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때 늦은 후회

목향 2009. 10. 23. 17:42

 

    

     때  늦은 후회

                                                                                                                             김종선  


근래 영화 두 편을 감동 깊게 보았다.

프랑스 영화 ‘코러스’ 와 일본 영화 ‘훌라걸스’ 이다. 코러스는 2차 세계대전이후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삭막한 현실의 프랑스, 한 작은 시골학교에 임시음악교사 ‘마티유’가 부임하면서 새롭게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합창부를 조직하여 사랑으로 가르치는 음악 수업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폭력적이고 피폐해진 아이들의 정서를 바로잡아가는 이야기이다.

 

또한 훌라걸스 역시 1965년 일본 후쿠시마현의 한 탄광촌의 이야기로 낙후되어가는 마을의 대치 사업으로 하와이언 댄스를 조직하게 되는 데 그 지도교사 ‘마도카’ 의 헌신적인 사랑의 교육으로 그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는 환희의 목적을 달성하는 이야기다.

 

나는. 위 영화를 감상하면서 두 선생에게 받은 감동이 너무 크기에 끈질기게 내 의식에 달라붙어있는 마음의 짐을 밖으로 꺼내어 조금의 위안이라도 얻으려한다.

 

학교 문을 나선지도 어언 십 여 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주 까맣게 잊고 싶어도 더러는 고개를 불쑥 불쑥 내밀어 나를 후회와 반성의 늪으로 몰고 가는 잘못이 있다.

현실적으로 그 일로 누구도 나를 탓하거나 원망의 눈초리도 없지만 눈에 보이는 질책이나 형벌은 없다 손 치더라도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는 무겁게 짊어진 마음의 짐이다. 어쩌면 갚아야 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기에 언제까지나 부채로 남아있을 일인지도 모른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내 학교생활은 물론 잘한 일도 있었지만, 후회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만큼의 과오도 더러는 있었기에 새벽녘 이른 잠에서 깨어나거나 어떤 계기로 나의 학교생활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불청객 을 쉽게 보내버리지 못한다.

남을 이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일이 아니던가. 용서, 역시 남이 하기 전에 내 스스로가 먼저 해 주어야한다.

 

새 하얗던 아이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많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어느 산수 시간이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하고 있었다. 교실은 숨죽은 듯 모두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반짝이고 있는데 한 아이가 고개를 돌려 뒷자리 친구에게 뭐라고 …….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긴 막대로 딱, 딱 두 차례 어깨를 내리쳤다. 아이는 가슴을 움켜잡았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 하얗게 질렸다. 

종아리의 매 자국이 선명히 들어 날만큼 가한 일도 있을 터인데 딱 두 차례의 매질이 이토록 마음에 남는 건, 사실 그 애가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 고개를 돌렸느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만일 그 아이가 많이 잘못을 했다면 그 일은 기억 저편으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을 일이다. 때렸다는 말보다는 내리쳤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기에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없다. 


또 하나, 새 학년이 시작되어 1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다. 그 중 한 명, 정신적으로 많이 부족한 아이, 정석대로라면 특수학급에 들어가야 할 아이가 내 반에 배정된 것은 순전히 자식을 정상인 반에 넣고 싶은 부모의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어쩌면 욕심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이후 엄마는 매일 아이와 같이 등, 하교를 했지만 입학 식 날부터 시작된 그 아이의 행동은 이후에도 거의 정상 수업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학습은 뒤의 일이고 우선 조금만 눈을 돌리면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기 일쑤이니 지도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상 그 아이 엄마가 되어 많이 고민하면서 사랑과 인내로 견디자고 수없이 다짐도 했지만, 결국 세 달을 채우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지장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퇴교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특수반으로 보낼 생각이었지만, 엄마는 1년을 유예시켜 내년에 다시 들어오겠단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 지장을 준 것은 사실이고 또한 특수반에서의 학습이 더욱 효과적일 거라는 확신도 있었지만, 어차피 내 반에 들어온 아이를 내가 책임지지 못하고 내 안위를 우선적으로 선택한 이유임을 배제 할 수없기에 지금껏 후회가 되는 것이다.

 

 퇴교 하던 날 아이 엄마는 아들 이름이 또렷이 써 있는 사물함 학용품을 꺼내면서 슬프게 울었다. 어쩌면 그 모습이 이렇게 오래도록 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자식을 둔 엄마인데…….

그래. 학습의 진전은 보지 못한다 해도 끝까지 내가 데리고 있어야 옳았다.

핑계가 아니라 아마도 매 달 치루는 서열 일제고사만 없었더라도이런 일은 없었을 지도모른다. 그때는 평균 1점을 가지고도 알게 모르게 경쟁의식을 버리지 못할 시기였으니까, 아,참! 이순간 마음아프다. 그 무렵 어느 반을 막론 하고 학습이란 명목아래 마음의 상처로 희생된 아이들이 어디 한 둘이랴.

 

언젠가 일본 오토다케 히로타다 가 쓴 책 <오체불만족> 을 읽으면서 그의 초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헌신적 사랑에 감동되어 그때도 이일로 많이 후회하면서 얼마나 뉘우쳤는지 모른다.

그 아이 엄마의 눈물어린 안쓰러운 모습이 환영으로 나타나면 나는 너무나 괴로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뭐 그게 큰일이라고 이미 지나간 일인데,'

 

 내 편한대로 쉽게 지우려하나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글로 나마 풀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후련하다.

바라건대 그때의 주인공들이 우연이라도 이글을 읽었으면 하고 바란다. 내 가 지금껏 그 일을 잊지 않고 미안 해 하고 반성하며 후회한다고. 앞에 일은 내가 제천 N학교 2학년 담임 때의 일이고 다음일은 마지막 문을 나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학구, K 교에서의 일이다.

 

‘그래 어쩔 수없다. 이제 와서 어쩌겠니? 내가 짊어지고 갈 짐이기에 거듭 용서를 구할 뿐이다. 나 자신에게 그들에게…….’ 

 

  

* 어느날의 학습현장 ( 1998 . 2월어느날)

 

 

  * 어느날의 <수업연구 참관> 도 교육감 을 비롯한 장학관 등이 보인다. 뒤편 ( 손을 턱...) 필자다. 

 

 

 * 퇴직하던날 < 충북도 교육청 1998.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