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한국수필 / 세월이 강물되어 (2023년9월호)

목향 2023. 9. 16. 15:43

*책 표지  

* 목차 : p 223 쪽에 실렸다 (세월이 강물되어)

세월이 강물되어         

김종선

형님, 앞 주차장으로 나와요. 점심 같이해요.”

아이고! 나 갑자기 허리 아파, 꼼짝도 못 해.”

위 형님이라 지칭한 분은 이웃 지인으로 나보다 두어 살 위라 보기 좋고 듣기 좋아 그냥 그렇게 부르고 가끔 식사를 나누는 사이다.

지난달까지도 꼿꼿한 허리로 잘도 걷던 이웃 노인이 지팡이를 짚는가 했더니 어느 날부터 실버카를 앞세우고, 그러다 며칠 안 보이면 저세상으로 갔다는 어이없는 소식이다.

왜 모를까? 인생사 생로병사((生老病死)). 이렇듯 자연히 변하고 흘러감을, 그러나 아직은 조금의 여유로 설마 하면서 안위를 얻다가도 더러는 두렵고 불안함에 자못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심각해지기도 하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들이 너무도 짧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공간을 무슨 일과 생각들로 채워야 하는지? 골똘히 생각할 때도 꽤 있다.

그래. 살아온 방식대로 사는 날까지 누구의 짐이 되지 말며 너무 아프지도 말고 그러다 저세상 가게 되면 그게 복이지.’

그냥 이렇게 나름대로 안이한 답변으로 무마해 버리기 일쑤다.

지난 어버이날 축하 만찬 자리를 열었던 이웃 지인이 다음날 새벽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 주인공과 나는 바로 전날 동네 벤치에서 약 한 시간쯤 아무런 구애 없이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눈 사이다. 처음 그의 사망 소식은 너무 어이없어 당황했지만, 한편으론 병석에 오래 눕지 않고 평균수명은 누렸으니 복 받은 인생이란 생각이 더 컸다. 은근히 나도 그렇게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기에…….

얼마 전 큰애와 상의 끝에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제출하고 나서는데 뭔가 한 짐을 덜었다는 홀가분함에 발걸음도 가벼웠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는 일,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허용했으면 한다. 마지막 가는 길 익숙한 환경에서 가까운 이들에 둘러싸여 의사의 도움으로 편히 갈 수 있으면 그게 품위 있는 존엄사가 아닐까. 물론 오, 남용의 폐단으로 역기능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철저한 사전 계획에 따라 시행된다면 참으로 의미 있는 일로 환영받을 것이다.

스위스를 비롯해 안락사 허용국가가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그 미남 배우 알랭 들롱도 안락사를 결정하고 현재 스위스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다. 며칠 전 다큐멘터리로 50대의 일본인이 스위스에서 안락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조금은 찡한 가슴을 안고 지켜보았었다. 마지막 행위는 본인이 직접 약물을 주입, 바로 편안히 눈을 감는다. 우리나라 사람도 신청한 이가 있는 거로 아는데 죽기 위해 먼 길을 가야 하니 물 심 큰 손실이다.

동생이 말한다.

언니, 내가 화장실에서 심하게 척추 다쳤을 때 사약이 준비되었다면 아마도 먹었을 거야.’

그 통증이 얼마일지 가늠되는 이야기다.

나의 친정 아버님과 남편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을 지켜본 나, 생각만 해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지만 만일 우리나라도 안락사가 허용되었다면 분명 망설임 없이 서명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은 죽음이 구원이라 했던가! 어떠한 의료행위도 전혀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편안히 보내는 것이 진정 효도가 아니겠는가.

팔팔하던 시절 그리도 느리던 인생 열차는 반환점을 돌아드니 급행열차가 되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하더라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마지막을 아름답게 정리해야 한다. 지금껏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내 묘소에 묘비명을 쓴다면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그러노라면 뚜렷한 발자국 없이 이 평범한 생애로 끝나기에 허무감이 엄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흐릿하나마 떠오르는 상이 있기에 어설픈 미소를 짓기도 한다. 평생 정직을 신조로 삼았으며 적어도 부처님의 말씀 중 5계는 지켜 인간다움은 잃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유명인의 묘비명 중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 드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란 구절을 많이들 기억할 진데 다소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었지만, 시간의 귀중함을 일깨운 것이 아닐까 한다. 많은 이들이 죽음 전 후회하는 것 중 베풀 것, 하고 싶은 것 할걸, 모험과 도전정신, 인내, 풀기 등을 말한다. 나 역시 그 범주에 속하지만, 좋은 인간관계, 여행을 추가하고 싶다.

생년불만백 (生年不滿百)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라 백 년도 못사는 주제에 왜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사는가?

그래, 짧지만 세월의 강물이 새로운 물꼬를 틀기 전 위 묘비명을 거울삼고 덜 후회스럽게 잘 마무리하기로 하자. 가는 사람은 잘 간다남은 이는 잘 가세요.’ 이렇게 인사하며 지저분한 삶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간다면 그게 정말 아름다운 삶이고 마무리가 아닐까!

남아있는 날 중 오늘이 가장 젊고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죽음이 없다면 생의 소중함도 없을 것이기에 남은 날들은 피 할 수없는 죽음, 오늘을 기억하라는 모멘토모리를 늘 상기하며 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