이용된 모든 사물은 불에 태워지는데 타닥타닥 불길 속으로 어머님의 모습이 어리고, 결혼해 40여 년! 어머님과 한 번도 얼굴 붉힌 적이 없었으니 오직 그것은 어머님의 이해심과 관용 덕분이었다. 또한, 자연스레 겹치는 그리운 피붙이들. 어머님을 대신했던 외할머니, 고모님, 이모님, 그때는 왜 그토록 아둔했었나? 효도가 별것인가! 어쩌다 가끔 맛있는 거 사드리고 적지만 용돈 얼마 속옷 주머니에 넣어드리면 될 것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이래저래 마음이 아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힘주어 말하고 싶다. 세상 자식들아! 회한에 울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하기를,

어버이 살이 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지난날 입으로만 잘잘 외우던 송강 정철의 시조를 이제야 마음으로 되뇌어 본다. 이렇게 늙어서 말이다.

뜰앞 화단의 예쁜 꽃들, 윤이 반질거리는 장독대에서 스님의 정갈한 마음과 손길도 느끼고 아름드리 고목, 돌담 찌든 이끼에서 세월을 읽는다. 돌담 밑 생명수 한 잔 들이켜며 목을 축이다 보면 어느새 되돌아갈 버스가 당도하고 이렇게 또 내면의 나를 만나면서 하루의 권태로움을 잠재운다. 그러기에 귀로의 버스에 앉으면 몸과 마음이 조금은 정화되면서 내일을 살아갈 영감과 기운을 얻기도 한다. 내 몫으로 베풀고 나누며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아 내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