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글은 글이 말한다

목향 2020. 12. 13. 14:02

글은 글이 말한다

김종선(목향)

계곡의 물소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착각할 만큼 어쩜 그리도 음향의 고조가 똑같은지 문을 열고 내다보고야 확인할 정도였다. 한 박자도 오차 없이 같은 가락으로 흘러간다. 밤은 깊어 가는데 아무리 잠을 청해도 정신은 오롯이 말짱하다. 집을 떠나면 내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 바로 이런 시간, 그래서 당일치기가 아니면 잘 나서지 않는 편이다.

11수필의 날행사 안내문을 받았다.

한 귀퉁이에 내 이름이 보였고 수필의 환기가 절실한 데다 특히 장소가 강릉이기에 참여하기로 했다. 산수 수려한 관광도시, 철썩철썩 흰 거품을 물고 주름지어 밀려드는 파도, 경포대의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찌든 스트레스를 날리고 오죽헌을 비롯한 역사의 장도 둘러보며 문우들과 어울리고 싶기도 했다.

시간은 자꾸 흐른다. 한 방의 친구들은 이미 곯아떨어졌고 자정을 넘긴지도 오래 인듯한데 이리저리 뒤척이던 나는 답답증에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 그런데 청청한 하늘의 휘영청 달님이 교교한 빛을 발하며 나를 보고 웃는 게 아닌가. 강원도의 달이라고 특별하지 않을 진데 어찌 저토록 크게 보이는 걸까? 전 어느 날, 한밤중 미시령을 넘으면서 마주한 달님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2, 3m만 달려가면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느껴졌던 쟁반같이 둥근 달, 참으로 신선하다. 아마도 마음의 파문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나 보다.

대관령 휴양림,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참이나 달려온 깊은 산속, 쭉쭉 뻗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달고 위풍당당 버티고 서있다. 새삼 천혜의 아름다운 곳임을 상기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갖가지의 상념들이 고개를 내밀며 나를 조명한다. 그러고 보니 잠 좀 못 잔다고 투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자연과 함께하는 이 여유로운 휴식공간에서 자신의 삶과 문학을 돌아보는 일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어떤 슬로건을 내 걸고 거창한 행사를 치르는 일은 몸집을 불려 위상을 튼튼히 하고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결과의 정답은 아마도 각자의 몫으로 자리할 것이다. 겉모습이 실제의 잣대와 똑같지 않음을 우리는 생활에서 너무나 많이 느끼면서 살고 있다. 삐뚤게 보아서가 아니라 그러한 모순은 삶이란 테두리 안에서 부정할 수가 없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내 귀를 쫑긋 세운 일산림 속수필 문이었다.

 

인간은 숲속에서 등장했다. 숲은 인류의 고향이며 모태이다. 산은 자연공간이란 개념에 그치지 않고 이상향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산 정기를 타고나서 죽으면 산에 묻히는 까닭으로 산은 태생지며 죽어서 돌아가야 할 회귀처다. 산림을 잘 가꾼다는 의미는 인간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

 

새삼 마음에 새긴다. 숲의 혜택에서 인간이 멀어질 수 없고 또한 산림은 자연과의 연계를 떠날 수 없으니 수필이 인간의 본령을 찾는 일이라면 어찌 자연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인가? 언제나 그분의 (**) 글에선 참 많이도 건지게 되는데 이번 강연에서역시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어쩌면 이번 행사를 이렇게 아름다운 강릉에서 치른 일도 주제와 무관 하지 않을 듯하다.

다른 이들과 소통, 교감하는 컴퓨터 블로그 운영을 꽤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거기에 큰 주제가 자연스럽게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다.’이고 닉네임이 목향(木香)그것만 보아도 내 생활의 모토나 사유가 오래전부터 자연과 숲과 무관하지 않다는 증표일 것이다.

문학이란? 언어를 매개로 하는 예술이기에 그 어느 영역보다도 독자층에 큰 영향을 준다. 수필 또한 문학 안에 존재하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허구성을 크게 허용하지 않으니 우리의 일상과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논픽션이 픽션보다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일은 흔하게 접하는 일 아닌가. 그러기에 수필이란 장르를 경시하는 일은 큰 오산이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라는 말이 현재도 심심찮게 오르내리는데 이제 좀? 깊게 생각해 볼 문구다. 하긴 나도 꽤 오래전에

아마도 그 말은 거짓 없이 유려한 문장을 쓰라는 말이구나.’

라고 나름대로 풀이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에 그 말을 많이 퇴색되어야한다. 나의 시선이 근시적인지 모르지만, 어떻게 글을 그렇게 가볍게 쓰일 수 있는가? 약간의 반전이 생기기도 한다. 무릇 글은 예술적 향기와 철학적 교시, 진실 되고 성실한 삶, 해박한 지식, 풍부한 감성이 농축되었을 때 좋은 글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수필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수필은 곧 인품의 문학이라고 하지 않는가. 깊고 넓게 사고해야 할 문제다.

숙소가 배정된 후 작은 모임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구동성 말들이 꽤 분분했다. 물론 건설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두었지만, 와중 한 평론가의 교통정리는 검은 장막의 한 줄기 빛이었다. 늘 마음에 두었던 일인데도 새롭게 발견된 듯 참으로 가슴이 후련했다. 무릇 작가들은 자기 그룹의 세나 몸집에 있는 게 아니고 부단한 밀실의 작업에 치중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그렇다. 다른 말이 뭐 필요한가. 겉치레는 꾸미지 않음이 더 순수할지도 모른다. 글은 오직 글이 말할 뿐이다.

새벽녘 겨우 잠이 들어 한두 시간 잠을 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침 기분이 맑은 것은 지레 겁먹고 올까 말까 망설이던 이유가 싹 가신 탓이다.

한여름 우중이기에 눅눅할 것 같은 이부자리, 해충의 기습공격을 염려했는데 걱정했던 일들은 한갓 기우에 불과했다. 목조건물이 이렇게 쾌적한 공간 습도를 조절해주는 단열재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건축자재 중 살아있는 생명체인 나무만이 가지는 특성이란다. 아무튼, 청결한 숙소 제공을 위하여 애써준 분께 고마웠다.

바다에 인접한 산 좋고 물 좋은 아름다운 강원도! 이곳에 사는 이들은 한 마디로 복 받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피곤한 심신을 누이고 싶은 곳이다. 나 또한 이 공간에서 자신을 알차게 돌아본 일,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책표지)

(목차 1)

 

*당일 기념사진  (정목일 수필가님, 김우종 평론가님, 그외 문우들과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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