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충주호
생의 긴 터널을 지나며
청주: 김종선(목향)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
서울 은평구 근교의 작은 암자,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부슬 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새 장대비로 시원스러우면서도 요란하다. 막 염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서는 스님 왈 ,
“어디서 온 보살인데 이렇게.......? ”
아마도 그의 눈에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멀거니 응시하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내일 모레면 수술대에 누워야 하니 아마도 어두운 속마음이 고스란히 그렇게 비춰졌을 것이다. 새벽 산책길에 간간히 들려오던 염불소리에 이끌리어 예까지 오게 되었다. 거슬러 약 8개월 전쯤,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았었다. 대충 훑어보니 모든 결과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기에 안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심쩍은 생각이 일어 밀어 넣었던 결과표를 다시 꺼내게 되었고 어머, 그제야 비로소 깨알 같은 작은 글씨의 문구에 눈길이 머졌다.
“우측 유방 상부에 음영이 비치니 전문의를 찾아 초음파를......”
유방암 판정 란의 확실한 ‘비대칭’이란 낱말을 또렷이 기억하는데 이게 웬일, 하면서도 유선종 정도로 생각했고 그냥 의사들의 통상적 주문으로만 여겼지 암이란 생각은 미쳐하지 못했다. 이래저래 결국 확실한 진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수개월이 더 흐른 뒤였으니 아뿔싸! 그땐 이미 병증은 중기를 넘어서고, 나도 할 말은 있다. 왜 그 의견을 판정 란에 기재하지 않고 별도 칸에 적어 놓았느냐는 항변이다. 의사가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암이 의심되니 재검 받으란 문구를 판정 란에 첨부했다면 ? 이렇듯 중대한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의 후회도 컸지만 의사를 더 많이 원망했었다. 어찌해야 좋을 까? 아빠를 통해 양방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이미 알고 있는 터인데 받을까 말까를 놓고 혹독한 고뇌를 치르던 차에 멀리 간 남편의 간곡한 당부의 목소리가 꿈길에서 들려왔다. ‘당신이라도 더 살아서 애들의 힘이 되라고......’ 이 일은 예삿일이 아닌 어떤 암시를 예견 한 듯 했고 ‘엄마, 꼭 받아야 되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던 딸애의 표정은 애잔한 슬픔으로 가슴을 울렸기에 힘과 용기를 냈다. 요즘 100세 시대라는데 인명은 재천(在天) 이란 말을 뇌이면서, 서울 강남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휴~ 유방은 절제되지 않았기에 참으로 다행이었지만, 수술 부위가 겨드랑이 인파선 쪽이라 꽤나 신경이 쓰이는 케이스란다. 두려웠던 만큼 수술의 통증은 크게 없었지만 이미 생각만으로도 지치게 했던 항암치료, 괴롭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이어졌다. ‘그래. 주치의가 명의라니 믿어보자.’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빛나가지 않아 처음 항암주사 며칠 만에 의식을 잃는 소동이 벌어졌다. 혈압은 잡히지 않았고 백혈구가 반 토막이라 했다. 그래도 살 사람은 사는 모양인지 천만 다행스럽게도 마침 문병 온 조카가 발견하고 구급차를 부르고 야단법석을 치른 후 깨어났다.
이후 치료과정에서 처음처럼 의식을 잃는 일은 없었지만, 가발을 썼고 모자를 사고 국물 한 모금도 쉽게 넘기지 못하는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예정된 치료를 무사히 마쳤다. 수술 후 이제 2년, 지금도 암, 소리만 들어도 뜨끔 할 정도로 예민하지만 소진되고 피폐 했던 심신이 많이 회복되어 다행이다. 그렇게 끔찍하게 여겼던 병원행도 나를 살려준 곳이라 생각하니 달리 보였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 하지 않는가.
이렇게 한바탕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삶의 시각도 방향도 꽤 바꾸어 놓은 상태다. 남은 인생 좀 더 주변을 살피고 관용과 이해, 느긋함으로 살라는 방편으로 호된 시련을 부여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 한 고비의 인생경험을 혹독히 치루 어 낸 샘이다. 순간, 순간 모두에게 감사의 기도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절로 흘러나올 때는 행복한 순간이기도하다.
나는 가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스티브잡스의 마지막 말을 상기한다.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 없어져 간다는 것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본다.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절실한 마음으로 두 손이 모아진다. 죽음! 그래. 죽음은 끝이다. 이 평범한 문구의 무게를 잊고 살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말의 깊은 뜻은 바로 오늘을 잘 살아내는 지표가 됨도 알아야 한다. 좋아했던 친구도, 보고 싶은 애들 아빠도 이 죽음이 가로막았다. 며칠 전 막내의 전화,
“ 엄마, 나 여기 추석차례지내고 바로 청주 집에 가.”
집! 바로 내가 집이구나. 가장 편한 집. 앞으론 이 집을 좀 더 알뜰히 정성으로 가꿔 나가야한다. 내가 탄 인생기차는 지금 어느 정거장에 서있나? 그 종착역에 닿기 전에 내릴 채비를 단단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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