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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친해지다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 같다. 흘러가게만 되어 있는 삶의 무상함 속에서 인간적인 건 그리움을 갖는 일이고, 아무것도 그리워 하지 않는 사람을 삶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악인보다 더 곤란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리움이 있는 한 사람은 메마른 삶 속에서도 제 속의 깊은 물에 얼굴을 비춰본다고.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 신경숙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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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自轉) 1
강은교
날이 저문다. 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 무한천공(無限天空) 바람 겹겹이 사람은 혼자 펄럭이고 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 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 어딜까 어딜까 도시를 끌고 간다.
날이 저문다. 날마다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여자들은 떨어져 쌓인다. 잠 속에서도 빨리빨리 걸으며 침상 밖으로 흩어지는 모래는 끝없고 한 겹씩 벗겨지는 생사의 저 캄캄한 수세기(數世紀)를 향하여 아무도 자기의 살을 감출 수는 없다.
집이 흐느낀다. 날이 저문다. 바람에 갇혀 일평생이 낙과(落果)처럼 흔들린다. 높은 지붕마다 남몰래 하늘의 넓은 시계소리를 걸어 놓으며 광야에 쌓이는 아, 아름다운 모래의 여자들
부서지면서 우리는 가장 긴 그림자를 뒤에 남겼다.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연세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졸 1968년 9월 ≪사상계(思想界)≫로 등단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빈자 일기>, <소리집>, <붉은 강>, <우리가 물이 되어>, <바람노래>,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초록 거미의 사랑> 등 다수
===================================== [감상] 우주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가엽고, 나약한 의미인가. 날은 캄캄해져 오고, 무한천공 바람은 불어오고, 어두워진 시공에서 사람들은 지상의 도시를 혼자 펄럭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침상머리에 쌓이는 모래알처럼 부서져서 종내는 생사의 경계마저 없어지는 소멸의 비의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생사의 우주적 회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들은 저마다의 지붕에 ‘하늘의 넓은 시계소리’를 걸어놓고, 시간의 힘과 맞싸워 보지만, 종내 그림자만 남기고 소멸되어지는 운명은 피할 도리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우주론적 자전의 힘이자 질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여, 부질없는 욕심은 이제 그만 벗어두라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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