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아가의 눈물
김종선
“선생님, 정말 딸이 있어야 해요. 며칠 전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글쎄 둘이나 되는 올케 언니가 하나같이 어쩌면 그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지. 어쩌다 우는 듯한 모습이 얼핏 보여도 그게 어디 우는 거 에요? 흉내 내는 거지. 집안 어른들로부터 얼마나 빈축을 샀다고요. 나는 엄마의 괴로워하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아렸고 돌아가신 후야 그 마음…….”
그렇게 말하는 k선생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짐짓 아마도 내가 딸만 셋을 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 하는 것인가 했지만, 그의 태도로 보아 그것만은 아닌 듯 했다.나는 그 순간 정말 눈물이 안나 면 할 수없지. 억지눈물이야 흘릴 필요가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눈물만큼 정직한 표현이 있을까! 눈물이야 말로 감정의 순수한 표현 일진데 차라리 눈물이 안나오면 울지 않는 것이 정직한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물을 흘린다. 기뻐서도 울고 슬퍼서도 운다. 그 어느 몸짓보다도 그 어떤 언어보다도 가장 진실을 담아 표출되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눈물을 보면서 속내를 헤아린다. 아니 짐작만 하는 것이 아니고 꿰뚫을 수도 있다. 그만큼 눈물은 감정표출의 절대적 잣대로 영혼을 적신다.
마음이 지나치게 격할 때도 한바탕 울고 나면 오히려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눈물엔 거짓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예가 아니겠는가. 깊고 깊은 눈물의 강을 건너서 마음의 안위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배우들이 감정의 폭을 잡지 못해 나오지 않는 눈물을 안약으로 대신한다고 하는데 글쎄다. 감정 전달이 제대로 될까?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데 어찌 감동을 받을 수 있겠는가. 감정에 몰입해서 제대로 눈물을 흘려야 정작 관객이나 연기자나 서로가 상통된 이심전심으로 교감을 이룰 텐데.......
지난 2010,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메달리스트 3인방도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의미는 서로가 달랐지만 꾸밈없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솔직한 감정의 분출이기에 감동을 안겨주었다.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의 눈물은 그 힘들고 어려웠던 인고의 과정을 거쳐 이룩한 금자탑이기에 기쁨과 후련함의 눈물일 것이고 은메달인 아사다 마오의 눈물은 스스로 아쉬움과 분함의 눈물일 것이며 동메달 조애니 로셰트의 눈물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된 회한의 눈물일 것이다. 그들이 수많은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 그 눈물들은 실오라기 한 올만큼의 꾸밈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눈물이기에 만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다.
요즘 백령도 해상 천안함 사고로 장병들의 생사를 가늠키 어려운 피를 말리는 상황에서 그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머금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토록 눈물은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비춰지는 것이 상례이다.
나를 돌아본다. 가장 마음 아파 흘린 눈물은 어머님의 별세와 막내 동생의 사고를 들 수 있겠고 환희의 눈물은 큰 애의 무사한 출산으로 손자를 보았을 때와 각고의 노력 끝에 아이들이 대학에 거뜬히 합격한 일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더러는 감당 할 수 없을 만큼의 애간장을 녹이는 커다란 슬픔이나 고통에서는 차라리 눈물조차 안나오기도 하고 실제 목격도 하게 되는데 그토록 기막힌 현상에선 다만 겉으로 눈물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느 유명 회장님을 갑자기 잃은 사모님이 장례 기간 중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세간에 회자 된 적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그분이 슬프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모습은 극에 달한 슬픔을 감내하기 힘들어서 속울음을 삼키고 있는 것이기에 바로 마음의 눈물이 아니겠는가.
또한 눈물은 자기가 겪는 실제 상항에서만 흘리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시상대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서, 한 해가 저무는 세모의 깊은 밤, 가슴으로 파고드는 잔잔한 송가에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시청하면서 또한 엄청난 재난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도 눈시울을 적신다.
이렇듯 눈물은 생리적 현상으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생의 희로애락을 표출하면서 우리의 삶 과 맥을 같이한다. ‘피도 눈물도 없다.’ 라는 말도 있는데 정말 그렇다면 이 삭막한 세상, 상상만으로도 숨 막히는 일이다. 기쁨의 눈물이던 설움의 눈물이던 속으로 울던 겉으로 울던 자연스럽게 흘리는 눈물 속에 사랑은 더하고 슬픔은 나누게 된다.
그런데 이렇듯 가슴내면의 참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가장가식의 눈물이 너무 흔해서 진정 슬픈 눈물을 흘려야 할 판이다.
가슴 한 복판이 거울 보듯 환히 그려지는데 위의 며느리들처럼 억지 눈물을 흘리느라 애 쓰는 이들, 갖은 권모술수, 사기혐의, 비리 등 감쪽같이 가리기위해서 흘리는 위선의 눈물들, 특히 요즘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금품 수수나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앞에 놓고 왜 그리도 거짓 눈물을 보이는지. 그만큼 높은 자리에 앉은 인물 이라면 자리 값 그대로, 약속한 그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됨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진데 존경을 받기커녕 오히려 선량한 국민의 걱정만 안겨주는 현상에 짜증이 많이 난다. 정치판 모습이 보이면 tv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가 꽤 있다고 한다.
당리당락에 목청높이며 애국이라니 정말 개가 웃을 지경이다. 다수결의 원칙이란 확실한 잣대도 있는데 왜 나를 감추면서 세파에 휩쓸려야하는지 모를 일이다. 내편에도 이의는 있을 수 있고 네 편에도 생각의 다름은 있을 진데 어찌 그리도 양편으로 딱 갈라져 왜 억지 눈물을 흘리며 연극하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가슴에 비수가 꽂히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참 눈물을 쏟으며 무릎 꿇어 참회 하던지 아니면 혀를 깨물고…….
조금이라도 그러한 태도가 엿 보인다면 국민의 동정이나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터인데, 어쩌자고 나는 아니요로 일관하는지 안타깝다. 분명히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자명할진데 그러기에 주인공들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어쩌자고 남이 아닌 자신까지 속이면서 연연하는지 참으로 불쌍하다.
아기들을 보자. 아기들은 참으로 순수하다. 그러기에 아기의 눈물은 거짓이 없다. 아기는 저를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입으로 열 번 사랑하다고 해도 아니라 해도 아기의 눈물은 거짓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본연의 진실이기에 멍든 영혼의 눈을 뜨게 하고 내면의 외침으로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러한 순수함에서 흘려지는 눈물은 사랑의 향기로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우리어른들, 이래저래 억지 눈물짓느라 애쓰지 말고 순수한 아기들의 눈물처럼 그냥 흐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을까? 억지로 꾸미고 포장하지 말고 자기마음 시키는 대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내버려 둘 수는 정말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