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죽음보다 더한 슬픔

목향 2010. 1. 22. 11:26

 

 

 

                                                                           죽음보다 더한 슬픔

                                                      

TV 화면에 6.25전사자 유해발굴이 한창이다.

아주 어린시절이었지만 직접 사변을 겪은 세대로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이 그려지면서 절로 고개가 도리질 쳐 진다. 그 순간 얼핏 떠 올려진 상(像), 개인적으론 나와는 아무런 연관은 없지만 내 뇌리에 꽉 박혀있는 시신도 수습되지 못한 어느 한 간첩의 죽음이 떠 올려진다.


거슬러 1960년대 말, 나는 면소재지 B 학교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마침 여름방학이었지만  그 며칠 당직 근무 중이었다. 어느 날 출근하니 운동장엔 온통 수 십대의 군용차들이 들어서있고 교무실은 고위 장병들의 집무실로 이용되고 있었다. 어쩌다 흘깃 눈길을 주면 몇, 몇 군인들이 커다란 지도를 펴놓고 작전을 세우는 듯 한 모습이 보이곤 했다.

알고 보니, 남해로 북한 간첩 수 명이 침투했는데 그중 1명이 이곳 부근 험준한 산속으로 스며들어 바로 그 소탕 작전 때문이었다. 창문이 뒤흔들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군용 헬리콥터가 오르내렸고 제복의 장병들로 꽉 찬 듯 한 교정은 마치 군부대를 방불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많던 장병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가 했는데 수 시간 뒤 한 목숨이 파리보다도 못한 죽음으로 사라져 간 것이다.

며칠째 시끌벅적대던 교정은 곧 평온을 되찾았지만, 이후 내 마음 한 자락엔 거적에 덥여 있을 이름 모를 한 인간의 주검과 생사조차 모른 채 오늘도 내일도 애 태우며 기다리고 있을 그 가족들의 모습이 상상 되면서 수십 년이 지난 오늘 까지도 마음속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때를 기억하는 이는 잘 알겠지만, 당시는 북한과의 목숨을 건 힘겨루기로 반공이니, 승공이니, 멸공이니 하는 극한의 구호가 벽을 메웠고 초등학교 윤리교육 역시 도덕성지도에  앞서 간첩 및 불온전단 신고, 식별방법 등 북한과의 절대 대치를 전제로 교육해야할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당시 한 북한 간첩의 사살은 아군의 혁혁한 공이고 승리로 평가됨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 일진데, 더구나 수 없는 간첩 토벌에서 아군의 목숨도 초개처럼 사라져들 갔는데. 오래 전 적군의 한 주검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기도하다.

그러나 이유를 굳이 밝혀 본다면 우선 아군이니 적군이니 하면서 편 가르기에 앞서 오직 다 같은 한 인간의 고귀한 생명으로 동일시되어 인간의 존엄이나 가치 는 뿌리 채 뽑혀진 채 이념도 사상도 아닌, 정말 실오라기만큼의 명분도 없는 부름에 항거 못하고 꼭 두 각씨가 되어 춤을 추다 죽어간 서러운 목숨이 안쓰럽기도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죽음보다 더한 비극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나로선 지난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초라하게 죽어간 그 병사의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 물론 알 수 없지만, 그 서러운 병사도 누군가의 잉태로 태어났을 것이고 그러기에 그 어버이가 생존해 있다면 언젠가는 아들과의 상봉을 기다리면서 새벽마다 정한 수에 두 손 비비고 가냘픈 문풍지 떨림 에도 귀를 세우며 흐릿한 눈빛으로 동구 밖을 서성대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약도 없는 기다림으로 애 간장을 녹이고 있을 그 부모의 심정은 상상하고도 남는 다. 나 역시 자식을 둔 어버이기에 …….


어디 이들 뿐 일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어버이가 학수고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자식을 기다리느라 편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는 친지를 알고 있다. 그 애타는 심정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살아있으되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란 말이 바로 이런데 통용되지 싶다. 

얼마 전 중국의 딸애가 친정집에 왔을 때의 일이다. 새벽잠에서 막 깨어난 그 애가 저의 이모를 집까지 태워 준다면서 거의 잠옷 차림으로 달랑 승용차 키만 가지고 급히 나갔는데 돌아올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초조하고 불길함만 더해가던 그 기다림의 몇 시간, 그로 인해 모든 기가 다 빠져나간 듯 종일 지쳐 지냈다.


인간은 누구나 존귀하고 살아야 할 명분은 그 누구에게도 존재 한다.

우리나라 자살순위가 세계 2위란다.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버릴까? 안쓰러운 동정이 일다가도 죽기 살기로 힘을 다해 헤쳐나간다면 무엇이들 못할까? 하는 원망도 생긴다.

힘주어 말 하고 싶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이유 없이 태어나지 않았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으로 나와 그렇게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람의 환경이 되어보지 않는 한 함부로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나만 생각하기에 앞서 가족을 생각하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다면 분명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 간첩의 목숨이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려지지 않았고 다만 시신이라도 수습되어 생사만이라도 그의 가족이 알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내 머리에는 이렇게 오래도록 그 잔영도 깊게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