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여인
<월악산 국립공원 억수계곡>
김종선(목향)
“왜 그렇게 서둘러갔어요?”
탱자나무 울타리 밖에서 서서 폐가로 변해가는 주인 없는 집을 우두커니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음 한 자락 설움이 밀려온다. 풋향기 머금은 봄꽃들이 재잘거리며 꽃 잔치를 열 준비로 정성어린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건만 메마른 잡초에 뒤얽힌 꽃밭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방문 앞 댓돌로 눈이 간다. 늘 그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빨간색의 그 산뜻한 샌들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주인이 없는데 그 신발이 있겠나.’ 정말 멀리 갔구나.
삶과 죽음,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존재한다지만 참 허무 하구나 .그저 마음 한 자락 내려앉는다.
이곳은 충북의 월악산 , 국립공원내이지만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옴팍한 동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웬만한 산골길도 요즘은 거의 다 포장되어 미끄러지듯 승용차가 달리지만 이곳은 아직도 울퉁불퉁 돌들이 마구 솟구친 흙길을 4km이상 달려야 한다.
대낮에도 집 앞 고추밭에 노루가 나타나고 큰 짐승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곳이다.
그러기에 ‘산 좋고 물 맑은 곳’ 이란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곳, 나는 이곳을 참 좋아한다.
바로 여기에 딱 집이 네 채가 있는데 그중 한 채가 동생네 소유로 되어있어 1년에 네 댓번 이곳을 찾아 피곤한 심신을 풀곤 한다.
수년전 어느 여름날,
“언니, 저 외돌아진 외딴집 있지. 거기 여자 혼자 살고 있는데 내가 알고 지내니 놀러 가잔다. 나이 삼십대에 들어와 근 30년 가까이 살고 있어. 대학도 나왔고 인물도 좋은데 무슨 이유로 저렇게 혼자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일단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고 심심하기도 해서 동생을 앞세워 가보기로 했다. 거울 같이 맑은 봇도랑 물이 찰찰 흐르는 둑길을 따라가면서 내 나름대로 상상을 했다. 아주 수수한 여인이거나 수행에 전념하는 수도승 같은 사람일거라고, 그러나 첫인상부터 빗나갔다. 그는 긴치마 긴 머리에 새하얀 모시 상의가 썩 잘 어울렸고 엷은 화장 끼의 갸름한 얼굴, 도시형 세련미까지 풍겼다.
다기에 따라 차 맛은 다르다고했던가. 수수하고 두툼한 사기잔에 잘 우려진 정통 차향을 음미하면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
“이 산중에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요? 지금도 이런데 이곳에 들어올 당시는 얼마나 험악한 산중이었을까요?”
그는 웃음으로 답했고 나는 내 풀에 어색해서 얼마나 민망하던지…….
이렇게 만난이후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그와 마주했었다.
시선을 저편 뒷산으로 옮긴다. 그가 바로 한 줌 가루로 뿌려져 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의 그 잽싼 몸짓으로 뜰에 내려서며
“어머 오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그의 음성이 그의 모습이 환영으로 나타난다.
수차례 그를 대하면서 아니, 처음부터 궁금했던 일은 왜 이런 곳에서 혼자 사느냐? 이었지만 그 진의는 그가 죽기 전까지도 알지 못했다.
사생활이기에 정곡을 찌르는 물음을 절제한 것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얘기도중 알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부자 집 딸로 태어났고 서울의 이화대를 나와 고향 부산에서 수년 교편을 잡았었고 지금껏 미혼이며 신심 좋은 불교 신자이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수개월 찾아다니다 이 곳이 마음에 들어 정착했는데 근년 여름이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어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거였다.
“저 산들을 보세요. 사시사철 제 모습을 가꾸어 가는 저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더구나 서걱서걱 나뭇잎지고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바라만 보아도 얼마나 행복하다 구요.”
그러나 그게 정답이 아님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빛으로 알 것 같았지만, 또한 편으론, 나 역시 이곳에서 어느 여름밤, 별들을 가슴에 묻으며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주 행복하다는데 별말이 왜 필요한가.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 밭두렁에 그 여인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좋아하는 순백색의 첫눈 이불을 쓰고, 워낙 인적이 드믄 겨울철이라 다음날 집배원에 의해서 알게 되었단다. 사인은 교통사고 자기가 몰던 지프차의 바퀴자국이 가슴에 새겨있었기에 차를 잘못 정차시킨 탓이라고 한다.
참으로 사람 사는 방법 여러 갈래다. 가수 god의 ‘길’ 노랫말처럼 어디로 가야 꿈을 이루려는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나는 걸어가고 있네…….
그는 여기에 이렇게 혼자 사는 길을 택해 꿈을 이루었을까!
그가 생전에 가장 사랑하고 가꾸던 수목원, 지금은 거의 폐허로 돌변한 쑥대밭에서 그의 삶을 또 나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이다.
뉴질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맑은 공기, 청청한 자연림,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떼와 젖소들, 사방 어디를 보아도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롭고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평생 살고 싶지 않으세요?” 란 가이드의 질문에 선뜻 ‘네.’ 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피곤한 심신을 풀어주는 한정된 공간으로서는 족하겠지만 오늘도 내일도 아니 죽는 날 까지 평생을 이곳에서 살라치면 첫째 외로워서 못살 것 같았다.더러는 버거운 삶이 될지언정 그저 여러 사람들 속에서 아옹다옹 부대끼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정말 처음으로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
“이제 80을 산다 해도 십여 년 밖에 안 남았잖아. 이제 좀 잘 살아야겠어. 그간 너무 바삐 사느라 당신한테나 아이들에게도 …….”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의외였다. 그는 단순하고 현실적이며 죽음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 아주 철저한 생활인인데 참 세월이 가니 변하기는 변하는가 보았다.
결혼 초 서로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로 인해 참 많이 피곤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미스런 일없이 잘 지탱해 온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그의 동아줄 같은 인내심 덕분이다. 그러니 잘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내 쪽인지도 모른다. ‘미안합니다.’ 나는 무언의 인사를 건넸다.
잠이 잘 안 오는 밤이나 이른 새벽에 잠이 깨이면 적막해서일까, 지난날이 떠올려지고 잘 한일도 있었겠지만 늘 부족했고 후회되는 일들이 고개를 들어 스스로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그 중엔 언제나 지난 학교생활이 들어있고 학습의 미진함 보다는 용서를 구할 일이 불우하고 가난했던 아이들에게 좀더 따뜻한 손길을 주지 못한 점이다.
반드시 내 의견을 관철 시키는 것이 자존심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현실에 철저한 남편의 입에서 생의 유한성을 얘기한 일등은 참으로 세월이 모든 것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순리를 가르쳐 준 일이다.
그래 . 이젠 좀 잘 살아야 한다. 우선 편하게 살고 싶다. 남편은 수명을 80을 얘기했지만 ,요즘 같은 복잡한 세상에선 사실은 내일도 불투명하다. 앞의 그 수수께끼의 여인처럼…….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란 가장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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