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마음의 거울

목향 2019. 12. 3. 15:34

  

마음의 거울

김종선

  첫눈치고는 꽤 소담스럽게 내린다.

  나는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서서 베란다 창문을 통해 희뿌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 문득 , 고모님 묘지에도 눈이 내리겠구나.’

고모님의 산소가 가장 먼저 떠올려진 것은 아마도 그 며칠 전 돌아가셨기 때문인가 보다. 뒤이어 외조모님, 남편의 묘지도 환히 그려진다. 나와 필연적 고리로 연결된 인연들! 결코, 잊을 수 없는 분들이기에 순간 울컥 눈물이 어린다. 특히 나를 많이 아프고 괴롭게 하는 일은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하는 되돌릴 수 없는 회한 때문이다


  고모 님댁, 내가 결혼 하기전까지 머물 던 집. 갑자기 어머님 별세 후여서 힘든 시절이었다. 공짜로 얻어먹으면서 때론 너무 죄송해서 쥐꼬리만 한 돈일망정 낡은 고모님 조끼에 끼워 넣기라도 할라치면 기어이 되돌려 주시면서 알뜰살뜰 모아서 시집가야지 하셨다. 역시나 후일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분은 이부자리를 손수 꿰매시어 장만해 주셨다. 엄하고 완고한 고모부님 밑에서 친정 조카를 데리고 있었으니 주눅 든 눈치는 또 얼마였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만일 그분이 계시지 않았던들 지금의 내가 있을까! 그 깊은 은혜에 보답은커녕 심려만 끼쳤으니, 또 한 분, 어머님을 대신했던 외조모님, 청상에 홀로 되시어 나의 어머님을 남편으로 자식으로 의지하시다가 딸을 먼저 하늘로 보내셨으니 더구나 두고 간 피붙이 외손들을 돌보느라 그 설움과 고생이 얼마였을지 새삼 돌아보니 주변 누구에게도 하물며 자식들에게조차 썩 잘한 일은 없는듯하다.

 

  얼마 전 큰 애와 좀 먼 여행을 했다. 오랜만에 시 공간을 같이하면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 방에서 잠자리를 같이 한 일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런저런 지난날의 삶의 조각들 퍼즐 맞추기에서 작심한 듯 딸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온 이야기, 엄마, 나 지금까지도 아물지 못한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너무 힘들어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가 집에 왔을 때,

 

 엄마! 하며 품 안으로 다가가니 엄마는 한마디로 귀찮은 듯 매몰차게 확 밀쳐냈던 일이란다. 그리고 또, . 한마디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듣는 순간 얼마나 서운했으면 쉰을 바라보는 큰애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까! 순간 어렴풋이 기억이 나면서 띵하니 한 대 얻어맞은 듯했지만, 몹시 짠하고 미안했다. 최상의 안식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라는데, 그렇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단다. 한 예로 입고 먹는 일에도 너희들이 우선이었음을,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절대 갈 수 없다고 도리질을 칠 만큼 가장 힘들고 아팠던 시절이었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지금에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쏟아 놓는 들 진정 그때의 나를 온전히 이해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저울질할 때가 종종 있다. 내 직장생활이 아이들의 희생을 보상할 만큼 보람이 있었을까?

  이제 여든 고개를 바라보면서 위아래를 또한 나 자신의 지난 필름을 돌려본다. 왜 이리도 허전한 걸까,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하고 이제야 흘러간 물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우둔함이여! 사람은 행복하기 위하여 산다는데 그런 순간들이 얼마였을까?


  그러나 이제 어쩌랴! 아직은 살아있는데 지난 일로 더는 기운을 소진하지 말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반성과 성찰로 지금의 소중함을 알고 빛바랜 기운이라도 끌어모아야 하지 않겠나.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영화 델미와 루이스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 몸은 사라지지만, 혼은 그대로야. 그러니 영원히 친구로 남자.”


  정말 듣고 싶고 믿고 싶은 말이다. 어떤 종교적 증거에 기인하기보다는 먼저 간 그리운 이들을 만나 실 같은 보은의 기회라도 얻고 싶은 소박한 인간적 바램 때문이다. 끝이다. 마지막이다. 정말 그렇다면 생각할수록 이 허무를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보통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 시행착오(試行錯誤)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평범한 나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이 말에 위안을 받는다. 아무튼, 세월은 나이와 비례로 바삐 가고 있다. 이왕 가는 거 그냥 가지 말고 비우고 채우며 감사로 살다 너무 아프지 말고 편안히 눈감기를 기대해 본다.

  인간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니 새로운 다짐으로 마음의 거울에 수시로 비춰 볼 일이다. 이 고단했던 삶! 이제 좀 편히 살자. 지난 일에 개의 말고 짧으나마 남은 생을 잘살아 볼 일이다. 나쁜 기억일랑 잊으면서 좋은 일만 생각하기로 하자· 따지고 보면 크게 굴곡진 삶은 아니지 않은가. 완전한 인간이 어디 있으며, 좋은 일만 있다면 그게 어디 인생이랴. 앞으론 더 많이 감사하며 살자.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 중에 자명등(自明燈 )을 말씀하셨다. 자신을 등불로 삼아 내가 내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뜻이다. 나를 바로 아는 알이다. 이 말의 깊이를 새겨 나를 등불로 삼자.

 

뜨는 해도 아름답지만 지는 해가 더 장엄하다고 하지 않던가!


*지난 가을 마곡사 뜰 벤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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