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11월호 표제>
목차일부 / 215 p 에 본인글 게재
<본 문 >
손편지의 단상
김종선
우편함이 그득하다. 이번엔 다 없애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아 통째로 들고 나서다, 그래도 혹시,
“ 어마! 이 카드가 아직 여기에…….
이 낯익은 그림카드는 참으로 오래전 얘기를 끄집어낸다. 아름다운 호숫가 줄지어진 야자수 사이로 오토바이를 탄 두 젊은 남녀가 환호하며 달리는 모습에 간결한 내용 수려한 필체, 글은 곧 그 사람이라 했던가 많이 호감이 갔던 그림엽서. 폭탄이 퍼붓는 당시의 월남 상황과는 거리가 먼 이 카드는 아마도 평화를 갈구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는 듯했다.
1960년대 중반쯤인가 월남전은 치열했고 자유 수호란 이름으로 우리 군인들도 파병되었다. 당시 나는 초년병 선생으로 맡은 업무 중 하나가 위문품, 위문편지를 장병들에게 보내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자연히 뭉텅이 보따리에 우표도 없는 내 편지가 끼게 되었고 그것이 한 장교의 손에 들어간 것이 인연이 되어 바로 위 카드를 첫 답신으로 받은 것이다.
얼굴도 그 무엇도 모르는 그와의 편지는 꽤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그의 실상을 그릴 수 있을 만큼 되었을 때쯤 그가 꺼낸 한 구절, 이미 결혼한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누가 보아도 분홍빛 사연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쌓인 편지의 부피는 그의 정성과 따뜻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에 파문이 일었다. 이후 나 역시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가 전장에서 무사히 돌아왔지만,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불운은 그 엷은 기억들조차 없애야 했기에 한 줌의 재로 날려버렸는데 숨어있던 이 카드 출현은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고 글의 소재까지 되다니, 아마도 이 엽서처럼 어딘가 마음 한구석 흐릿하나마 그의 잔영이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우리아파트 그늘막에 지인 몇이 모였다. 그때 우르르 초등생 몇이 모여들더니 먹고 떠들며 장난이 한창이다. 그 모습을 보던 한 지인, 저쯤의 아이들을 키울 때가 가장 행복했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름대로 의미야 있었겠지만, 어쩜 내 인생에서 송두리째 빼내고 싶은 시절이었다고 답했다. 그 무렵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하늘 한 번 쳐다볼 겨를 없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날만큼 힘겨웠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냐고? 조금은 부유했던 가정의 부모님 사랑 속에 마냥 즐거웠던 어린 날들, 그리고 초년병 선생 시절이었다고…….
그 당시 통신 수단이란 손편지가 고작이었고 시골 한 자취방 호롱불 밑에서 낡은 라디오를 벗 삼아 쓰다 지우고 또 쓰고 그 정성 어린 편지들, 오색 꿈들이 오순도순 담기던 그 순수성을 지금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때로는 즐겨 읽던 책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 젊음의 고뇌와 기쁨도 어설프나마 편지글에 실어나르던 그 풋풋한 시절의 추억들 그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 아마도 그때는 빨간, 큰가방 둘러멘 우체부를 기다리던 맛으로 살았지 싶다. 그중 위 군인 아저씨와의 주고 받은 사연들은 가장 앞자를 차지하면서 아름답고 그리운 잔영 으로 흐릿하나마 영원하 존재하지싶다. 또한 가까웠던 친그들과의 소통 그들도 지금쯤은 많이 늙었을 테지. 아니면 위의 군인 친구처럼 먼 세상으로 떠났거나,
‘그래. 세월의 강물을 누가 막을 손가 이것이 인생이거늘!’
요즘 젊은이의 어쭙잖은 시선이 나를 응시한다.
“이 꼰대 할머니야, 지금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그 아날로그적 촌스러운 이야기를 들먹이냐고?”
물론 나도 컴퓨터 자막을 누르고 전자메일로 편지 쓰며 검색으로 길도 찾는다. 또한, 많은 사람이 찾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신식할머니로 문명 이기의 편리성을 잔뜩 누리고 있다.
그러나 어쩐지 내 가슴은 윤기가 없고 어쩌다 찾는 영화관에서도 도대체 감동할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내 시야엔 영화 모정과 애수의 장면이 감동으로 다가오고 해바라기와 닥터 지바고의 잔잔한 영화 음악이 가슴을 적신다. 어쩌다 접하는 책 속에서도 젊은 날 빠져든 테스와 부활의 느낌은 찾을 수 없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컴퓨터 자판에 익숙할 법도 한데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백지에 펜을 들었을 때 술술 잘 풀리나 왠지 기기 앞에 앉으면 무언가 제어 받는 느낌이다. 물론 원고 수정하기도 좋고 파지도 생기지 않으니 그 편리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물론 세대 차이의 격차와 관점, 고루한 의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사람들 그 영민한 머리로 약삭빠르게 돌아가는 세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꼬집을 수 없는 2% 삭막한 느낌 아마도 인간 본연의 정서적 사고나 지혜가 부족한 듯한 우려, 나만의 걱정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하루가 멀다고 변화하는 제4차 혁명 시대로 돌입했다. 하지만 분명 지난날의 소중한 자산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겠는가! 그러기에 역사와 고전은 귀하고 소중하다. 둔필승총(鈍筆勝聰)이란 말이 있다. ‘어설픈 기록이라도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 는 말로 기록이 기억을 앞선다는 뜻이다
아무튼, 한 눈은 위를 보고 한 눈은 아래를 응시하면서 그 순수했던 아름다움만은 잃지 않은 채 오늘을 잘살아볼 일이다. 오늘 바로 여기 지금이 소중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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