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눈 오던 날

목향 2018. 2. 28. 16:59



눈 오던 날




사진 :북해도 눈 축제장에서

김종선

  우수, 경칩이 지났건만 며칠째 계속되는 영하의 기온에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더니 오늘은  오후가 되면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고 날씨도 많이 누그러졌다. 겨우내 소담스런 눈송이 한번 구경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지각생으로나마 이렇게 와주어서 반갑다.

나는 창문을 통해 그냥 멍하니 바라본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눈발은 흰 꽃송이로 변해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다. 10평 남짓한 이 작은 산촌 분교장, 낡은 라디오에선 ‘나나무스꾸리의’ 감미로운 노래 가 흐르고 시커먼 연탄난로의 열기건만 방안은 기분 좋게 온화하다. 마음 또한 아늑하고 따뜻하다.

휴일 당직근무중이다. 출근길 가져온 대추 몇 알과 며칠 전 이곳에서 언 땅을 파고 캐낸 칡뿌리 몇 조각을 누런 알루미늄 주전자에 넣는다. 이 작은 미니 학교의 휴일을 나는 참 즐긴다. 한겨울 오늘 같은 분위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 여름 그 뜨거운 열기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침잠에 든 이 적막감에 끝없는 사색과 관조의 시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교에서 일직 근무 할 때는, 부르지 않아도 학교 근처에 사는 직원 중 누군가 꼭 들려 유독 할 일도 없으면서 서성대기 때문에 꽤 신경이 쓰이곤 했는데 여기엔 하루 종일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너무 한가하고 무엇이든 내마음대로다. 어김없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들으면서 한동안 벼르기만 하던 아이들 털옷 짜기도 하고 그 애들의 앞날도 그려보며 그 언젠가 얼굴 한번 스쳤던 인연까지 떠올려지기도 한다. 살면서 엮어가는 인연 속에 미처 꺼지지 못하던 한 가닥의 작은 불씨마저 완전 사그라지니 화해되고 용서되는 넉넉함을 맛보기도 한다.

나는 사무실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온다. 눈은 자꾸 내리고 어느새 그사이 내린 눈으로 인해 보이는 것들이 새하얗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꽃이 내려앉아 눈부시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모든 산야는 제 몸을 아낌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습관대로 돌 층층대를 조심스럽게 내려와 시냇가 바위 옆에 섰다. 그 가뭄에도 용케 살아남아 돌돌 내려오는 물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의교훈도 생각한다. 이 산골의 물은 저 드넓은 바다까지 얼마나 긴 여행을 할까, 고개를 들어 사방을 휘둘러본다. 산은 너울너울 춤을 추며 사뿐히 내려않는 눈꽃 모자를 쓰고 유유자적 침묵 속에 누워있는데 딱 버티고 서있는 저 소나무에 오늘 따라 눈길이 더 머문다. 건강하고 수려하며 품위와 인내도 가르쳐준다. 한참이나 서있다 발길을 천천히 운동장 울타리 주변으로 옮긴다. 겨울나무들이 추워 으스스 떨고 있을 것 같지만 오늘따라 따습고 정다운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하다.

머지않아 마지 할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한 밀어들,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다가서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만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빛깔로 변하는 복잡 미묘한  내적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면 때론 빨강이 파랑으로 또는 파랑이 빨강으로 보인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눈은 속일 수 있어도 마음은 속일 수 없는 것은 만고의 불변이다.

마음의 빛깔은 더도 덜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 진실로 받아드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내재된 힘은 위대한 인물도 만들고 불세출의 예술품도 낳는 것이 아닐까! 예술은 자연을 닮는다.

꼭하고 싶은 이야기는 꾹 참지 못하고 세상사 쉽게 타협 못하는 옹졸함이며 저울의 기울임이 내 쪽이어야 한다는 편견도 다 자연의 순리를 배우지 못하는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래. 이제 부터라도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자. 다시 사택 쪽으로 향한다. 대추나무, 이 나무가 여기에 있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든가, 나무에 대한 식견이 별로인 내가 이 나무를 알아본 것은 지난 초가을 그 올망졸망한 앳된 얼굴에 엷은 홍조를 띠고 있을 때였다.

 

‘어마! 대추나무 아니야!

 

반색을 하며 다가서든 생각이 새롭다. 갖은 풀꽃, 밤나무, 고욤나무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이 대추나무에서 고향과 어머님을 동시에 떠올렸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머님의 모습에선 풀 먹인 빳빳한 세모시를 떠올린다. 한여름 나들이엔 모시옷을 즐겨 입으셨던 그 단아한 모습, 흰 고무신, 하얀 앞치마 결벽성에 가까울 만큼 정갈 하셨기에 항상 어머님의 모습에선 순백색을 연상한다. 깊은 밤 잠 에서 깨어나면 등잔불 가까이에 손끝을 모으시고 바늘귀 꿰던 모습, 항상 책을 가까이에 두셨고 글 읽던 모습도 보인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너무도 억울하게 의사의 실수로 갑자기 가셨기에 이 애잔한 마음은 가실 줄을 모른다. 그렇게 일찍 가시지 않았던들 모르긴 해도 지금 보다는 한 차원 높은 자리에 서있지 않을까. 내가 이나마 글을 쓰는 일도 아마 어머니의 성향을 이어받은 덕분일 것이다.

하늘을 본다. 어린 날처럼 입을 벌려 눈을 받는다.

마음의 굴곡이 심할 때 하늘을 보는 일은 이미 내게 밴 습관이다.

오늘 따라 새삼 뒤를 돌아보니 젊음은 나에게 아예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도 또래 보다 많이 이탈해서 살고 있는 듯하다. 내 나이 보통 사람들, 어디 관광이라도 떠나는 날엔 화투도 잘치고 술도 마시고 춤도 잘 춘다. 나는 그런 통속적이고 유흥적인 삶은 잊고 산다.물론 그런 것에 취미도 없지만, 내 둘레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린나이에 선생이란 직장인이 되었고 바로 이어진 어머니의 별세와 함께 여러 가지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했으니 어디 다른 곳으론 고개를 돌릴 여력이 있었을까, 결혼을 했다고 해도 더한 피곤함은 가중되었고 여전히 직장은 다녀야 했다.

가정과 직장을 오가면서 다람쥐 체 바퀴 도는 듯 한 그런 판에 박은 생활 속에서 아마도 원초적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느 사이로 연기처럼 빠져나가 이렇게 교과서 적인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상처는 망처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 꼭 맞는 말이었다. 토지개혁과 6.25 사변이란 엄청난 회오리에 거의 재산은 날아갔지만, 어머니의 별세를 기점으로 나머지 재산도 야금야금 남의 손으로 넘어가니 우리 집은 결국 고향을 등지게 되었다.

참 생각도 많아진다. 한참을 서성이니 옷도 마음도 축축하다. 사무실로 발길을 옮긴다. 내 집 안방보다 더 따뜻한 방 젖은 추리닝을 벗고 평상 옷으로 갈아입는다. 차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차는 셋이 마시면 유쾌하고 둘이 마시면 좋고 혼자 마시면 신묘하다고 했든가. 씁쓰레 하면서도 달 큰 한 향취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신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이적막한 산촌 작은 분교장, 아무도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꼭 누가 찾아올 것 만 같은 그리움에 젖기도 하고 이것저것 많은 생각들로 하루가 저문다. 아무튼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다. 그래 이젠 좀 밝게 살자.

언젠가부터 실행하려고 했던 운전도 배우고 기타도 배워서

여행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살자.

내 인생 내가 살지 누가대신 살아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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