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행복한 삶

목향 2010. 8. 31. 19:34

 

행복한 삶

김종선


 베이징 딸네 집에서의 일이다.

일요일이라, 모처럼 사위얼굴을 대하며 아침을 먹게 되었다. 사위는 참으로 너무 바삐 살기 때문에 한집에서 숙식을 해도 얼굴 대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딸애 왈,

 

“밥 먹기 전에 쓰라는 독서 감상문 가져와 봐.”

 

손자는 주저주저 하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간신히 공책을 내민다. 얼굴만 봐도 자신 없는 표정이 역력하다. 얼른 받아 한 번 휙 둘러본 딸,

 

“너 이게 글이라고 썼어? 다시 써. 잘 써야 아침 밥 준다.”

 

호되게 일침을 가한다. 금 새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눈물이 뚝뚝 …….

한수 위 사위 왈,

 

 “너 손들고 무릎 꿇어. 왜 엄마 말 안 들어.” 

 

 이내 집안 분위기는 흐려졌고 나 역시 상하는 마음 누르기 어려웠다. 모처럼 푸짐한 밥상을 대하며 화기애애하던 아침상, 그 누구도 즐겁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인데 그러니? 슬그머니 아이의 공책을 들여다본다. 한국의 5학년 잣대로 평가한다면 물론 우수하다고 평할 수는 없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더구나 아이는 제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조용했던 집안에 갑자기 몇 식구가 늘어나 (나를 포함 네 자매방문) 손자는 온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 그냥 마음이 들떠있는데 어떻게 글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나무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만큼 한 것도 칭찬해야 할 일이었다. 부스스 눈비비고 막 일어난 아이에게 한 시간도 안주고 독후감 한 편을 쓰라니 참, 어이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꾹 참고 있던 터였다. 

 

 손자는 한국어 교육이 저의 엄마한테 배운 것이 전부다. 초등학교 입학을 베이징 영국국제 학교에 했으니 아이가 한국어 능력이 좀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애 엄마는 어쩌자고 잣대를 한국의 우수아에 비교하는가?

딸애는 자식을 딱 한명, 외동아들을 두었다. 그러니 남보다 더한 교육열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좀 앞뒤를 가렸어야 했다. 집안분위기를 삽시간에 이렇게 만들어놓다니…….

 위와 같은 일이 어디 우리 집 만의 일일까, 보통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까지 찬사의 언질이 있을 정도지만, 참으로 생각할 여지가 많다.

모두가 1등 일 수가 없고 반드시 내 아이가 1등을 한다는 보증도 물론 없는 데 학부모들은 어쩌자고 내 아이만은 뒤 처져서는 안 된다고 최우수 집단으로 내 모는 것인가? 그렇게 들 교육 열성이 지극정성인데도 세계적 대학 순위 100위 안에 우리대학은 단 1개교가 들어있을 뿐이다.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떨어져있다. 학생, 학부모,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  다같이 생각해 볼 문제다. 어느 부모치고 공부 못하는 아이를 원하겠는가?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자. 어느 신문 표제 ‘위험수준 넘어선 초, 중, 고생 자살’ 이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그 원인 중에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꽤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정말로 요즘 아이들 안쓰럽고 안타까울 만큼 너무 고달프게 산다.

또한 학습이란 명목아래 가계가 출렁일 만큼 과외비에 돈을 쏟아 붓는다. 물론 기회는 주어야 하고 뒷바라지도 해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겐 어느 정도 효력이 보증될 수도 있겠지만 수천만 원의 돈을 들여도 안 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아이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부모 된 자신의 안위를 얻고자 어쩜 대리만족을 위하여 돈을 쓴다면 깨진 독에 물 붓기에 지나지 않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힘들게 번 돈 그렇게 물거품으로 사라진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차제에 교육이란 무엇인가?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는 한마디로 행복하게 살기위한 수단이며 행복한 삶을 위한 밑거름을 쌓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로 교육의 힘은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를 찾아 올인 하는 일이다. 목표를 정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창출하고 인내와 노력으로 역경을 넘어야 한다. 혹여 커다란 목표물에 도달을 못한다 해도 그렇게 추구하는 삶의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 가치를 찾는 일이다.

아울러 너와 내가 같이 사는 공동의 번영, 이것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각자 다르듯  재능이나 취미 소질역시 각각 다르지 않는가. 가장 원천을 이루는 남,녀의 차이가 현격하고 성격, 정서도 다르다. 그러기에 같은 곳만 바라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그 좋은 예로 축구계의 박지성, 스케이터 김연아등이 산 증인들로 지칭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아니, 그런 특별한 인물을 예로 들다니,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삶의 방향을 생각할 수 있는 동기부여는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얼마 전 어떤 잡지에서 현직판사가 자살을 하려고 목욕탕 수도꼭지 줄에 목을 매었으나 그 줄이 빠져나와 물벼락만 맞고 살아난 이야기를 아주 리얼하게 표현한 글을 보았다.

또한 어느 현직 검사가 나이 지천명을 바라보면서 용기 있게 사표를 내고 야인으로 돌아온  기사를 읽고 참 느낌이 컸다.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밭두렁에 앉은 모습의 사진이 조금은 생경해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사회의 일반적 안목이라면 지위도 돈도 명예도 거머쥔 장본인들이다. 생을 마감하려 했던 일이나 사표를 던진 일들은 쉽게 납득이 안갈 일이다. 물론 그러한 이유의 정답은 장본인 외에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들의 생활이 행복 하지 않았기 때문임은 자명하다.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 tv 방송에 출현한 일목스님, 한국 최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눈앞에 둔 젊은이가 홀연히 속세를 떠나 산문으로 들어간 이야기, 그는 출가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이었죠. 갑자기 심장발작이 일어났어요. 정말 죽을 것만 같더군요. 그 일을 당하고 나니 내가 그동안 가졌던 세간의 지식들은 생사 앞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부처님의 가르침에 빠진 중생이 갈 곳은 절 밖에 없더군요.”


우리네 인생살이 행복의 잣대를 어디에 맞추어야하는지 누구나 한 번쯤 고뇌해 야 할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되었다. 무거운 과제이기에 전 생애를 걸고 풀어내야 할 일이다.

 

차제에 초 중. 고 학생을 둔 학부모에게 정중히 한 마디 하고 싶다. 물론 나의 딸에게도 던지는 말이다.

반드시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 인양 자나 깨나 공부, 공부 하면서 아이들 닦달 하지말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한마디의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다. 무엇인가 잘 하는 것을 있는 대로 찾아 칭찬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축 쳐진 어깨도 펴 질것이고 아울러 자신감도 얻게 되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것으로 본다. 부모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찾는데 힘을 보태야 하고 밀어주어야 한다. 공부가 취미인 사람은 공부를 즐겨 할 것이고 노래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 방면에 총력을 경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노라면 제2의 조수미, 김기창, 앙드레 김이 되어 한국을 대표할 이름으로 온 천하에 찬란히 빛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니면 또 어떤가!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 본인스스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최상의 삶이 아니겠는가.

 

 

 

 

* 사랑하는 나의 손자 :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너무귀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