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지금 이 자리에

목향 2020. 7. 2. 11:23

* 낙산사 의상대

 

 낙산사 부처님을 뵙고 의상대에 앉았다. 흰 거품을 내 뿜으며 넘실대는 파도, 아스라한 먼 수평선, ‘경관이 참 좋구나.’ 거슬러 4년 전 이맘때 그날도 이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응시하는 겉모습은 누가 보아도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진데 마음은 천양지판이란 말을 써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그러고 보면 육신은 마음의 하수인인 듯, 모든 것에 머리가 우선한다.

그때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열흘쯤, 남편을 멀리 보내고 마음을 못 잡아 서성이던 참인데 설상가상 나 또한 병치레를 혹독히 치르느라 살는지 죽을는지 아득했었다. 당장 코앞에 닥친 항암치료를 받을까, 말까를 놓고 깊은 고뇌에 쌓여있었다. 실상 수술은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끝나지만, 항암 부작용의 고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에 매우 두려웠다.

 

엄마, 승용차로도 무리하지만, 동해의 바닷바람을 …….”

 

  그 애의 따뜻한 마음에 끌려 옆구리에 주먹만 한 불순물 주머니를 찬 채 따라나섰다. 그러나 코끝의 바람이 조금의 위로는 주었지만, 자리를 옮겼다고 먹구름이 가실까! 눈앞에 빤히 보이는 사찰도 들르지 못하고 겨우 주차장에서 가까운 이곳 의상대에 앉아 고단한 심신으로 시간만 축냈다. 671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할 때 좌선 지로 택한 곳이라고 했다.

  빠른 게 세월이던가, 수술 후 수년이 지난 오늘, 바로 이 자리에 다시 앉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번에 그냥 지나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시야의 모든 것들이 반갑게 손짓하는듯하고 멀리 해수 관음상이 석양에 반사되어 그 빛나는 몸짓으로 빙그레 웃으며 병마를 이겨낸 나를 대견해 하는 듯했다.

 

  낙산사를 찾은 이는 거의 의상대를 거친다. ! 하고 탄성을 자아내며 사진 두어 장 누르고 돌아서기일 쑤지만, 나이 지긋한 시니어들은 힘에 부친 듯 잠시 둘러앉는다. 이구동성 말들이 많아지고 그러다 어느 한 팀 열나게 시비가 붙었는데, 이유인즉 정자 바로 뒤에 소나무 한 그루가 참 기품있게 운치를 더하는데 바로 그 나무가 지난 2005년 화마에 반쯤 탔다. 안 탔다가 시비의 요점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다.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말, 고루한 꼰대들의 볼썽사나운 몸짓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저렇게 얼굴 붉히며 고집을 부릴까? 하지만 되돌아보니 나 역시 그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왜 양말은 여기에 벗어놓았어. 신문을 봤으면 4절로 접어놔야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정말 시답잖은 일로 남편의 심기를 그 얼마나 흐리게 했던가. 조금 참고 이해할 걸, 아픈 회한으로 남아있다. 이제 노인의 대열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나이가 더해지면 나잇값을 치러야 보통상식인데 어찌해 송곳 끝 모양 여유 없이 그냥 밀어붙이는 독불장군으로 변하게 되는지, 그 아집 참으로 야속하다.

  우리는 살면서 온갖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는다. 누구나 복된 인생을 누리고 싶지만,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인생사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인생은 참 복잡미묘하고 고해란 말을 달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처님도 사고팔고(四苦八苦)를 힘주어 설법하셨다. 하지만, 고뇌를 없애고 행복이 삶의 근원이며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셨다. 그러나 정작 성불(成佛)하는 자 그 얼마일까, 언감생심, 성불은 못 할망정 3 ()5(五戒)는 지켜 최소한 사람의 평범한 도리는 이행하며 살아야 하는데…….

  막걸리 좋아하시던 외조모님께 한 잔 더, 어머니를 대신했던 고모님께 용돈을 좀, 힘겹게 살던 친구에게 밥 한 끼라도, 그러나 그들이 저 멀리 떠난 지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이제 어쩌랴! 왜 한세월 다 보내고…….’ 하지만 이제라도 시행착오는 여기서 그만, 좀 더 곱게 늙어 가도록 스스로 주문해 본다.

  여명이 들기 시작하면 으레 창을 통해 하늘과 먼 산 능선과 마주한다. 이 시간만은 참 나를 찾는 진솔한 내면과 마주하기에 두 손을 모은다. 독실한 종교인은 아니지만, 절대자인 하나님이나 부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잊은 적이 없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암 재발을 귀띔했던 의사의 말이 아직은 빗나갔고 손자가 서울대에 합격한 일, 또한 가까운 주변 모두의 건강도 축복이기에 감사와 치유의 소중한 시간이 된다. 장엄한 태양의 눈 부심, 하얀 낮달, 변화무쌍한 구름 떼, 가끔 멀리 사라지는 비행기에서도 고마움이 가득하다. 이제 더 바랄 이상도 꿈도 희미하지만 나이 들다 보니 편안하기도 하다. 살면서 힘겨운 일이 왜 없을까만은 순리대로 받아들이자.. 그러다 언젠가 큰 고통 없이 마감된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인생은 말 그대로 마음먹기에 달렸다. 큰일도 작게 생각하면 작고 작은 일도 크게 생각하면 큰 것처럼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 이 자리 여기에서 이대로 살고 싶다.

 

 

*의상대에 앉아서

위글 내용중

병이 완쾌 되었을 당시

 

* 위 글은 <한국수필 작가회 대표작 선집>에 수록되었다

 

 * 위글 본인의 글 <지금 이자리에> 가 제1부 소제목으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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