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10. 1. 나의 선택.

목향 2009. 5. 11. 15:02

제목 : 2004. 10. 1. 나의 선택.

몇년전 아직 파릇하게 젊었던 나이에
나는 '직장암'이라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생소한 암 선고를 받았었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수술을 했고
나는 항문을 모두 드러내고
대장을 잘라 배에 구멍을 내 꿰매 만든 인공항문 (스토마) 보유자가 되었다.
그것은 나를 장루 장애 5급 판정을 받게 만들었고
살아가는 일에 무척이나 번거롭고 신경쓰이며
음식물 섭취나 여행, 일 등에 장애가 되는 모양새였다.

수술 후, 병원의 권유대로
항암 약물치료 몇번과
방사선 치료 전체를 받았다.

그로인한 부작용으로 4년여를 고생하며 통증에 시달렸고
여성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을 영영 잃기도 했다.
처음의 암은 그렇게 내 몸에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내 정신까지 파괴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열심히 방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장루라 불리는 '인공항문' 때문에
다른 사람이 노래부르는 힘 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야,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었다.

함께 노래하던 송창식오빠는 이렇게 말했었다.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하는 가수중에
길은정이 만큼 열심히 하는 가수는 없다"고......

그 말은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내 기력이 딸리니,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몇배의 노력을 해야했다.

그리고 나는 방송 일과
어린이 들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 작업에 정신을 쏟으며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보통으로 유지해왔다.

그러던 2002년 9월,
뜻 밖의 사건이 내게서 터지고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무방비로 놓인 채
2년여를 보내야 했다.

그런가운데서도 방송을 하며
보람을 찾고 기쁨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나쁜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모두를 용서했다.
나쁜 곳도 보지않았다.
타의에 의해 끌려다니는 일은 나를 지치게했지만
자의적으로는 아주 건전하고 진실하고 단순하게 살았다.
2년전
이미 나는 임파선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임파선암의 경우
치료방법이란 방사선치료나 항암약물치료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미 겪어 본 그 치료는 받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었었다.

처음 모르고 받았던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내 몸을 얼마나 망쳤는지
이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잘 조절하면서
즐거움을 찾아가려 열심히 일에 집중하고 몰두했다.
그리고 많이 웃었다......

그런데 끔찍한 스트레스는 임파선에 전이된 암 세포를 움직였다.

그것은 혈류를 따라, 또 임파구를 따라 온 몸을 돌다가
하필 내 오른쪽 골반 뼈안에 자리를 잡고
기하급수적으로 세포수를 늘이며 자라났다.

그리고 복부 가득히 암세포가 가득 차 있었다.

암의 특징은
아프다는 증세를 느꼈을 때는 이미 치료할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병원24시 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진 것은
아주 작은 일면에 불과하다.

병원에서는 물론 많은 의사들이 모여
내 케이스를 두고 회의를 가졌고 대책을 세웠다.

그렇게 내 놓은 결론중 하나가
수술이었다.

골반뼈 전체를 잘라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른 쪽 다리를 허리 바로 아래부터 절단하거나
관절을 이어붙여 다리 길이가, 잘라내 진 골반길이만큼
짧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해서 걸을 수 있느냐하면 그것은 아니란 얘기였다.
역시 계속 목발을 짚고 살아야 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술로 암을 제거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NO 였다.
이미 임파나 혈류로 퍼졌기때문에 수술을 한다해도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수술 중 사망 가능성도 있고
수술 후, 열흘 또는 한달안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 의료진은 말할 것 같다.
"저희로선 최선을 다했으나... 안됐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나의 가족은 과연 수술을 선택해야 했을까?

수술을 하지 않겠다면 두번째는 방사선치료나 항암치료였다.

그런데 그 치료를 받는다고 암을 치료할 수 있느냐? 는 물음에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 치료는 그저 통증을 완화시키고
암세포의 증식을 저지시키려는 방법이란 것이다.
그런데 그 방사선이나 항암치료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정상세포까지 파괴시키며 다른 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면역력은 더욱 떨어지게 되어있으며
그 좋아하는 방송일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앓아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누워서 기력없이 생명을 몇달 연장시키는 치료.
과연 나는, 나의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했을까......

대체요법이나 민간요법.
나는 기본적으로 장루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라
음식이나 한약등을 먹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먹을 수 없다.
장에 탈이라도나면... 그땐 끝장이다.....
나는, 나의 가족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어야할까....

나와 아무 연고가 없는 의사는 수술을 권하기도하고 방사선치료도 권한다.
그것은 의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가까운 이로서 의사들은 그 모든 치료방법을 말린다.
한마디로 치료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 통증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고 통증크리닉에서 일종의 통증을 느끼는 신경을
마취시키는 척추 주사를 맞는 일이 남아있다.
그런데 마약성 진통제는 위를 상하게 만든다.
통증크리닉에서의 치료도 골(뼈)암의 진행에 따라
더 이상 할 수 없어질 때가 오게된단다.
통증을 없애기위해서는 척추에서 신경을 끊어내는 수술이란게 있는데...
그 수술을 받으면 하반신 마비가 되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단다.
그렇다고 암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연 나는, 내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그래서 나와 내 가족은 신중하게 선택했다.
우리는 짧게는 3개월. 길게 보아 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제 모든 것은 내 마음안에 달려있다는 것인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우리는 선택했다.
병원에서의 여명 선고는 잊기로 했다.
그저 언제까지 일지 모르나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밝게 살기로 했다.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싶은 일, 먹고싶은 것
마음대로 하다가 때가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겠다는 선택.

나는 아주 평화로운 마음이 되었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며 시간은 소중하다.
방송하는 시간은 더욱 소중하다.
완성하지 못했던 '오디오북- 책상은 책상이다'도 완성시켜야한다.
동요음반도 만들고 싶다.
나는 바빠야 한다.
그리고 원없이 즐겁게 웃어야한다.
가족들은 나의 마음과 선택을 이해해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