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금강산 콘도에 머물며 (6) /이기붕 별장

목향 2009. 11. 9. 19:56

 

    이기붕 별장

 

이 기붕 별장은 이승만과 김일성 별장 사이 호숫가에 위치해 있다. 이기붕 별장은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된 건물로서 해방 이후에 북한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후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였다. 박마리아는 생전에 인근 고성군 대진읍에 대진교회를 세우고 자주 이 곳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별장 내 집무실과 응접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주전자, 촛대, 문갑 등이 보관돼 있다. 위치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북위 38도 35분으로 7번 국도를 타고 통일전망대 방향으로 달리다 화진포콘도 군 휴양지 입구에서 우회전해 2㎞쯤 들어가면 된다.

 

 

* 이기붕 별장입구 길 <왼쪽 외등길 > 앞에 보이는 송림의 검 푸른 기상이 참 멋있게 보였다. 

 

 

 

* 별장의 뒷 모습  

 

 

* 별장 정문: 밖에서 보기에는 운치도 있고 꽤 괜찮은 아담한 집으로 느껴지나  실제 방은

너무 좁고 초라하고 가구도 그렇고 부통령 별장으론 좀

어울리지않을 듯 싶었다.  

 

 

 

 

 

 

* 벽에걸린 가족 사진 중 특히 박 마리아 여사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당시 국민들은 부통령은 이기붕이 아니고

박마리아여사란 말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안경속의 눈빛이 예리하고  총명함이 ...

 

 

 

 

* 이 기붕씨의 호는 만송(晩松).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오와 주에 있는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했다. 뉴욕에서 허정 등과 함께 〈삼일신문 三一新聞〉을 발간했으며 1934년 귀국했다.

 

1945년 이승만의 비서가 되었고, 1946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대한적십자사 등의 이사가 되었다. 1949년 서울특별시 시장, 1951년 국방부장관이 되었으며 같은 해 자유당 창당에 참여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민의원 의장을 거쳐, 1960년 3·15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관계·정계에 재직할 때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은 그의 정치적 전횡(專橫)은 민원(民怨)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청년학생들의 4·19혁명으로 부통령을 사임하고 경무대(景武臺)에 피신해 있다가 장남 강석(康石)의 권총으로 전가족이 자살했다.

 

 

 * 보통 거물급들의 죽음 뒤에는 "영욕의 세월" 이란 대명사가 붙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기붕씨 가족의 일대기 역시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일 듯,  60년 3.15 부정 선거, 4.19 학생의거를 직접 목격하고 겪은 세대로 그들의 별장을 바라보는 마음은 감개무량하다. 노무현 대통령 자살로 온 세상이 들끓었다. 이기붕 씨 가족은 장남의 총살로 가족 모두가 죽었다.

후일 역사가들은 뭐라고 평가 할까 !!!