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11. 23. 귀 가

목향 2009. 5. 28. 13:56

제목 : 2004. 11. 23. 귀 가

통증을 견디다 못해 입원한 병원에서 지낸 날들은
끔찍했던 날들이었다.

링거액에 직접 투입한 몰핀은
통증을 완전히 없애지도 못했고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병든 닭처럼 꼬박 꼬박 졸기를 거듭하고
헛소리를 하거나
금방 누가 다녀갔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했다.

발음은 이상하게 꼬였고
그 상태로 방송을 진행한다는 것음 무리였다.
그래서 생방송 4시간 전부터 주사바늘을 빼내
몰핀 투여를 중지하고 통증을 견디며 먹으나마나한 진통제를 복용해야했다.

생방송을 마치면 다시 병실로 돌아와야 했고
그렇게 며칠을 보내는 사이
언니와 나는 더욱 지쳐갔다.
식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거니와
입원기간 내내 병원 침대위에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 보호자용 의자를 다리아래 놓고 앉아있어야했고
울며 불며 1시간 마다 통증을 호소해야 했으니
언니 역시 잠을 못자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열린 음악회'녹화를 위한 리허설 도중 넘어져,
절대로 부러지면 안된다고 의사가 경고했던 골반뼈의 나머지 부분이
골절되어, 나의 오른쪽 다리는 내출혈을 일으켰고
발가락 끝까지 부은 다리의 허벅지는 쓰모선수 같았다.

그런 상황인데도
병원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몰핀 주사액을 혈관에 투여하는 방법밖에는....

퇴원을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로운 각오가 생겼다.
종합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걸, 어쩌겠는가.
견뎌내야 한다는 각오 뿐.......

나는 이제 누워서 잠을 청한다는 일을 포기했다.
각종 이불등를 쌓아놓고 그 위에 엎드린 채
1-2시간을 보내다가또 통증을 호소하며 언니를 부르고
병원에서 배워 온 주사 놓는 방법으로
언니는 내게 진통주사액을 능숙하게 놓아준다.

이렇게 힘겨운 밤을 매일 보내고 있으면서도
방송을 하는 동안의 목소리는 날아갈 듯하니
나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은 듯 하다.

내겐 아주 중요한 오디오 북인 '책상은 책상이다'의 디자인 작업과
쟈켓 완성 작업을 의뢰했는데......
세월아 네월아...
내게는 1년 같은 하루들을 기다림으로 지루하게 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
한심하고 답답할 뿐이다.

제작비는 이미 다 건네졌고
성의만 있다면....
약속을 지킬 마음만 있다면...
벌써 내 손에 쥐어졌어야 할 작품.

내가 직접 움직일 수만 있다면 쫓아가 밤을 지새며라도
디자인 작업을 마칠 각오인데..

내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이리도 답답하고 불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