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박골일기 / 고 文炯東
딱박골은 마을 서쪽 골짜기에 있다. 예전에는 닥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산날맹이를 이루는 연수봉, 그 건너편엔 먹석굴, 산봉우리는 붓처럼 뾰족한 필봉이다.
하여 마을 이름도 사우동(四友洞)이다. 서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 것만 같은 동네.
사십여 채의 집 대부분이 터만 남아 있어 깊은 산촌(山村)임을 말해 준다. 조상이 묻혀있는 땅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대여섯 가구의 주민들은 타고난 농사꾼이다. 그렇지만 빈터 어디쯤엔 서당이 있고,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고샅을 메웠을 거라는 생각만은 지울 수가 없다.
딱박골을 찾은 오늘은 입하절, 날씨가 쾌청하다.
시누대숲을 지나자 찔레의 새순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가슴 설레이게 하는 하얀 꽃잎, 진한 분냄새, 개구쟁이 동무들과 꺾어먹던 찔레순의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장끼의 울음소리에 고요마저 깨지는 산곡(山谷)이다. 그래서인지 길섶엔 노란빛의 양지꽃이 앙증맞게 피어있고, 선홍색의 산철쭉은 질투를 자아내게 한다. 또한 애기붓꽃은 보랏빛으로 다소곳하고, 보춘화의 자태에서는 근엄함을 엿볼 수 있으니, 신이 빚어놓은 빛깔의 우아함과 형상의 다양함에 빠져 발걸음이 머뭇거려진다.
어느 스님이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던 말이 문득 떠올라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다.
딱박골은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食水源)이다.
나는 저들과 운명을 같이 한 지 오래 되었다. 다만 영육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곳에는 두 개의 작은 봉우리가 있는 까닭이다. 내 글방 벽의 사진처럼 나란히 누워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나는 그분들의 앞에 버거운 짐을 부려놓기 위해 천리 길을 달려오곤 한다
전남 화순군 농주면에서 태어남.
1987년 <<한국수필>>에 수필 추천완료
수필문학가로 등단.
1988년 <<시조문학>>에 시조 추천완료 시조시인으로 등단.
1988년 <<월간문학>>에 수필 당선.
1992. 10. 수필집 <<두번 피는 꽃>>
2001. 03 산문집 <<국물 이야기>>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전회장 역임.
시조문학회 회원
한국 과학 기술 출판 협회 사무국장역임.
<국물 이야기>
밥상에 국그릇이 꼭 올라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를 우리와는 많이 다른 서구식 식생활과 비교하며 차이를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국물이 있고 없는 차이의 표현만이 아니라 과거의 가난한 삶 속에서도 인정이 메마르지 않고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지녔던 우리들의 의식구조를 나타내며 서구문화의 도입과 함께 현대사회의 인간성의 메마름과 황폐화 현상을 지적한 비판적 정신이 돋보인다. 예전에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임금님이 찾아오고 제사를 지내던 모습 등은 중요한 역사적 증언으로서도 가치를 지닌다.
<딱박골 일기>
이 작품에는 가까운 야산에서는 차차로 사라져 가는 화초들 이름이 나온다. 10센티 정도 키가 자라는 애기붓꽃(각시붓꽃)이 그렇고 한반도 북쪽지방이나 산비탈 양지바른 곳에서 피는 양지꽃도 이제는 보기 어렵다. 시누대 보춘화 산철쭉도 모두 가까운 야산에는 흔하지 않다. 작자는 이런 꽃 이름에 의해서
그가 표현하려는 산골짜기의 이미지를 그려 나간다. 그것은 가까운 야산이 아니며 깊은 산골이고 인적이 드믄 곳임을 나타낸다. 그곳이 작자의 고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되지도 않던 거주자들이 이제는 거의 모두 떠나버리고 빈터들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 모습을 그려내며 이런 꽃 이름을 새겨나가면 그 풍경의 특성이 훌륭하게 회화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리움을 갖게 한다. 다만 좀 지나치게 설명을 아껴서 독자들에 대한 전달력이 약해질 수 있는 부분들은 조금 고칠 필요가 있겠다. 작은 봉우리 두 개는 부모님의 산소이겠지만 그분들 앞에 버거운 짐을 부려놓는다는 것은 좀 더 구체적 표현을 해도 좋을 것이다. <국물 이야기>와 함께 모두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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