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지울 수 없는 얼굴

목향 2018. 6. 16. 17:45


지울 수 없는 얼굴




* 생전의 모습

신촌 세브란스병원21층 병실,


연세대 음악당 주변으로 피어난 화사한 봄꽃들을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마음이 안 가면 들어오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가슴 가득 먹구름뿐이다. 이날 아침 회진차 들어온  의사,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뒤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며 휑하니 나가 버린다. 조금 불쾌한 모습으로 아마도 당신의 처방대로 일점 착오 없이 실행한 결과가 좋지 않으니 스스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가 싶었다.


“ 저, 올해를 못 넘기겠어요.”


청천벽력이었다. 몸을 추슬러 항암치료만하면 곧 퇴원할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 인가! 갑자기 다리의 힘이 빠지며 비틀거렸다. 어떻게 복도 끝 벤치까지 걸어 왔는지 아득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가까스로 마음을 잡고 병실로 들어서며 희망과 용기를 주려 나름 애 썼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이 무거운 분위기, 덜컥 겁이 났다. 겉으론 태연한척 포장했지만 이미 평정심을 잃은 내 어설픈 행동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의사는 말한다. 이 시점에서 항암치료를 받느냐? 마느냐? 그 선택의 공은 순전히 보호자의 몫이라고, 가부간 이 수평 한 잣대를 한 쪽으로 기울려야하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어차피 갈 사람이라면 항암부작용의 고통을 안겨서도 안 되지만 이대로 치료를 중단 할 수도 없는 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면서 고심한 끝에 결국 받아보기로 했다.

 

남편은 위암이 재발되어 입원중이지만 열흘 전 올 때만 해도 당당히 걸어들어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구급차에 의존해 퇴원하게 되었다.

내 집 같이 편안한 곳이 있을까, 오자마자 나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으려하자 갑자기 그가 울컥, 눈물을 보인다. 살면서 처음 본 그의 눈물, 비통에 젖은 그날의 그 얼굴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

퇴원하면서 다음 치료 일정을 예약 했지만 다시 입원하지 못했고 약 2개월 후 먼 길로 떠나버렸다. 이후 살면서 느낀다. ‘살아있을 때 잘해.’ 이 평범한 말이 곧 명언처럼 생각됨을, 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자주 할 수 있었던 일도 그가 튼튼히 지켜 준 때문임도 알게 되었다.

나는 요즘 그냥 살아 있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외동 손자가 서울대학 경영학과에 합격 했을 때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그가 살아있었다면 …….

이 회한의 길목에서 허허로운 가슴으로 얼마를 살아내야 하는 가. 이 일이 나의 숙명이라면 어쩌면 인생 모두의 숙명 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디로 가는가!

부처님도 말씀하셨다. 인생 팔고(八苦)에 애별리고 (愛別離苦)가 들어있다고 사별의 괴로움과 아픔을 이야기 한 것이다.

다음은 그가 떠나고 얼마 안 되어 쓴 글로 당시 내 블로그에 올렸던 것인데 여기에 옮기면서 글을 마치려한다.

 

애들 아빠, 나의 남편은 멀리 떠났다.

그러나 나는 실감이 안 나고 아직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요즘도 오후 4,5시만 되면 현관문 열리는 버튼 신호음이 똑, 똑, 똑 …….내 삶에서 죽음이 이렇게 갑자기 일어 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슬프고 안타깝다.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할 걸 회한의 아픔이 가슴을 때린다.


'정말 없는 거야. 정말 안 오는 거야.' 휑한 거실에서 멍하니 서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의 발병이나 치료과정에서 성의를 다 하지 못한 나의 잘못도 분명 있을 것이란 후회가 죄의식으로 다가 올 때면 너무나 괴롭고,


"그래 .인간은 누구나 아니, 생물은 모두가 가는 거지 ."


이렇게 어설픈 말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누구보다 당신은 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자식으로 아빠로 남편으로 직장인으로 훌륭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가없는 애정을 쏟았으며 인내와 관용으로 나를 포용하고 이끌었기에 그 어떤 말로 지금의 심정을 표현 할 수 있을까 !

그의 지난날들을 헤아려 보면 틀림없이 그는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다. 운명 할 때의 그 편안한 얼굴, 정말 반듯하게 잘 생긴, 그 기막힌 상황에서도 그를 지켜보면서 그 모습을 가슴에 새겼다. 영원히 잊혀 질 수 없는 그 얼굴을, 부디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선 영원히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를 …….


' 그간 많이 고마웠습니다. 당신의 소중함을 멀리 간 뒤에야 더욱 깨닫습니다. 나도 언제일지 모르지만 당신 곁으로 갑니다. 평소에 늘 상 당신은 매장을 선호했고 나는 화장을 원했지만, 당신이 먼저 간 지금 나도 본연의 고향 흙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굳혔습니다.'

이 일이 내가 마지막 할 수 있는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인생이 뭔가! '허무함' 이란 말의 뜻을 이제야 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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