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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촌로의 교감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워낭이란 소나 말의 머리에 다는 방울을 이른다.
'워낭소리' 가 독립영화로는 새로운 관객동원수를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충렬 감독
"한때는 빛났으나 지금은 파리한 우리네 아버지들 삶에 대한 헌사"
‘워낭소리’에 대한 과분한 평가가 부담스럽다는 이충렬 감독은
영화를 본 관객이 부모와 자기자신을 다시 한 번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제원 기자
영화 ‘워낭소리’는 30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한
마흔 살 소를 떠나보내야 하는 늙은 농부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젊은 날 소와 함께 땅을 일구며 9남매를 길렀으나
이제는 늙고 병들어 60년 가까이 그를 지켜온 이삼순(77) 할머니로부터도
매일 타박 받는 경북 봉화 최원균(80)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세 촌로(村老)가 빚어내는 담담하지만 먹먹한 일상이
나이듦과 죽음, 땅과 노동, 그리고 진정한 교감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만든다.
외환위기 때 자신을 있게 한 아버지와 고향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뒤 2005년부터 3년간 할아버지와 소의
이별 과정을 좇은 이충렬(43) 감독을 최근 서울 인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자 자식으로서의 반성문
이 감독은 프리랜서 방송 PD이다.
지난해 한국독립제작사협회 대상작인 다큐
‘한국음식에게 말을 걸다’가 그의 작품.
하지만 ‘워낭소리’를 기획한 1998년은
그에게 내세울 만한 작품 하나 없는,
배고프고 힘들어 잔뜩 주눅이 든 독립PD에 불과했다.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이슈가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그때
이 PD도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전남 영암의 소작농으로 젊은 날 엄청난 노동으로
3남1녀를 키워낸, 하지만 자식들과 관계가 서먹한
자신의 아버지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단순히 늙고 병들고 쇠락한 고향 같은 아버지를 보여주는 데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이 감독은 “한때는 빛났으나 지금은 사금파리처럼 흩어져 있는
우리네 아버지의 삶을 다시 온전한 사기그릇으로
만들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국 시골 마을과 우시장을 헤집고 다닌 지 7년 만에
봉화 축협 관계자로부터 하눌마을에 일소를 부리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달음에 달려가보니 역시 그가 애타게 찾던
“고난과 늙음의 상징”이었다.
더욱이 할아버지와 소는 촌로와 짐승 그 이상의 관계였다.
소는 할아버지에게 불편한 다리를 보완해주는
훌륭한 농기구이자 자가용이었고,
할머니의 끝없는 지청구를 피하는 핑계였으며,
그의 온갖 불만과 짜증을 묵묵히 받아내는
훌륭한 친구였다.
수명이 대개 15년인 다른 소들보다 두 배 넘게
그와 함께 한 파트너를 위해 할아버지는 사료 대신
꼴을 베어 먹이고, 기계가 아닌 낫으로 벼를 베고,
편한 농약 대신 김을 매고 있었다.
이 감독은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할아버지를
꼬박 6개월간 따라다닌 끝에서야 비로소 카메라를
또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었다.
이 감독은 촬영을 시작하면서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의
‘파적도’를 떠올렸다.
파적도는 어느 한적한 농가 앞뜰에서 병아리를 낡아채
달아나는 고양이와 이를 쫓는 어미닭과 주인 노부부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다.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평온한 교감을 중심에 놓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머니와 늙은 소, 늙은 소와 젊은 소,
젊은 소와 노부부 사이의 애증 관계를 한 프레임 안에
녹이고 싶었다.
그는 “다양한 관계의 다양한 갈등, 이야기를 느릿하게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늙은 소가 밭일을 하다가 쓰러지고
외양간이 장맛비에 허물어지고 젊은 소가 새끼를 낳는 등
“임팩트가 강할 수 있는 장면들을 죄다 놓쳤다”고
말하는 이 감독이 ‘워낭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할아버지가 소 달구지에서 짐을 덜어 자신이 짊어지는 지게로
옮기고 함께 귀가할 때다. 그는
“그 순간 할아버지는 일개 촌로가 아닌 성자처럼 보였다”면서
“귀갓길이 마지막 길이 될지 모르는 파트너를 향한
할아버지의 안타까움과 배려, 믿음 등 온갖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말했다.
특히 내심 늙은 소가 일을 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극적인
“‘건수’를 사악하게 기다렸다”는 이 감독은
다분히 소모적인 촬영일 뿐이라고 여겼던 이 장면에서
“‘임팩트가 강하면 감동은 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워낭소리’가 미국 선댄스영화제 경쟁작으로 초청돼
20일 출국한다는 이 감독은
“일상 소재에서 짙은 성찰과 잔잔한 웃음을 끌어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음악을 끄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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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관람객 수를 폭발적으로 갱신한다는 화제작 <워낭소리>을 오늘에서야 보았다.
이미 화보나 동영상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내용의 흐름을 알고 있는 터였지만, 시골 출신인 나로서는 초등학교 시절 직접 소고삐를 잡고 들로 논둑으로 다니며 풀을 뜯어 먹게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자연스레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서 감동적인 면도 없진 않았지만, 총체적느낌은 한마디로 답답증이 일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평생을 주인을 위해 일한 충직한 소, 늙어 병들어 걸음도 잘 못 걷는 소달구지에 사람이 타고 다니는 일이며 죽기 전 까지, 아니 그렇게 끝까지 소를 부려야 했는지. 단 며칠이라도 좀 푹 쉬게 할 수는 없었을까? 우시장에 나갔다가 팔지 않은 이유가 단 흥정이 맞지 않은 소 값 때문인 것도 그렇고, 주인역시 아픈 몸을 이끌고 그렇게 까지 고집스럽게 일만 해야 했는가? 또한 할머니의 첫 마디는 아이 구, 아이 구! 란 넋두리로 시작되는데 좀 배려할 수는 없었는지, 주인과 소의 교감엔 박수를 보내지만, 똑같은 고단한 일생에 연민과 불쌍함이 서려있기 때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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