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
어린시절, 무능하고 무책임한 부모님 때문에 고모에게
맡겨져 자랐으며, 고모님의 배려로 "모테"부인을 만나 음악공부
를 하게되며, 1872년 파리음악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스승의 소개로 "차이코브스키"후원자인 "폰 메크"부인의
입주 가정교사로 그녀의 자녀들 ,, 음악지도를 맡고 있었는데,
"폰 메크"부인에게, 딸 "소냐"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에게 돌아온건, "프랑스"로 돌아가라는 단호하고
싸늘한 해고 통지였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드뷔시"는 성악가인
유부녀 "바니에"부인을 만나 그녀의 집 방한칸에 머물며,
그녀 남편 몰래 둘만의 사랑을 키워갑니다.
"드뷔시"느 1885년 당대 최고의 작곡상 "로마대상"을 수상,
그 부상으로 4년간 "로마"에 머물면서 음악활동을 보장하는 누구나
바라던 상을 받았지만, 유부녀 "바니에"부인과의 옛사랑을
못잊어 2년만에 "로마"를 떠나 "파리"로 돌아오고 맙니다.
하지만, 2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지요. 싸늘해진 그녀의 눈빛,
이후, "드뷔시"는 몇여자를 더 거친다음 모델 출신과 결혼, 결혼 3년차에,
다시 3년 연상인 제자의 어머니 "에마"와 사랑에 빠져 다시 재혼,
음악가로는 희대의 카사노바 였지요.
여성편력의 종지부를 찍고 ,, 예쁜 딸 "클로드 에마"도 얻어,
행복한 결혼 1년차에 직장암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아내 "에마"와 딸을
위해 음악활동에 진력 했지만 9년 후, 1918년 세상을 떠납니다.
"드뷔시"는 '마네' '모네' '르노와르' 등 인상파 화가들과
'베를렌' '보오들레르'등 상징파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음악을 창시했고, 지금 이곡으로 '로마대상'을 받았지요.
"드뷔시"는 타고난 재능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연인들을 위한 좋은 곡도 많구요.
그에게서 연민의 정을 떨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라베스크
원래 "아라비아" 풍이란 뜻이지요. 이슬람교회 벽면장식
이나, 공예품, 건축양식 등에 나타나 있는 문자와 식물 등이 기하학적
모티브가 어울려서 교차된 곡선으로 융화되어가는 환상적인
아라비아 문양을 말 합니다.
음악에서는 하나의 악상이 화려한 장식으로 전개되는
악곡을 말하며, "드뷔시"는 초기 피아노 소곡에 이 이름을 붙였으며
그의 작품 "아라베스크 1, 2번으로 유명세를 타게됩니다.
이 곡이 유명해지자 여러 악기로 연주되기 시작 했는데
오늘 올려드리는 1번은 "브랜포드"의 소프라노 섹소폰 연주와
"티모페이"의 트럼펫 연주로 올려드립니다.
연인의 권총자살 소동까지 빚었던 "드뷔시"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첫사랑에 실패 하면서
편협된 성격으로 여자 편력에 빠지게되고,
주위의 비난과 자기 자신도 날카로운
장미 가시에 찟기며 힘든 일생을 살았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즈음하여 유년기의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초 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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