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04. 11. 8. 준비하기 | |
![]() 내일 있을 '열린 음악회' 녹화 때문에 괜시리 마음 동동 거리며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노래 연습을 하지 못했고 또 내일의 무대는 어쩌면 내게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어서였다.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기운이 내 방안을 감돈다. ....... 언니에게는 검은 색 정장을 선물했다. 그것은 상복을 의미했다. 그동안 집에서 음악작업을 하던 미디 프로세서도 음악하는 후배에게 쓰라며 건네주었다. 거의 30여년간 모아왔던,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자료인 LP와 CD 수백장은 원음방송에 자료로 쓰라며 전해주기로 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질 좋은 방송, 정성어린 방송을 만들기위해 필요했던 음악자료 1000여 곡을 오디오 파일에 입력시켰던 것까지 합하면 그 자료는 꽤나 유용할 것이다. 무엇은 누굴주고, 누구에겐 무엇을 주고... 다 주는 것만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언니의 상복까지 준비하는 것을 두고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느끼고 있다. 지난 9월 초, 말기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앞으로는 혼자서 일어나 앉지도, 혼자서 자리에 눕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암덩어리는 점점 커지기만 해 손으로도 만져질 뿐 아니라 육안으로도 구분이 될 정도다. 노래하나 추억 둘을 진행하는 방송시간의 행복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와 통증때문에 1시간 간격으로 깨어 울부짖어야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길게 기다리고 있다. 일부러 휠체어에 앉은 채 잠을 안자고 새벽까지 버텨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그럴 듯 하지 않았다. 언니는 덩달아 밤 새도록 1시간 간격으로 내게로 와 나를 일으키고 눕히고를 반복하고 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프다고 눈물흘리는, 내 등을 쓰다듬는다. 그러나 그 눈물은 금세 그치고 만다. 이내 내가 우스개 소리를 하거나 장난스러운 말투로 언니를 웃긴다. "언니이~~~ 우리 요즘, 스킨 쉽이 너무 잦은 거 아냐?" 영화나 CF에 나오는 끈적 끈적한 말투의 성우 목소리 성대모사를 하곤 하기때문이다. 언니는 내 흉내에 웃고 잠깐이라도 우리는 아픈 현실을 외면할 수 있다. 오늘 밤은 과연 몇 십분 정도 눈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 있을 열린 음악회 녹화를 마음으로 준비하며 긴장감에 피로감을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4인조 밴드와 연주했던 음악을 관현악단 편곡으로 대하자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맑고 순수하고자하는 원곡의 느낌이 복잡한 악기 대형과 편성으로 인해 사라지는 단점이 있음을 느꼈다. 잘 하고 싶은데...... 나는 분명 뜬 눈으로 밤을 지샐 것이다. 구토를 하고 강한 진통제를 먹고 지쳐 쓰러져 보낼 것이다. 밤새 몇 번이고 언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침대에서 자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며 일어나고 눕고를 반복할 것이다. 정말 잘 하고 싶은데....... |
'길은정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목 : 2004. 11. 23. 귀 가 (0) | 2009.05.28 |
---|---|
제목 : 2004. 11. 15. 입 원 (0) | 2009.05.28 |
제목 : 2004. 11. 4. 식사 (0) | 2009.05.28 |
제목 : 2004. 11. 1. 화려한 시작 (0) | 2009.05.28 |
제목 : 2004. 10. 26. 참아야 복이온다? (0) | 2009.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