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수필 2024년 4월호에 새 글이 실렸다.
시어머님의 요양병원 입소날과 남편의 임종시 단상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마음이 무겁고 슬프다 .
시어머님은 당시 97세 였지만 ,남편은 요즘 나이론 너무도 빨리떠나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없다.
* 책 표지
* 목차 / 214쪽에 실려있다.
잊히지 않는 두 얼굴
김종선
나이 탓일까, 근년 들어 모임이나 친구를 만나면 화제는 노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누구 하나 안 아픈 이 없고 안 아픈 데도 없단다. 좋다는 약들도 부지기수지만 세월이 병의 원인이니 치유가 그리 쉽지 않다. 나도 이 주류의 한 사람으로 이제 남은 생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문득문득 스치기 일쑤다.
아이들은 왜 닥치지도 않는 일들을 미리 사서 걱정이냐고 하지만 그 길이 크게 멀지 않았고 생자필멸(生者必滅), 그 누구든 막을 수가 있는가. 지금은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의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지만, 문밖출입도 어려워지면 요즘 어느 자식이 환영할 것인가! 그렇다면 요양병원, 여기에 이르면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왜냐면 어머님의 요양병원 생활을 통해 편견일지는 모르지만, 거부감이 큰데 어느 날 지인의 한마디,
“동생, 내가 그 좋다는 서울의 요양병원에 한 달 치 비용을 미리 내고 들어갔지만, 일주일을 못 버티고 나와야 했어.”
일부러 할 말이 있다고 불러내더니 요지는 왜 그래야 했는지 그 이유가 너무도 장황했다. 가뜩이나 부정 쪽인데 선배의 말은 저울의 무게를 더 기울게 했다. 요양병원! 하면 떠올려지는 얼굴! 시간을 거꾸로 어머님의 요양병원 입소 날의 감회다. 승용차 뒷좌석 비스듬히 몸을 기댄 체 눈을 감고 돌덩이처럼 굳은 표정 천근만근의 그 어둡고 무거웠던 어머님의 얼굴, 단 한 달이라도 집에서 모시자는 당신의 의중을 표현 못 했던 남편도 전후 사정을 너무나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받아드릴 수 없었던 나 역시 사실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차가 목적지에 닿는 그 몇십 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불효를 넘어 죄인이 된 셈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장면 팔려가던 소가 새 주인을 따라 저만치 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돌아서 전주인을 향해 다가서며 바라보던 그 애처로운 눈빛, 결국 다시 원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짐승도 그럴진대 사람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흔히 하는 말, 요양병원은 죽으러 가는 곳, 현대판고려장이라고 말들을 한다.
이후 요양병원에 자주 드나들면서 나는 늘 병원 현관문을 나서며 하늘을 응시 심 호흡해야 했다.
“ 어머님, 이 불효를 용서하세요.”
당시는 명절을 기해 단 며칠이라도 집으로 모시고자 다짐도 했지만, 실현을 못 한 채 결국 누구의 손길도 없이 한밤중 홀로 먼 길을 떠나셨다. 이후 세월은 흘러 나 역시 머지않아 그때의 어머님 상황으로 맞닥뜨리게 될 것이 분명한데 아이들 앞에서 나는 그곳에 가기 싫다고 완강히 거부할 자격이 내게 있는가? 묻곤 한다. 또 한 이어진 한 사람 위암 말기 남편, 살고 싶었고 살리고 싶었지만, 어머님을 따라 먼 길을 떠나려 걸음을 옮기고 있을 즈음,
“ 아무래도 오늘은 가실 것 같으니 주위 알릴만한 분께 연락하세요.”
회진하던 의사의 한 마디,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접하게 되니 정신이 아찔하고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어쩌랴 뒷수습은 해야 했다. 급 한데로 본 병원 수간호사인 조카의 도움으로 우선 아이들과 형제자매들, 가까운 지인에 연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올 만한 사람은 거의 당도했지만, 큰애와 외동 손자가 당시 북경에 체류 중이었기에 ‘하느님, 제발!’ 손을 모았는데 뜻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가까스로 그 애들도 함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었다. 임종하는 자식이 따로 있다고 했든가.
정말 아이러니하게 그 기막힌 상황에서도 그는 온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꾹 다문 입술, 오뚝한 콧날 유백색의 빛깔, 참 반듯하게 잘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동생이 한 마디, 아! 어쩜 저리도……. 나는 가볍게 이마에 마지막 입맞춤을 했다. 눈물을 삼키며 ... 그리고 가만히 속삭였다. 부디 좋은 곳으로 잘 가라고. 위 두 분은 이렇게 3개월 차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바로 이 일이 생로병사(生老病死)요. 인생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정말 남편이 어머님을 먼저 배웅한 일은 불행 중 천만다행으로 집안을 살리는 일이었다. 바라건대, 천상에서도 돈독했던 이승의 사랑처럼 외롭지 않게 두 손 꼭 잡고 행복을 누리실 거라 믿고 싶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흘러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이 두 분의 얼굴! 바로 요양병원 입소 날의 어머님과 남편의 임종 전 모습이다. 어둡고 외롭게 홀로 가신 어머님의 얼굴에선 비애를,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온화한 모습으로 떠나간 남편의 얼굴에선 안위를 얻는다. 비명횡사도 스스로 택한 죽음도 아니기에 감히 축복이라 말하고 싶다.
얼굴이란 말에서 얼이란 영혼을 뜻하고 굴은 통로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 마치 영혼이 드나드는 것처럼 상태에 따라 바뀌고 생각, 감정, 건강 등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기에 가장 정직한 표현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좋다고 한다. 실제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은 이 세상 사람인 내가 어찌 알까? 하지만 완전소멸이라면 정말 이 허무감을……. 죽어 그리운 이들은 만날 수 있다는 실 날 같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기에 죽음은 소멸이 아니고 옮겨감이고 벽이 아니고 새로운 문이라고 역설하는 서울대 정현채 명예교수의 확신에 찬 말은 믿고 싶은 거다.
내가 죽어 위 분들을 만나게 된다면 ‘죄송했습니다.’란 말로 첫인사를 드릴 것 같다. 신외무물(身外無物)이란 말이 있다. 젊어서는 꿈도 욕구도 부를 누리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지만, 늙어서 가장 원하는 것은 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바라건대, 내일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 버리고 비우고 간결하게 마무리로 살다 내 집에서 너무 아프지 말고 너무 외롭지 않게 떠나게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내가 이승을 하직 후 나를 아는 지인
‘그래도 그 친구 괜찮았지.’란 말을 듣고 싶다. 그러노라면 오늘을 잘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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