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한국수필작가회 / 제 39집 발간

목향 2026. 1. 30. 15:27

내가 회원으로 있는 작가회에서 새 책이 나왔다 

내 글도 한 편 실려있기에  올린다.

*책 표지 

* 목차 : 60 쪽에 < 메멘토모리 >

본 문

새벽녘 잠에서 깼다. 약속이나 한 듯 숙부님 영면 모습이 또 떠오른다. 요즘 으레 번번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혹자는 부친도 아닌데 뭘…….’ 할지도 모르지만, 나와 이 분과의 인연은 그 이상일 만큼 깊다. 내 주변 적잖은 인연들이 떠나갔지만, 이토록 애잔한 슬픔은 오랜만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 ) 산 사람은 필연 죽는 것이고 살 만큼 사시다 고종 명을 맞으심에 스스로 다독이지만 아직은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감내하기 힘들다.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이 분은 출세하신 분이다. 어깨의 별이 번쩍이는 군인 장성으로 퇴임 명예롭게 현충원에 모셔졌으니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생이다. 그러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 현실, 이 그리움을 그 무엇이 메꿀 수 있을까!

지난날, 일화가 아련히 떠오른다. 중학교 입학시험 보던 날, 족히 8km나 되는 먼 길을 숙부님 손에 이끌려 뛰다 걷기를 반복하면서 헐레벌떡 겨우 시작 10분 전 시험장에 도착했던 일, 단 몇 분만 늦었어도…….

나는 시골 태생이다. 어린 시절엔 나름 부잣집으로 행복하게 살았지만 6.25 사변이란 국가적 회오리바람은 우리 집도 몰락의 시작이었다. 토지개혁이란 명문으로 재산은 거의 소작인에게 넘어갔고 집은 불타버리고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엔 가세가 많이 기우러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더구나 여자는 초등 졸업도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는데 그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를 공부하게 했으니 바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분이다. 이러한 분께 설마, 설마 하면서 문병조차 제대로 못 했는데 참으로 애통하기 그지없다. 나는 아직 내 휴대전화에 그분의 존함은 물론 마지막 나눈 문자메시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영원히 간직할 것 같다.

숙부님을 비롯해서 근래 들어 주변 지인 하나, 둘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러기에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이란 걸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전에는 추상적이고 객관적으로 대 했다면 지금은 너무도 직접적이고 절실하다. 아마도 내 차례도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어버이날 큰애가 한 호텔에 점심예약을 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 줄기의 풍광이며 분위기도 좋은 데다 외동 손자의 입으로 번질나게 드나드는 숟가락, 그 모습을 보는 것만도 흐뭇하고 행복했다. 순간 앞으로 이런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허락되어 있을까? 잠시 눈을 감는다. 통계적으로 100명 중 15명이 생존해 있다는 그 범주에 내가 운 좋게도 끼어 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죽음의 길,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어떻게 건널까? 아무리 초연한척해도 어느 때 갑자기 엄습해오면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맞닥뜨릴 아픔과 고통이다. 누구나 잠자듯 가고 싶은 것이 소망이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인가?

그러기에 나는 우리나라에도 안락사가 어서 빨리 법제화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작성한 지 꽤 오래지만, 그것만으로 미흡하다.

며칠 전 동영상으로 모녀가 죽음의 길을 찾아 스위스로 떠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얼마나 암 통증이 극심했으면 그 복잡한 절차를 밟으면서까지 실행했을까, 안타깝고 안쓰러우면서도 백번 이해가 되었다. 딸과 남편은 말한다. 엄마가 아내가 더는 고통받지 않게 되니 안도하고 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죽는데 편안하다니 그 심정을 해설할 필요가 있을까? 네덜란드 전 총리 (드리스 판아흐트) 부부도 동반 안락사를 택했고 세기의 미남 배우 알랭 드롱도 희망했었다.

태어난 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해도 마지막은 자기 결정권으로 품위 있게 갈 수 있어야 한다. 불치의 몸으로 더 이상의 치료방법을 찾지 못할 시 그 극심한 고통을 없앨 수 있다면 최상의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마지막 단계에서 쓰이는 금전적 손실도 평생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죽음이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더 생각해 무엇하리…….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어느 성직자 무덤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태어나 죽어야 하는 인생의 숙명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래.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우리는 모두 향하고 있다. 그 일은 만고 불변의 법칙이다.

나는 언제쯤 가게 될까? 가는 날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리 멀지 않았고 살아온 대로 죽는다니 짧지만 좀 잘살아 볼 일이다. 돌아보면 후회투성이라 때론 가슴을 애일 때도 있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그러니 앞으론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지말고 어떤 방법으로든 지난날의 미숙함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고 많이 아프지 말고 편하게 가고 싶다.

이만하면 잘살았다. 엄마, 잘 가세요.’ 사랑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웃음 띤 얼굴로 생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싶다.

메멘토 모리란 말이 있다. ‘죽음을 생각하라. 죽음을 잊지 말아라.’란 라틴어다. 이어령 님도 이 말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했다. 이분만의 좌우명일까? 살아있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 마지막 가는 날까지 기억해야 할 명언이다. 바로 그 일이 남은 오늘을 잘 사는 길이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