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타인의 글)

목마와 숙녀 . . . (박인환 시) / 옮겨옴

목향 2009. 7. 20. 15:27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