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인생 통지표

목향 2020. 3. 15. 13:48

 

 

 

 

왜목리 바닷가[2009.10.17]

 

     인생 통지표         

         김종선(목향)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인근 공원으로 나갔다. 그때 마침 해님이 서산으로 기우는 일몰 때, 이날 따라 유독 빨간 진홍빛을 발산하며 그 황홀한 자태를 뽐낸다. ‘! 정말…….’ 읋조리는데 불현듯 어느 날의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남편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다가앉는다.

 

남편과 나의 마지막 여행지 왜목리, 알다시피 왜목리는 일출, 몰을 모두 감상 할 수 있는 명소이다. 일출은 묵었던 호텔 앞 야트막한 석문산에서 맞았고 일몰은 바닷가 둔치에서 만끽했다. 해님 주위로 어우러진 자연의 색채, 바닷물에 반사된 불기둥이 물결 따라 일렁이든 그 찬란한 모습들이 너무나 고혹적이어서 여기 오기를 참 잘했네.’ 침묵을 깬 남편의 탄성이었다. 당시도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힘겹게 운전을 한 탓에 도착하자마자 꿈속을 헤매다 정말 간신히 나온 터여서 나름 은근히 신경 쓰였는데 그의 일성은 잠시나마 내 마음을 평온하게 했었다.

 

나는 참 하늘 보기를 좋아한다. 좋아함을 넘어 영혼을 싣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하얀 낮달, 고고한 보름달, 보석처럼 빛나는 별들! 우유를 흘러내리듯 유유한 은하수에도 마음을 뺏긴다. 또한, 몹시 우울하거나 먼저 간 이들이 보고파질 때도 저 광대무변의 광활한 공간에 소리 없는 울분을 토하며 깊게 심호흡을 하노라면 얼마쯤은 얼었던 가슴이 녹녹해진다. 그뿐이랴, 변화무쌍한 구름 떼, 금방 용트림이었다 토끼로 이어지는 모습에서 인생을 한 조각 구름에 비유한 서산대사의 게송시, 한 구절을 음미하기도,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스러짐이라 이 말은 바로 지지고 볶으며 100년을 산다 한들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

한참을 빛의 향연으로 시선을 모으던 해님도 어느덧 저 너머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지구별의 공, 자전, , 월식의 이치를 어설프나마 알고 있는데도 때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동경의 꿈을 키우던 지난날의 소녀적 감상에 젖기도 한다. 나이테는 늘어나도 마음은 젊다는 평범한 말들을 상기하기도 하고, 자꾸자꾸 바다로 나간다면 어디에 닿을까? 이 산.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얼마 전 포르투갈 까보 다로 까에서도 그랬다. 아마도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감성에 세계의 땅끝 이란 뉘앙스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쏟아지던 젊은 날의 수면이 이젠 거꾸로 쉽게 잠들지 못해 야속할 때가 있다. 바라지 않는데도 새벽 세, 네 시면 그냥 눈이 떠진다. 그럴 때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조차 창끝처럼 예민해지니 그 시간을 보람있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언젠가부터 유튜브 동영상으로 고승들 법문에 귀를 세운다. 부처님 말씀으로 삶의 근본 이치를 깨달아 조금이라도 평온한 마음을 갖기 위한 마음공부인 셈이다. 아마도 평소의 불교적 성향이 자연스레 이끌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생사를 건 수행의 결과라 해도 주장하는 관점이나 본령은 스님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죽음 뒤를 어떻게 아느냐는 현실적 주장을 펼치는 이론도 있지만, 비교적 짧게 한마디로 말하면 업설(業設)에 중점을 두고 있는듯하다. 잘은 모르지만, 사성제와 팔정도, 중도사상(中道思想), 제행무상(諸行無常), 인연과보(因緣果報)등등의 언어표현으로 함축되는 것 같기는 한데, 사실 위 낱말의 뜻은 엄연히 다르게 풀이되겠지만 결국 부처님 말씀 깨달아 번뇌를 없애고 복을 지으면 복을 받게 된다는 공통분모로 일맥 상통된다고 볼 수 있겠다.

 

나이 탓일까? 근년에 이르러 죽음이란 걸 많이 생각하게 된다. 가까운 친지가 속절없이 떠날 때, 특히 암 발병 후 더 그렇다. 어차피 가야 하는 길, 이쯤 살았는데 무슨 미련이 그리 있느냐? 지금가도 축복이지. 이렇게 자문자답하다가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 앞에 앉으면 많이 긴장됨은 솔직히 숨기지 못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니 아직은 가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버티고 미룬다고 될 일인가! 언젠가는 꼭 가야 할 길 ! 가고싶지않아도 가야할 길 ! 그렇다해도  죽음이 끝이라는 걸 억지로라도 믿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인간의 속성인지는 모르지만…….

 

그러기에 어느 날 죽음에서 나는 어떤 인생 통지표를 받아 육도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어느 칸에 오르게 될까? 찢어지지도 않고 고쳐지지도 않으며 재발급도 안 되는 불변의 열차표, 이렇게 자신에게 숙연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뭘 그리 잘 못 했는지 더러는 등골이 오싹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3(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피하려고 애썼고 5(불살생계(不殺生戒), 불망어계(不妄語戒), 불투도계(不偸盜戒), 불사음계(不邪淫戒), 불음주계(不飮酒戒)는 지키며 살려고 노력했으니 설마 하면서 작으나마 안위를 얻기도 하지만 뒤돌아보면 고의든 아니든 후회되는 일이 어디 한 둘이랴! 그런들 이제 어쩌랴! 지난 일은 잊고 소중한 현재를 잘살아 볼 수밖에…….

 

그래, 그러자. 남은 생이라도  ‘내가 나를 잘 알아서 좀더 부처님 말씀에 귀 기울이다. 좋은 인생 통지표를 받아들고 감사한 마음으로 열차에 오른다면 그 길이 바로 생사초월(生死超越), 해탈, 열반의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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