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12월의 마음
김경실 | 아픈 엄마 지구(2)
김귀자 | 엘리제를 위하여
김기현 | 곡선(曲線)의 미
김순란 | 내가 품은 것들
김정식 | 무소의 뿔처럼
김정옥 | 짓는 중
김종선 | 황혼의 들녘에서 (본인글)
김중희 | 쉰 살 먹은 괘종시계
김현순 | 뜰 안에 사계
박혜자 | 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백승국 | 얼굴
서영수 | 들 이야기
황혼의 들녘에서
김종선
남편의 산소 옆에 아까부터 앉아있었다. 바로 이 자리는 내가 영원히 잠들 저 세상 집터이기도 하다. 승용차를 없앴기에 꽤 오랜만에 혼자 왔다. 바람이 휙 지나갈 때마다 낙엽이 우수수 춤을 춘다. 지난 추석에 왔을 때만 해도 좋아하는 보라색 빛을 띤 들국화가 무리를 이뤄 반겨주었는데 어느새 고개를 떨구니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 서걱서걱 늦가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황량하고 쓸쓸하다. 다만
‘죽어 천년 살아 천년’
이란 말의 주인공, 주목만이 울타리로 튼실히 자라 푸른 빛의 기상으로 위안을 준다.
삶과 죽음! 그는 2m의 땅 밑에 누워있고 나는 땅 위에 앉아있다. 실제 두어 걸음 사이지만, 만날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이승과 저승, 하늘만큼 공허하고 아득하다. 얼마 전 가까운 후배가 남편의 상을 당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의 슬픔은 심신을 가누기도 힘들어 보여 돌아오자마자, 생자필멸(生者必滅), 생로병사(生老病死)란 좀 묵직한 표현으로 위로의 문자를 보냈었다. 하지만, 실제 그 말이 무슨 위로가 됐겠는가? 그도 나도 진즉부터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터, 머리로는 끄덕인다 해도 실제 머리와 가슴의 감정 깊이는 다르다.
나이 탓일까? 나는 근년, 아니 남편이 멀리 간 후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구기 힘들다. 그러기에 성직자, 예지자, 철학자들의 고견에서 무언가 얻어보려고 끈질기게 애는 쓰는데 시원한 답은 얻지 못한다. 한 번 죽으면 살아오지 못하는 이 불가사의 한 영역, 그 누군들 시원한 결론을 낼 수 있을까? 어쩌다 잠시 죽었다 살아난 임사체험에서 분명 영혼 불멸의 사후세계는 존재한다는 학설도 종종 만나 조금의 위안이 되어 먼저 간 그리운 이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품어 보지만,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
그러니 이제라도 이 무거운 과제를 안고 헤매지 말고 부질없는 허무한 바램과 욕심, 망상에서 그만 좀 깨어나 현명하게 오늘을 살자고 소리 없이 외쳐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죽음의 문제가 풀어 질까? 어쩔 수 없으니 스스로의 자기 합리화일 뿐이 긴 하지만 어쩌랴 !
그래. 우선 살아있으니 무릎 꿇어 감사할 일이다. 78억 인구를 100명으로 압축해서 나온 자료, 65세 이상에서 산자는 고작 8명이라 한다. 더구나 만인이 두려워하는 암이란 병마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인가. 흔히 노년의 삶은 힘없고 외롭고 참 별 볼 일 없는 꺼져가는 불빛에 비유되지만,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갈 가치와 희망의 기회로 분명 또 하나의 값진 인생길이라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자식들 잘 키워 사회에 내놓았고 하늘 한 번 마음 놓고 쳐다볼 여유 없이 버티며 살아낸 40년의 직장생활은 지금 돈 벌지 않아도 밥은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티격태격 억겁의 인연 이란 부부의 연도 끝나니, 이제 남은 생은 제3의 인생길이 아니겠는가. 홀가분한 자유와 여유를 구가하고 살면서 부딪히는 인간관계에서 역지사지의 힘을 빌려 ‘그럴 수도 있겠거니’ 화해와 용서로 적응하며 의젓하게 살아내자.
노인의 성격은 변치 않는 고집불통이라 한다. 이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흐릿하지만 이나마 기운이 남아있을 때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놓지 않을 일이다. 5년의 암 투병이 끝난 후 담당 의사 말, 처음에 종양 중에서도 악성 (삼중음성)이라 사실은……. 그러나 이렇게 잘 이겨냈으니 축하한단다. 건강나이 60대이니 잘 사시라고 한마디, 순간 휴~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지만, 문득 지난날의 혹독한 고통과 시련이 밀려와 울컥 눈물이 어렸다.
잘 살기 위해서는 우선 심신의 건강이 첫째다. 그러기에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식성도 제법 까다롭다는 말도 자주 듣게 되었다. 또한,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좋은 영화, 음악에 심취하며 여행도 즐기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노력한다.
요즘 코로나 19로 먼 여행길이 막혀 참 아쉬움이 크다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내방 머리맡의 창문으로 부자 산봉우리가 우뚝하고 좌우로 고만고만 작은 새끼 봉을 거느린 능선이 어느 날 시야에 딱 와불(臥佛)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신기한 그 모습은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는 소중하고 숭고한 명상의 시간이 되어 조금은 속된 기도문도 흘러나오니 어쩔 수 없이 한 인간의 약한 단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충만하다.
고혹적 빛을 발하던 해님이 서산마루에 걸렸다. 서둘러 자리를 털었다.
이별의 인사를 건네기 위해 정 자세로 묘 앞에 섰다.
“ 여보, 여기 마음 한 자락 놓고 갑니다. 늘 생각나고 고마우며 죄송합니다. 제발 아프지 말고 편히 지내고 떨군 자식들, 특히 외동 손자 큰 인물로 키워 주세요. ”
일출보다 일몰에 더 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마도 더 황홀하고 짧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땅밑으로 들어갈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건대, 나이 먹은 만큼의 값으로 곱게 늙으며 많이 아프지 말고 눈 감게 된다면 더 한 축복이 없을 듯하다.
산에서 내려온다. 반야심경의 끝머리,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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