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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기습포격 / 판문점 문학기행

목향 2010. 11. 30. 16:21

연평도 기습포격 / 판문점 문학기행

 

 

지난 11월23일 북한의 해상포격 도발은 6ㆍ25전쟁 후 60년 만의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군인 2명, 민간인 2명 등의 사망을 포함 중상자를 비롯하여 삽시간에 연평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참으로 기습공격이다. 이 비인도적 행위를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 일로 인해 요즘 우리국민들은 모두가 긴장속에 분노를 느끼며 그 몇 배의 응징으로 되갚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좀 오래전이긴 하지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찾아 그날의 느꼈던 감정을 되살려 보고자 그때의 사진을 몇 장 올린다.

 

같은 민족임은 분명한데 그 어떤 이념과 사상이 왜 이처럼 분단으로 갈라놓았을까?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 서로가 총 뿌리를 겨누어야하나 !!!

 

 

 

* 망배단 앞에서 : 충북 여성문협 회원들 기념사진

충북여성문협 문학기행으로 실시되었었다.

 

<앞에서 둘째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필자다.>

 

정초에는 연시제, 추석에는 망향제를 올리고 북쪽에 두고 온 가족·친지들을 그리며, 실향민들이

 아픔을 달래는 장소이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고향을 눈앞에 두고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은

매년 명절 때면 이곳에 와 고향을 가슴에 묻고 간다.

 

 

 

 

 판문점에는 군사분계선에 걸쳐있는 건물도 3곳이 있다. T1, T2, T3건물이다. T1은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회의장소로 쓰이며, T2는 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장소로,

T3를 남북 대령급 실무자회의장소로 사용된다.

 

위의 사진은 T2 건물 내부같다. (우측 두번째 필자)

 

그 때만 해도 쉽게 관광할 수가없어 그 오래전에 협회에서 신청을 해놓았다가 실행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망향의 노래비앞에서

 

 

 

* 자유의 다리 : 위 다리를 마음대로 오가야 되는데 언제 쯤일까?

 

 

* 북측의 판문각

 

 군사분계선 남쪽구역에는 남북간의 연락업무를 수행하는 남북연락사무소가 소재한 자유의 집과

남북회담이 열리는 평화의 집이 있다.

 

북쪽구역에는 북측의 판문각과  통일각이 있고, 판문점 근처에는 남과 북의 민간인 마을로서 각각 유일하게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대성동과 기정동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해 있다.

 

위사진은 북쪽구역의 판문각으로 경비병들이 남쪽 구역을 보고 있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형용할 수없는 기분, 참으로 착찹했던 기억이 새삼 생각난다.

 

 

 

 

* 우리측 경비병

<바로 저 앞에 보이는 회색건물이 북한 측 판문각>

 

우리측 경비병과 북한측 경비병이 서로 마주보고 담화 할 수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위 사진에서 보여주듯이 건물과 건물사이에는 남북의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며 30cm높이의 턱을 기준으로 남쪽은 자갈로, 북쪽은 모래로 구분했다. 이 턱을 넘어 북쪽으로 가면 월북으로 간주한다.

반대로 이 턱을 넘어 남쪽으로 오면 월남이 된다.

 

<바로 앞에 보이는 30cm 턱이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 내 눈에는  아이들 땅뺐기 놀이 모습 같은데

그 의미는 너무 크고 중대해서 그저 감개무량하다는 말로 대변하고 싶다>

 

 

 

* 1976년 휴전선 비무장지대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 제거작업을 하다

 미군 중위 2명이 북괴병사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위사진은 그때 살해된 미군 대위 <보니파스 >등의 유해가 미국으로 송환되고 있는 모습이다.

 

판문점(板門店)은 한국 전쟁의 정전 협상이 진행된 곳으로,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와

북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였다.

 

 

정전협정 이후 UN군과 북한군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쌍방의 행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다.

 

서울에서 서북방으로 62km, 평양에서 남쪽으로 215km 떨어져 있다.

 

 

<참고>   

 

판문점은 가장 오랫동안 군사정전회담이 진행되고 있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전쟁 직후 휴전회담은 처음에는 개성에서 진행되었으나 유엔측의 제의로 중립적인 장소를 물색하게 되었는데 그 장소가 당시 널문리 가게 앞에 있는 콩밭이었죠. 가게라야 주막을 겸한 조그마한 구멍가게였는데, 휴전회담에 참여한 중국군 때문에 중국어로 표기할 글자가 마땅치 않아 「널문리가게」를 「판문점」으로 표기하게 된 것이죠.

 

 

판문점의 원래 이름 널문리는 옛날 어느 임금님이 이곳을 지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가 없어 건너지 못함을 보고 마을 백성들이 집집마다 대문을 뜯어 임시로 다리를 놓아 임금님이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널문리라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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